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 후
나는 우리 지역 행정동우회의 운영위원으로 매달 한 차례 열리는 회의에 참석한다. 위원은 모두 18명이며, 그중에는 퇴직 후 5년째 지역 신문 기자로 활동하는 동료가 있다. 내가 나가던 사무실을 정리했다고 하자, 그 동료는 자신이 소속된 신문사에 마침 공석이 있다며 본사에 추천해 주겠다고 제안했다. 예전 같으면 엄두가 나지 않아 거절했겠지만, 새로운 경험을 해볼 수 있다는 기대감에 이력서를 제출했다. 나이를 먹어 가면서 오히려 무모한 도전 정신이 커지는 모양새다.
현직에 있을 때 책상 위에 매일 10여 종의 신문이 놓여 있었지만, 굳이 펼쳐볼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홍보부서 담당자가 전자결재 시스템을 통해 관련 기사를 스크랩해 주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느 정도 규모가 있는 일부 일간지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지역 신문에 대해 아는 바가 없다. 함께 나이 먹어가는 출입 기자들과 아주 가끔 밥도 먹었지만, 그들의 소속사는 잘 알지 못했다.
며칠 후, 신문사를 방문해 대표이사에게 사령장을 받았다. 사령장 수여와 편집회의 등 행사가 끝난 후 신분증과 명함, 차량에 부착할 '취재 차량' 표찰을 받고 나서도 그저 신기할 뿐 기자가 됐다는 현실을 실감하지 못했다. 명함을 보니 편집국 사회부 소속으로 직위는 국장이다. 다른 지역 기자들과 인사를 나누었는데, 그들 역시 대부분 나와 같은 소속의 국장 직위를 가지고 있다. 행사 전에 서명한 협의서에는 프리랜서 기자로서 겸직이 가능하며, 취재 수당은 신문 유가부수 금액에서 상계 처리된다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또한 광고 부문, 계약 해지 및 손해배상 조항도 있다. 복사본을 받지 못해 서명하면서 사진을 찍어둔 것이 그나마 다행이다.
나는 MBTI의 4개 선호 지표 중 판단-인식(J-P) 지표에서 판단(J) 형에 해당한다. 하루 자고 오는 여행조차 숙소를 미리 정해야 마음이 편해지는 성향이다. 수십 년 동안 지역 신문 기자를 가깝고도 먼 거리에서 지켜봐 왔지만, 실제로 어떤 일을 하는지 정확히 알지 못했기에 불안했다. 그래서 지역 신문 기자의 업무와 처우에 대해 알아보았다. 주요 취재 분야로 기초지자체 행정, 지방의회 활동, 지역 사건·사고, 경제와 생활 이슈 등이 있으며, 하루 일과는 일반적으로 오전에 출입처 브리핑에 참석하거나 홍보부서와 연락해 주요 현안을 확인하고, 오후에는 인터뷰나 현장 취재를, 저녁에는 지역 인사들과 정보 교류 활동을 한다고 했다. 처우와 신분을 살펴보니 나와 같은 프리랜서는 개인사업자로 간주되므로 4대 보험이 적용되지 않고, 원고료나 기획기사 건별 지급 방식으로 활동하는 경우에 해당한다.
프리랜서 기자는 비록 경제적 안정성이 낮지만, 나는 공직 경험을 바탕으로 기초지자체 행정이나 정책 분석에 강점이 있기 때문에 지역 문제를 취재하고 보도하는 의미 있는 역할을 할 수 있으며, 가능한지 모르겠지만 객원기자로서 원하는 주제를 중심으로 취재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결론 내렸다. 이러한 분석을 통해 당분간 선배 기자나 다른 지역 신문 기자들의 취재 활동을 지켜보면서 배운 후, 지역 사회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나만의 방법을 찾겠다고 다짐했다. 무모하지만 의미 있고 도움 되는 기자 생활을 해보자는 결심이 섰다. 내일은 또 어떤 일이 생길지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