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 후
퇴직 후, 나는 동갑내기 동료 세 사람과 함께 작은 사무실을 차렸다. 우리는 오전 10시경 사무실에 나와 오후 5시 이전에 집으로 돌아가는 일상에서 새로운 활력을 느꼈다. 오전에는 인터넷 검색을 하고 책을 읽거나 춘란을 기르는 등 각자의 취미생활을 한 후, 점심을 먹은 다음 근처 당구장에서 큐를 잡았다. 한 사람은 당구 수지가 4구 기준 150점 수준이었고, 나를 포함해 세 사람은 이제 막 배우기 시작한 단계였다. 당구장을 매일 가다 보니 아예 당구대를 사는 게 경제적이겠다는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나왔다.
동료 중 한 사람은 나와 공채 동기다. 신규 교육을 함께 받으며 시작된 인연은 한참 끊어졌다가, 그가 우리 기관으로 오면서 다시 이어졌다. 자연스럽게 수시로 안부를 주고받으며, 기회가 될 때마다 둘이 혹은 다른 사람들과 함께 어울린 세월이 10여 년에 가깝다. 나의 중학교 동창이 그의 고등학교 동창이자 해병대 전우인 절친이니, 우리는 흔히 말하는 대로 ‘한 다리 건너 친구’이다. 부부 동반으로 서유럽 단체 여행을 다녀오기도 해 아내끼리 언니, 동생 하는 사이가 됐다.
그는 나보다 1년 앞서 퇴직했는데, 퇴직 후 공인중개사 자격증을 땄다. 틈틈이 지인이 운영하는 중개사 사무소에서 실습을 했고, 조만간 개업할 예정이었다. 그는 당구를 좋아했고, 사람들과 어울려 술 마시는 것을 즐겼다. 반면에 세 사람은 음주를 하지 않았다. 우리 사무실이 들어있는 건물 1층에는 점포가 4개 있는데 호프집, 실내포차 등 모두 주점이다. 그렇지만 우리는 사무실에서 3개월을 함께 지냈는데도 다 같이 맥주 한 잔조차 나누지 않았다.
어느 금요일 저녁, 사무실 문을 닫고 나오면서 그가 농담처럼 말했다.
"다음 주 월요일 저녁에 1층에 있는 호프집에서 한 잔 하는 건 어때?"
내가 말했다.
"좋지, 그리고 현직에 있을 때처럼 일주일에 한 번 정도는 양복을 입고 나오자. “
그런데 월요일 아침, 그의 부고 소식을 들었다. 그는 일요일 밤 갑작스러운 사고로 먼 길을 떠났다.
월요일 저녁, 남은 우리는 양복을 꺼내 입고 그를 떠나보냈다. 오랜만에 걸친 양복이 내 옷이 아닌 것처럼 어색했다. 손에 든 것은 호프 잔이 아니라 국화 한 송이였다.
늘 그랬던 것처럼 오전 10시쯤 되면 그가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오면서 "좋은 아침!"이라고 인사를 할 것 같았는데,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평상시 그가 오던 길을 공연히 창밖으로 내다보는 날도 있었다. 우리는 그의 빈자리 때문에 마음이 헛헛하고, 퇴근길 마지막 약속이 떠오를 때면 가슴이 먹먹했다. 그를 보내고 나서 우리는 무엇이든 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내일로 미루지 말고 오늘 당장 하자고 다짐했다.
며칠 뒤, 우리는 사무실에 당구대를 들여놓았다. 점심을 먹고 당구장에 가는 대신 사무실에서 큐를 잡았다. 당구를 좋아했던 그의 몫까지 열심히 했다. 그리고 가끔은 함께 여행을 다녔다.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술을 마시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