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살이를 마치고 한국에 돌아오니 봄이 오고 있었다. 분명 떠나기 전에 많은 눈을 봤었는데, 그 기억이 나지 않았다. 타국에서의 한달을 보내고 온 뒤 휴식을 이유로, 서울보다 좀더 따뜻한 제주도 여행도 다시 여행을 다녀와서 그런 것일 수도 있다. 그렇게 봄을 맞이하고 여름, 가을, 겨울을 지나 다시금 봄과 여름이 지나고 있다.
사실 제주도 여행을 다녀온 뒤 아파트에 화재가 나면서, 다시 한번 집 밖에 나가서 살아야 했다. 그동안 조짐이 보였던터라 '혹시라도 불이 나면 어쩌나' 란 생각을 하기도 했는데, 막상 사고나 발생하니 무엇보다 아내와 아이만 데리고 황급히 대피를 하게 됐다. 집안 곳곳이 피해를 입었고 몸과 마음이 지쳤지만 어쨋든 우리 가족은 무사하니 된 것이라도 안위했다.
사고를 수습하는 와중에도 아이의 귀 관리를 위해 최선을 다 했다. 매일 잘 닦아주고 말려주었다. 자기 전 밴드를 붙여주고, 아침에 일어나 떼어진 곳은 없는지 살폈다. 중간중간 피부 부위가 빨갛게 되거나 혹은 어떤 궁금증이 생기면 카톡을 통해 애니에게 문의를 했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는데 유치원 선생님들과 친구들도 많은 도움을 주었다. 대만에서 돌아온 아이는 한동안 유치원을 다시 가는 것에 거부감을 표현했다. 한달이 넘는 시간동안 엄마, 아빠와 지내면서 친구와 어색함이 생기면 어쩔지도 고민하는듯 했고, 변화된 신체에 대해 다른 사람의 반응이 어색하기도 했을 것 같다. 다행히 선생님은 적응을 위해 처음 유치원에 등원하듯이 하루에 몇시간 이라도 지내보면 좋지 않겠냐고 얘기 해주셨고, 적응의 기간을 거친 뒤 새 학기부터는 다시 유치원에 등원할 수 있었다.
그런 과정을 겪으면서 일상도 아이의 새로운 귀도 자연스럽게 삶 속으로 스며들었다. 그렇게 계절이 지나고 아이는 유치원을 졸업하고 초등학교에 입학 했다. 감사하게도 학교 생활도 별 탈 없이 흘러가고 있다.
하지만 익숙한 순간 속에서 그렇지 않은 순간을 마주칠 때도 있다. 어느 저녁, 아이와 씻고 나와 얼굴에 로션을 발라주는데 아이가 얘기한다. "여기 귀는 좀 딱딱한거 같아." 그런 얘기를 들으면 혹시나 낮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걱정이 든다. "왜? 무슨 일 있었어?" 라고 물어보면 "그건 아니고 이쪽 귀는 말랑한데 여기는 딱딱해서." 라고 답한다. 다시 한번 "그래서 싫어?"라고 되물어 본다. "아니. 그래도 좀 말랑하면 좋겠어." 라고 얘기한다. 처음엔 조심스러워하다 요즘엔 수술한 귀 방향으로도 베개를 잘 배고 자서 별 생각이 없었지만, 그래도 보형물이 주는 이질감이 있을 것이다. 그럴 때면 '그렇지. 대만에서의 시간은 과정이었지.' 라도 다시 깨닫게 된다. 그리고 아이와 아내와 내가 어떠한 순간을 겪을 지, 그런 순간에 어떻게 해야할지 생각해본다.
* 전해 듣기론 우리가 마지막 진료를 받을 때, 닥터 첸이 보여줬던 고어텍스 기반의 소재를 수술에 활용하는 케이스가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기술이 계속 발전하고 있다고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