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보니 대만에 와서 생일을 맞이하게 되었다. 원래 생일을 기대하는 성격이 아니다. 그래도 생일이니까 가족과 함께하는 하루는 보냈었는데, 이번엔 타국에서 생일을 겪게 되어 새로운 기분이 들었다. 아침에 일어나 자연스레 아이의 귀를 살핀 뒤 아침 식사로 미역국을 준비해서 먹고, 나와 아내는 커피를 마시며 오늘 하루를 어떻게 보낼지 얘기를 하고 밖으로 나갈 채비를 했다.
생일맞이 외식으로 선택한 것은 훠궈였다. 나는 훠궈를 10년 전 아내와 대만 여행을 왔을 때 처음 먹었었다. 맵다기보단 얼얼한 마라맛의 훠궈를 맛있게 먹었고, 이후 한국에 훠궈 식당이 하나둘 생길 때부터 종종 즐기는 음식이 되었다. 사실 대만에 와서 이미 한차례 먹긴 했는데, 그때 제대로 못 먹었단 착각이 들어 다시 한번 가보기로 했다.
방문한 가게는 훠궈 재료는 물론 음료와 후식까지 포함된 가격을 즐길 수 있는 뷔페 형식이었다. 나와 아내, 아이가 먹을 재료를 골라서 끓이기 시작했다. 그러는 사이 나와 아내는 맥주를, 아이는 음료수를 들고 와서 건배를 했다. 그동안 아이 수술 준비와 예후를 보는 한 달 동안 술을 마시지 않고 있었다. 꼭 마실 필요 없다고 무의식 중에 생각했는지 신기하게도 술 생각이 들지도 않았다.
지난번보다 만족스러운 식사를 마친 뒤, 펑리수 쇼핑에 나섰다. 대만에 오면서 큰 캐리어 3개에 짐을 가득 채워서 왔는데, 돌아갈 짐을 챙기려고 보니 역시나 짐이 가득했다. 그래서 그냥 한국으로 갈까 생각했지만, 대만살이 준비를 하는 동안 많은 격려와 도움을 주신 분들에게 작게라도 감사를 표하기 위해 펑리수를 사가려고 했다. 대만에 이른바 3대 펑리수라고 불리는 제품부터 마트에서 판매되는 공장제 제품들까지 정말 많은 종류가 있다. 그렇게 다양한 제품의 맛이 조금씩 다른 것도 신기했다.
이곳 치아더는 그중 가격대가 높은 편으로 그만큼 맛있다는 것 같았다. 우리가 도착한 시간은 2~3시 정도였는데, 가게 앞은 사람들로 줄이 길게 서있었다. 조만간 있을 음력설을 앞두고 대만 분들도 가족들이 먹을 것, 선물할 것을 준비하려고 줄이 길었다. 약 한 시간 남짓 줄을 선 끝에 우리는 펑리수를 살 수 있었다. 좋은 마음으로 사기로 했지만, '이걸 어떻게 가져가지?' 걱정도 앞선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 아내가 봐두었던 베이커리에 가서 케이크를 샀다. 배고프지 않지만 생일이니 케이트도 먹고 지나가야지. 알지 못하는 언어로 쓰인 설명 대신 눈대중으로 맛있을 것 같은 케이크를 골라서 구매했다.
그렇게 펑리수와 케이크를 들고 숙소로 돌아가는 길.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며 노을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앞서 가고 있는 아내와 아이의 뒷모습을 바라보다 사진으로 남겼다. ‘이 길을 이렇게 걷는 것도 마지막이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으로 돌아갈 날이 얼마 남지 않아서인지 많은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가야 할 길은 어디일지, 우리 앞에 어떤 빛이 있을지 궁금하다. 오늘처럼 빛을 보며 같이 걸을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