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헨 호수의 비밀 by Janna Ji Wonders
제17회 EBS국제다큐영화제(EIDF)에서 상영작으로 선정된 <발헨 호수의 비밀>은 여성들이 서사를 이끄는 다양한 형식과 주제의 작품들을 소개하는 ‘여, 성(聲)’이라는 특별 섹션의 작품으로 세대에서 세대로 이어지는 한 가족사 속 여성들의 이야기이다. 야나 지 원더스 감독 가족의 매우 개인적인 내용이지만, 이들의 꺼내기 어려운 순간들부터 행복했던 순간들까지 풍부한 아카이브와 감독의 시선으로 세심하게 담아낸다. 지난 100년에 걸쳐 이어져온 네 여성의 삶을 통해 삶과 사랑, 그리고 죽음을 좇는 여정에서 정체성, 뿌리 그리고 자아실현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영화이다.
기본적으로 외증조할머니(노마), 외할머니(아파), 어머니(안나), 딸(야나)이라는 4세대의 여성이 각 세대의 삶을 수직적으로 보여 준다. 각자의 시대에서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가부장제에 저항하며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부재는 이들 간의 결속력을 더욱 단단하게 만드는 요소가 된다. 또한, 인터뷰 형식으로 진행되며 화면 앞에 앉은 교체되는 대상은 현재 시점에서의 각 세대의 여성들을 수평적으로 보여 주는 동시에 순환적인 관계를 보여 준다. 요정 분장을 한 어린 시절의 야나 감독의 모습으로 시작하여, 외증조할머니, 외할머니, 어머니의 삶과 함께 외할머니의 죽음까지 담아낸 후 야나 감독의 딸로 마치는 흐름의 구성은 각 세대의 걸친 여성들의 순환적인 연대를 보여주기에도 충분하다. 어느 방향으로도 연결된 형식을 통해 이들의 깊은 유대를 보여 준다.
수많은 역사 이래, 지금까지 전해져 오는 대부분의 아카이브들은 남성에 의해 쓰여져 여성은 대상화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영화에서 보여지는 아카이브의 대부분은 야나와 안나, 프라우크와 같이 여성에 의해 기록된 역사들이다. 그 덕분에 우리는 가감 없이 있는 그대로 그들이 보여주고자 했던 그들의 시절을 우리는 체험할 수 있고 엿볼 수 있다.
영화가 야나의 시선이라면 사진은 안나의 시선이다. 안나의 기록물인 프라우크를 대상으로 한 사진들은 특히나 두드러지게 매력적이다. 이는 안나가 사진작가인 덕도 있겠지만 프라우크에 대한 높은 이해도와 애정 덕분이다. 또한 프라우크에 대해 인터뷰하는 안나의 얼굴과 미세한 표정들에서 다양한 감정이 보이는데 그리움뿐만 아니라 가부장적인 아버지의 자매에 대한 다른 태도에서 오는 질투를 닮은 감정에 대한 상기도 느껴진다. 이러한 안나의 프라우크를 향한 다양한 감정들이 안나의 표정과, 안나의 시선으로 바라본 기록물들을 통하여 관객들로 하여금 감화를 일으키기에 충분하다.
가장 인상적인 장면을 하나 꼽으라 하면 야나 감독이 할머니 아파를 뮤직비디오로 등장시킨 장면인데, 즉각적인 시각 효과부터 영화의 전체적인 맥락을 함축하고 있는 장면이다. 할머니를 펑크 음악 뮤직비디오에 등장시킨 참신한 발상이 여성을 편협적으로 바라보지 않는 야나 감독의 기본적인 시선이자 야나 감독만의 특별함인 것이다. 또한 화장을 하고 가체를 머리에 올린 모습에서 하나씩 소거하는 과정을 담아낸 것은 이 영화에서 주로 보여준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바라보길 바라는 감독의 의도가 더욱 선명해지는 구간이다.
외증조할머니부터 내려온 카페로 연결된 그녀들의 연대는 넓고 깊은 발헨 호수와도 맞닿아 있다. 픽스와 유연한 패닝으로 따라가는 감독의 시선은 발헨 호수의 비경을 부가시킨다. 4세대에 걸친 여성 서사와 이를 보여주는 다양한 형태의 풍부한 아카이브에 적절한 음악과 암시적인 인서트들을 이용한 연출이 발헨 호수를 둘러싼 야나 지 원더스 감독의 이야기를 전달하는 데에 충분한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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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Deckert Distribu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