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도 휴일이면 '오늘은 뭐 하고 놀지' 하는 고민의 연속이었다. 수술을 앞두고 대만 살이를 계획할 때도 이 고민은 여전했다. 수술 전 일주일 정도는 한국에서 계획하고 갈 수 있었지만, 수술 이후엔 어떻게 될지 모르기 때문에 일단 가서 정하자는 생각이었다. 감사하게도 수술 이후 (몇 가지 일은 있었지만) 큰 문제는 없어서 최근에는 '요즘 뭐 하지' 고민을 계속하고 있다.
오늘도 역시 오전은 병원에 들러 예후를 살펴보고 수술 부위에 있는 딱지나 실밥 같은 것을 제거하는 처치를 받았다. 이제 다음 주면 한국에 돌아가야 하기에 수술 부위 관리하는 방법에 대해 듣고 궁금한 것을 물어보고 영상으로 남겨두기도 했다.
진료를 마치고 근처에 있다는 딴삥 맛집을 찾아갔다. 우리 숙소가 관광객이 찾는 곳과 좀 떨어져 있는 곳이기에 관광객이 많은 가게는 아니었다. 오히려 현지인들이 평상시 찾는 가게라고 보면 될 것 같다. 가게에 도착해 보니 나이 든 노년의 부부가 가게를 운영하고 계셨다. 현지에선 주로 아침식사로 먹는 딴삥과 또우장이라서 우리가 방문한 시간엔 사람들이 많지 않았다. 오래되고 정리되지 않은 가게에 들어서서 주문을 마치고 앉아서 기다리는 동안에도 '맛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래도 정돈되지 않은 가게의 모습 등 때문에 더욱 그런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조금 앉아서 기다리니 주문한 메뉴들을 만날 수 있었다.
얇게 핀 전병 위에 아이가 좋아하는 치즈, 햄 등이 들어간 딴삥을 만난 순간, '이건 맛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역시나 쫄깃한 전병피와 달콤한 소스, 짭조름한 햄의 조화가 좋았고 무엇보다 따뜻해서 더 맛있게 느껴진 것 같아.
간단히 식사를 마치고 시먼역으로 향했다. 오늘 가볼 곳은 타이베이 과학관. 수술 전 방문했던 타이베이 어린이공원 옆에 위치하고 있다. 이번에는 역에서 내려 걸어서 가봤다. 약 15분 정도 걸어야 하는데, 가는 길목에서 타이베이 사람들의 일상생활을 볼 수 있었다.
과학관은 만 6세 미만 아이는 무료입장이 가능하다. 과학관 내부에는 바람의 운동, 힘의 이동, 전기 전자 운동 같은 과학 체험을 할 수 있도록 만들어져 있었다. 아이는 체험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해보겠다는 일념인지 어느 하나 빼놓지 않고 만져보고 눌러보고 돌려보았다. 1층부터 5층까지 모든 공간을 둘러보고 나니 나와 아내는 다리에 힘이 빠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런데도 아이는 아직 괜찮은지 조금만 더, 여기도 한 번만 을 외쳤다. 결국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는 시간이 돼서야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다음 날, 주말을 맞아 타이베이 시민들도 바깥나들이에 나선 사람들이 많았다. 우리는 타이베이 시립 미술관을 가보기로 했다. 이곳은 MRT 위안산역 인근에 위치해 있다. 역 바로 앞에는 엑스포공원이 있는데, 주말이면 작은 길거리 마켓도 열리고 사람들이 모여 버스킹 공연도 보고 그러는 것 같다. 우리도 그런 모습을 구경하며 지나는데, 눈앞에 칼을 들고 휘두르는 사람들이 보였다. 무협 영화에서나 보던 그런 칼을 양손에 들고 서로 동작을 보여주고 따라 하며 연습을 하고 계셨다. 왠지 이곳이 중국 문화를 공유하는 곳이라는 생각이 다시듯 들었다.
타이베이 시립 미술관을 간 이유는 어린이들이 미술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이 있다는 얘기를 들어서였다. 이곳 역시 만 6세 미만이라고 하니 무료입장이 되었다. 한층 아래 위치한 어린이 미술관을 먼저 들렀다. 우리를 가장 먼저 반겨준 것은 거대한 사람 모형이 누워있는 공간으로, 아이들이 들어가서 무릎 산도 오르고 여기저기 매달려도 보고 담요 같은 것을 가져다 덮어주기도 했다. 그 옆에는 철로 만들어진 졸라맨 모형에 국자, 주걱, 볼링핀, 갈퀴 같은 것을 자석으로 붙여 나만의 작품을 만드는 곳이 있었다.
그 외 점토 체험, 그리기 체험 등 아이들이 할 수 있는 미술 활동들이 마련되어 있었다. 사실 언어가 통한다면 좀 더 잘 챙겨서 놀 수 있었을 것 같다. 곳곳에 안내해 주시는 분들이 계셔서 어떤 활동을 할 수 있는지 안내를 해주고 계셨기 때문이다. 그런 아쉬움을 가지고 더 둘러보는데, 역시 이곳은 무림의 피가 흐르는 땅인가 보다. 많은 플라스틱 핀이 있는 판을 눌러 다양한 모양을 만들어볼 수 있는 체험기구에서 한 친구가 아크로바틱 한 체험을 하고 있었다. 우리는 고작 손바닥 찍기, 등으로 눌러보기를 하고 있었는데, 우리 옆에선 물구나무 자세를 하고 몸의 모양을 찍고 있었다. 이럴 수가!
지하에 있는 아동 전시 공간을 다 둘러본 뒤, 위쪽으로 올라가 보니 그곳엔 신진 예술가들의 작품이 다양하게 전시되어 있었다. 대만 예술가부터 해외 예술가까지, 그중엔 한국 작가의 작품도 여럿 있었다. 그리고 바로 옆 카페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근처 송산 공항에 착륙하기 위해 지상으로 내려오는 비행기를 구경하며 시간을 보냈다.
타이베이의 크기는 서울의 1/3 정도밖에 안 되고 인구도 서울에 비하면 30% 수준 밖에 안 되는 도시이다. 또 이 나라 역시 저출산으로 국가의 미래를 고민하고 있는 도시라고 한다. 그런데 잠시 머무는 이방인 입장이지만, 이곳에서 아이와 함께할 수 있는 공간이 서울보다 더 좋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를 위해 만들어진 시설도 멀지 않은 곳에 다양하게 있고, 무엇보다 동네마다 공원이 있고 놀이터가 만들어져 있다. 내가 머무를 곳과 가까운 곳에 나무와 풀, 동물이 있고, 공원에 놀이터가 있으니 아이들은 그곳으로 향하면 된다. 저출산으로 이용하는 아이가 적어지고 관리에 돈이 많이 든다는 이유로 놀이터를 없애는 우리나라의 상황이 떠오른다. 키즈 카페 같은 좁은 실내 공간에 아이들이 북적거리는 것보단 넓은 공간에서 자유롭게 놀이할 수 있는 환경이 늘어나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