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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는 이해하고 배려하는 방법

퇴직 후

by 백승인

아내가 친구들과 여행을 떠나기 전, 냉장고에 반찬을 가득 채워두며 당부했다.

"끼니 거르지 말고 잘 챙겨 먹어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혼자서 반찬을 꺼내 먹는 일이 영 귀찮았다. 결국 라면을 끓이거나 빵으로 대충 때우기 일쑤였고, 종종 밖에서 사 먹기도 했다. 며칠 뒤 여행에서 돌아온 아내는 손도 대지 않은 채 그대로 남아 있는 반찬을 보고 한숨을 쉬었다.

"꺼내 먹는 것도 못 하냐고!"


그 후 어느 날, 아내는 아버지의 부엌이라는 일본 작가의 에세이를 건네며 읽어보라고 권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딸이 평생 부엌에 들어가 본 적 없는 아버지에게 요리를 가르치는 내용이다. 아내는 내게 간편하게 할 수 있는 요리라도 배워야 한다며 잔소리를 늘어놓았다. 자신이 아프거나 집을 비우는 일이 생겼을 때를 대비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내의 마음을 알기에 나는 요리를 제대로 배워보겠다고 결심했다. 요리학원에 등록해 매일 4시간씩 두 달 동안 한식 조리기능사와 밑반찬 과정, 그리고 양식 및 브런치 과정을 수강했다. 당초 자격증을 따려고 한 건 아닌데 이론 공부를 하다 보니 욕심이 생겨 시험도 치렀다. 이론 시험은 한식과 양식 모두 한 번에 통과했지만, 실기 시험은 한식만 세 번 도전한 끝에 미련 없이 포기했다.


요리를 배우는 과정이 힘들었다. 하루 수강하는 4시간 중에 이론 1시간을 빼고 3시간 동안 선 채로 실습하다 보니 다리가 아팠다. 칼질이 서툴러 간혹 손을 베는 날도 있었다. 음식에 따라 다르게 사용하는 기본적인 양념조차 모르니 어려울 수밖에 없었다. 예를 들면 소금이나 간장은 어떤 것을 사용해야 하는지 매번 고민했는데, 학원 수강기간이 끝날 때쯤 돼서야 알았다. 입시 공부하듯 소설파마참후깨, 간설파마참후깨로 외웠다. 그럼에도 학원에서 배우는 동안에는 비빔밥, 잡채 등 한식 30여 가지와 각종 샌드위치, 파스타, 샐러드 등 양식도 웬만한 메뉴를 직접 만들었다.



요리학원에서 실습한 음식을 집으로 가져와 아내와 함께 먹는 일은 새로운 즐거움이었다. 내가 만든 음식을 맛있게 먹는 아내를 보며 대화 소재도 늘고, 함께하는 시간이 더 따뜻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막상 일상에서 크게 달라진 것은 없다. 추석 때는 일손을 거든다며 육원전을 만든다고 나섰다가 두부의 물기를 제대로 빼지 않아 엉망이 되었다. 결국 아내의 손길이 더해져 수습했다. 아내에게 투움바 파스타를 만들어 주겠다고 약속했지만, 1년이 지나도록 그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그래도 변한 점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아내가 친구들과 김장을 하러 가며 이틀 동안 집을 비웠을 때다. 떠나기 전, 국과 여러 가지 반찬을 정성스럽게 만들어 놓고 갔다. 나는 아내의 수고를 떠올리며 끼니마다 부지런히 반찬을 꺼내 먹었다. 돌아온 아내는 텅 빈 반찬통을 보고 기뻐하며 웃었다. 하나 덧붙이자면, 전에는 아내가 주방에 있을 때 나는 거실 소파에 앉아 있곤 했는데, 지금은 수시로 아내가 음식을 만드는 걸 옆에서 보며 재료나 조리법에 대해 이야기한다.


어쩌면 요리를 배우는 과정은 단순히 끼니를 해결하는 법을 익히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더 깊이 이해하고 배려하는 방법을 배우는 시간이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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