지글지글 후라이

by 작가미상


9월 8일


개강을 한지 일주일이 지났다. 정확히 말해 저번주는 오리엔테이션만 했지 제대로 된 수업은 오늘이 처음이었다. 전공은 뭐 항상 비슷한 내용과 배운 내용 사이에서 조금 더 심화된 내용이라 뒷전에 미루고 내가 가장 관심 있어 하는 교양에 집중하자.


교양의 이름은 여태 내가 쓴 글을 본 여러분은 잘 알겠지만, 작자가 좋아하는 단어의 총집합이다. 바로 인간 행동 심리.


인간 행동에 대해 분석을 하는 건가? 심리에 따라 달라지는 인간 본성에 대해 공부하는 건가? 행동에 대한 심리는 파악하는 건가? 심리에 대해 인간을 알아가는 건가? 심리에 대해 행동을 인간하는 건가?


질문이 마구 엉키자 때마침 교수님이 수업을 시작하셨다. 피피티 화면에는 병아리 사진과 후라이 사진이 있었다.


이 둘 중에 무엇이 되고 싶냐가 첫 번째 질문이었다. 마음속으로는 후라이를 먹는 병아리가 낳는 계란의 후라이요. 뭐가 되고 싶은지 온갖 상상을 하고 있던 중.


어떤 학생이 후라이가 되고 싶다고 했다.


교수님은 후라이가 되고 싶다는 학생에게 왜? 왜? 왜 후라이가 되고 싶으신데요? 라며 확연히 잘못 골랐다는 말투로 물어보시니 아마 남이 깨주는 후라이보다 스스로 안에서 깨어 나오는 병아리가 되고 싶다는 질문을 원한 듯하다.


나는 사실 후라이가 되고 싶었다. 다만, 이런 강제적인 경우가 발생할 것에 너무나도 확연하기에 굳게 내 의견을 말하지 않고 고민하는 척 최대한 왜 병아리가 되어야 할까를 스스로 납득했던 것 같다.


후라이가 뭐 어때서, 양계장에서 태어나 죽을 때까지 달걀만 낳고 기가 빠지도록 교배만을 위해 사는 것보단, 인지라는 것을 가지기 전에 밖에서 깨트려주는 것이 더욱 좋지 않을까.

우리와 같은 인간과 후라이라면 인간을 택하겠지만, 병아리와 후라이를 택하는 건 태어나는 과정에만 치중하는 것이 아닌 그 이후의 삶을 생각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면 스스로 깨야 한다는 말과 독립적이게 나아가야 한다는 것은 단순 찰나에 불과하다.


그들의 입장에서는 고통의 닭답지 않은 삶의 미래를 위해 정체성이 만들어지기 전 깨주는 것이 오히려 윤리적일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다.


피피티 다음 장엔 기관차와 마차 중 나은 것을 고르라는 것이었다. 이번에도 정해진 길을 가는 기관차보다 원하는 목적지에 향하는 마차를 택하라는 것이었다. 병아리가 마차였다면 또 기관차였다면 결국 병아리의 목적지는 길이 정해져 있고 목적지 또한 병아리가 정한 것이 아닐 텐데. 모순 덩어리였다.


그렇게 의문만 남긴 채 끝나버린 인간 행동 심리라는 수업은 교수님이 원하는 이상적인 교육 방향과는 정반대겠지만 모쪼록 다양히 생각을 뒤집는 법을 배울 것 같다. 잘 구워진 후라이처럼 말이다. 지글지글 타버리는 계란의 뒷면에는 고소한 맛도 나고 쓴맛도 나고 어쩌면 후라이가 병아리보다 인생을 먼저 배우는 것이 아닐까.


다음주 수업엔 어떤 질문을 던지실지

내가 눈썹에 힘을 주곤 갸우뚱하는 장면이 나왔으면 좋겠다.

(시리즈로 쓰면 좋을 것 같다는 의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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