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까지고 읽는 사람이고자 하는 마음으로
며칠 전에 여태 완독 하지 못했었던 소설집을 책장에서 꺼내 들었고 방금 전 다 읽었다. 단편소설 두어 개만 읽고서 오래간 방치해 두었던 책인데, 과거의 내가 왜 그랬나 싶을 정도로 아름다운 책이었다. 읽었던 단편은 건너뛰고 읽을까 하다가 기억도 잘 안나는 참에 처음부터 읽는 내내 고개를 갸웃했다. 처음 읽었을 때도 이토록 가슴이 철렁했었나. 매립등이 따로 없고 전등만 곳곳에 켜져 있어서 시간의 흐름에 따라 조도가 낮아지는 카페에서 책을 읽다 나오자, 매서운 칼바람이 불어와서 절로 몸을 움츠렸다. 방금 전까지 활자가 건네었던 온기가 너무 따뜻해서였는지 모르겠지만 이내 마음이 조금 쓸쓸하고 빈곤해졌다. 정말 좋은 책을 읽으면 이렇게 상반된 감정이 들곤 한다.
확실히 나는 예전보다 책을 많이 읽는다. 어떤 시기에 나는 책이 너무 좋고 좋은데 싫었다. 책을 읽다 보면 꼭 나의 영혼을 마주 해야 했고 그건 너무 선득하도록 파괴적인 일이었다. 우울이 가시처럼 자주 삐죽 대며 일상을 괴롭히던 나날들이었다. 책이 주는 감동은 슬픔으로 한 차례 변환되어 나를 더욱 우울하게 만들었다. 마치 활자가 칼이 되어 아픈 자리를 한번 더 찌르는 것처럼. 아름다운 것들은 결국 슬픈 것이라고 굳게 믿던 때였다. 왜 슬픈 것인지조차 모르는 채 나는 자주 비참했다. 그럴 때 아름다운 책들은 나를 도와주지 않았다.
그때에 비해서 나는 확실히 변했다. 무엇이 나를 변하게 했는지는 모르겠다. 그냥 나이가 더 들어서 일수도, 내면의 어딘가가 성장했을 수도, 혹은 어떤 부분이 마모된 것처럼 무던해졌을 수도 있다. 확실한 건 나는 그때보다 더 많은 시간을 책 읽는 데에 할애하고 읽는 순간을 사랑할 줄 아는 인간이 됐다. 책을 읽다가 무수히 아름다운 구절들을 마주하면 경탄하고 (때로는 좀 경박스럽게 욕도 내뱉고), 내내 손에 쥐고 있던 연필로 밑줄도 그어보고, 몇 번이고 읽어보다가 이내 눈을 감고 여운을 느끼며 행복해하는. 아름다운 것이 나를 슬프게 하는 건 여전히 맞다. 좋은 책은 여전히 한편으론 나를 쓸쓸하게 한다. 하지만 나는 어쩌면 아름다운 것을 사랑하다가 슬픔마저 사랑하게 되어버렸는지도 모른다. 사랑의 연유에서 오는 슬픔은 더 이상 그다지 슬프지 않다. 오히려 행복하다는 것. 반짝거린다는 것. 그걸 나는 책을 온전히 사랑하게 되면서 느꼈다.
언젠가 나는 책을 읽는 일이란 나의 영혼을 보살피고 정성스레 독대하는 일이라고 적은 적이 있다. 그 정의에 한 구절을 더 추가하자면, 책을 읽는 일이란 세상을 사랑하는 법을 아는 일이다. 글은, 특히 소설은 세상을 사랑하지 않으면 쓸 수 없다는 것. 그것을 나는 좋은 작가들의 글을 읽으며 배웠다. 사랑하지 않는다면 그렇게나 주의를 쏟을 수 없다. 세심히 관찰하고 관통하고 묘사할 수 없다. 제 일처럼 상상할 수도 없다.
어쩌면 내가 읽었던 그 소설집을 오랜만에 다시 펼쳤을 때, 처음과는 다르게 느껴졌던 것도 나의 태도의 변화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 시간 동안 나는 세상을 좀 더 사랑하게 됐으니까. 요즘에는 어떤 영화를 봐도 책을 읽어도 음악을 들어도 어떤 식으로든 감동을 얻는다. 그러니까, 좀 쉽게 감동을 받는다. 그건 내 주위의 사람들로부터나 내게 주어진 하루를 살 때도 마찬가지. 세상은 아름답다. 아름다워서 슬프다. 하지만 세상을 사랑하면 그 슬픔마저도 사랑하게 된다. 그래서 나는 무엇이든 간에 좀 더 귀 기울이고 관심을 기울이고 싶어 진다.
그러니까... 이 글은 결국은 책에 대한 찬사다. 사실 세상을 온전히 사랑하는 나날들이 늘 반복되는 것은 아니니까. 온갖 혐오와 냉소와 회의가 물밀듯이 밀려오는 때때로의 밤에는 사랑이고 뭐고 쓸모없게만 느껴지니까. 하지만 책은 늘 옳다는 것. 나는 이제야 책을 사랑한다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인간이 되었다.
내가 읽었던 책의 마지막 작가의 말에는 이런 문장이 있었다. ‘나는 당신이 안온한 혐오의 세계에 안주하고픈 유혹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사랑 쪽으로 나아가고자 분투하는 사람이라는 걸 안다.(백수린, 여름의 빌라)’ 나는 ‘분투‘라는 단어에 예전부터 정이 갔는데, 아무도 몰라주지만 나 혼자서 애를 쓴다는 의미를 담은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물론 사전적 정의에 그런 속뜻은 없다.) 누군가에게는 바보 같아 보일지라도 살아내고자, 무언가를 지키고자 애쓰는 어떤 사람을 향한 안쓰러움과 존경 같은 것이 느껴지는 단어.
그런 의미에서, 나도 사랑 쪽으로 나아가고자 분투하는 사람이고자 한다. 물론 늘 그럴 수는 없을 거고 살아가면서 무수한 장애물들이 나를 막겠지만. 자주 무너지고 세상과 나 자신의 추한 밑바닥을 마주할지라도, 그래도, 분투.
그러는 동안 책이, 아니 정확히는 그 책을 쓴 수많은 작가들이 나를 도울 것이다. 세상을 사랑하는 법에 관해서는 언제나 그들이 전문가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