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대만살이 29일 차 - 다르다는 것

by 천백십일

대만에서의 마지막 일요일.

이곳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다 하겠다는 일념으로 일정을 소화하고 있는 것 같다. 오늘은 대만의 대표적인 디저트인 펑리수 만들기 체험을 하러 가기로 했다. 체험 장소는 스린역 인근에 있는 궈위안예과자박물관이다. 요 며칠 동안 스린역 인근을 자주 방문하고 있다. 다행히 숙소 앞 MRT 노선이 환승 없이 갈 수 있는 지역이었다. 타이베이 MRT 환승 시스템이 서울 지하철 환승보다 쾌적하게 만들어져 있지만, 그렇다고 해도 환승을 하기 위해 플랫폼을 이동하는 것은 꽤 불편한 일이다.


체험을 하고 점심을 먹고 들어오기 위해 오전 프로그램을 신청했다. 덕분에 오늘도 늦잠 없이 아침 일찍 하루를 시작했다. 익숙하게 MRT를 타고 이동하여 박물관에 도착했다. 아침이라 체험하는 사람이 없는 것 아닐까 걱정이 들었다. 잠시 내부를 구경하고 있으니 다른 참가자 일행들이 도착했다. 그들과 함께 펑리수 만들기 체험을 시작했다.

손을 깨끗이 씻고 지정된 자리에 앉았다. 잠시 뒤 파티시에가 자신의 소개와 함께 체험이 시작 됐다. 체험은 영어로 진행된다. 예약하는 과정에서 본 리뷰 중 한국어를 조금 할 수 있는 분이 계셨다는 것도 있었는데, 우리가 체험할 때는 그분이 안 계셨던 모양이다. 다행히도 쉬운 영어를 써주신 덕분에 그럭저럭 알아들으며 체험을 진행했다. 반죽을 만들고 안에 파인애플 잼을 넣고 모양을 만든 뒤, 반죽에 마음에 드는 문양을 찍어주면 완성이었다.

한국에 있을 때, 간혹 마트에서 파는 쿠키 만들기 키트를 구매해서 시간을 보낸 적이 있다. 그때 반죽을 조물조물해본 덕분인지 체험을 진행하면서도 곧잘 따라 하는 모습이었다. 그렇게 만든 펑리수를 굽는 동안 위층에 위치한 디저트 박물관 관람을 위해 직원 안내를 따라 이동을 했다. 그곳에는 대만 지역에서의 결혼, 출산, 아이의 첫 돌 등 문화의 설명을 듣고 간단히 체험할 수 있었다. 사실 재미없으면 어쩌지, 할 게 많지 않아 보이는데 같은 걱정을 했었다. 그런데 막상 체험을 하고 나니 기억에 남는 체험이었다. 아이도 나중에 대만에 또 오게 되면 펑리수 만들기를 또 하겠다고 한다.


체험을 마치고 점심을 어디서 먹을까 고민하며 구글 지도를 열어보니, 박물관 길 건너 샤브 식당의 평이 제법 높았다. 좀 더 역 인근으로 가볼까 하다가 너무 배고픈 관계로 일단 가보기로 했다. 가게의 이름은 小聚人(소취인)이었다. 가게에 들어가 보니 키가 아이 정도 되는 직원분이 우리를 안내해 주었다. '아, 그래서 가게 이름에 소인이라는 단어가 들어간 것인가' 생각을 했다.

screenshot-1742973686649.png

자리에 앉아 주문을 마친 뒤, 가게를 둘러보니 일하시는 분들이 사진과 관련된 글 같은 것을 발견하였다. 중국어라 잘 모르지만 아마도 탁구 선수로 활동을 하셨었고 꽤 좋은 성적을 거둔 적도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음식이 나오고 맛있게 먹었다. 그리고 계산하고 나왔다. 나중에 찾아보니 그 가게는 대만의 희귀 질환을 가진 분들을 도와주는 재단과 연계된 식당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지하철로 향하는 길에 보이던 노포 카페와 같은 곳에 들어갔다. 실내에는 원두와 커피 필터 등 기구도 판매하시고 있었다. 이곳은 특이하게도 커피를 사이폰 방식으로 만들어주고 계셨다. 말로만 들어본 사이폰 커피를 우연히 마셔볼 수 있게 된 것이다. 나와 아내는 커피를 주문하고 아이는 와플을 주문했다. 처음 접한 사이폰 커피는 드립 커피와는 또 다른 느낌을 주었다. 커피를 마시며 아내와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 보니 커피 한잔을 금방 마시게 되었는데, 또 좋은 점이 커피 리필을 해주었다. 이렇게 좋은 곳을 우연히 만날 수 있다니. 좋은 하루 같다.


오늘 방문한 식당에선 맛있는 샤브를 먹었고, 카페에선 향이 좋은 커피와 디저트를 먹었다. 두 곳 모두 좋은 경험을 하게 해 주었다. 다른 점이 있다면 샤브 가게에서 일하는 분들이 조금 달랐다는 점이다. '일반인', '일반적인' 같은 단어에는 어떻게 보면 나 혹은 우리와 다른 점이 있는 상대를 '일반적이지 않다'라고 규정하는 의미가 들어가 있는지도 모른다. 오늘 만난 키가 작은 분들도 한 사회의 구성원으로 역할을 하고 있는 사람일 것인데, 단지 키가 작다는 것 때문에 그들의 요리 실력을 의심할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이 의미 비약일 것이다. 그럼에도 혹시 모를 상황이 걱정되어 그런 생각을 해본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