ㄷ깊은 산 오솔길 옆 자그마한 연못엔 / 지금은 더러운 물만 고이고 아무것도 살지 않지만 / 먼 옛날, 이 연못엔 예쁜 붕어 두 마리 / 살고 있었다고 전해지지요. 깊은 산 작은 연못
어느 맑은 여름날 연못 속에 붕어 두 마리 / 서로 싸워 한 마리는 물 위에 떠오르고 / 여린 살이 썩어 들어가 물도 따라 썩어 들어가 / 연못 속에선 아무것도 살 수 없게 되었죠
깊은 산 오솔길 옆 자그마한 연못엔 / 지금은 더러운 물만 고이고 아무것도 살지 않죠 / 푸르던 나뭇잎이 한 잎 두 잎 떨어져 / 연못 위에 작은 배 띄우다가 물속 깊이 가라앉으면 / 집 잃은 꽃사슴이 산속을 헤매다가 / 연못을 찾아와 물을 마시고 살며시 잠들게 되죠
해는 서산에 지고 저녁 산은 고요한데 / 산허리로 무당벌레 하나 휘익 지나간 후에 / 검은 물만 고인 채 한없는 세월 속을 / 한없이 몸짓으로 헤매다 수많은 계절을 맞죠 / 깊은 산 오솔길 옆 자그마한 연못엔 / 지금은 더러운 물만 고이고 아무것도 살지 않죠
옛적 독일 하멜른 마을에서 벌어진 일이다. 어느 날 갑자기 엄청난 무리의 쥐들이 마을에 나타났다. 마을 사람들은 종일 쥐 때문에 고통을 받아야만 했다. 심지어 고양이마저도 쥐잡기를 포기하기에 이르렀다. 결국 마을 시장은 쥐를 퇴치한 이에게 포상을 하겠노라며 상금으로 천 냥을 걸었다. 그때 모자와 망토 차림의 사나이가 마을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제가 쥐를 퇴치하겠습니다.”라고
그 사내는 마을을 거닐면서 피리를 불기 시작했다. 그 피리 소리와 함께 쥐들은 몰려나왔고, 베저강에 뛰어들기 시작했다. 마침내 쥐떼가 사라지자, 마을은 다시 평화로워졌다. 문제는 마을 사람들의 마음이 변했다는 점이다. 피리 부는 사나이에게 약속한 천 냥이 아까웠기 때문이다. 약속을 어긴 마을 사람들에게 피리 부는 사나이는 이렇게 말한다. “반드시 후회할 것이요.”라고
이윽고 피리를 꺼낸 그 사나이가 연주를 시작했다. 그러자 마을 꼬마들이 줄지어 그를 따르기 시작했다. 어른들이 아무리 말려도 아이들은 마치 뭔가에 홀린 표정으로 서쪽을 걸어갔다. 아이들을 데리고 행진하듯 거닐던 사내는 멈춘 곳은 서쪽 산 부근 커다란 바위 앞이었다. 잠시 후, 그 바위가 번쩍 갈라지더니 동굴이 나타났다. 사내는 여전히 피리를 불면서 아이들을 끌고선 동굴로 들어갔다. 그러자 바위가 굳게 닫혔다. 마을 사람들은 발을 동동 굴렀지만, 아이들의 행방은 알 수가 없었다.
그림 형제가 발표한 동화 『피리 부는 사나이』의 줄거리이다. 어린이를 위한 동화라기엔 내용이 끔찍한데 이를 잔혹 동화라 부른다. 이 괴상한 일이 실제 기록으로 남아있다. 당시 독일에서는 137명이 어린이들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과연 피리 부는 사나이는 유괴범일까? 사나이의 피리 소리에 따라 지하 세계로 내려간 아이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김민기의 <작은 연못>은 동화 『피리 부는 사나이』를 떠오르게 한다. 노래는 친근한 동요풍이지만 가사 내용은 사뭇 충격적이다. 앞부분은 동요풍 멜로디로 진행되지만“어느 맑은 여름날~”부터는 어두운 분위기로 바뀐다. 이어서 연못 속에 평화롭게 살던 붕어들이 서로 싸우다가 물이 썩어서 결국 공멸한다는 내용으로 결말을 맺는다. 평화롭던 연못에서의 벌어진 비극적 사건을 은유적으로 풍자하고 있는 것이다. 이 곡은 김민기의 창작곡이지만 재동초등학교 1년 후배인 양희은의 1972년도 앨범에 수록되어 있다.
김민기의 노래는 울림이 크다. 듣다보면 산란한 마음도 가라앉혀진다. 그의 저음은 영적 정화를 경험케 해 준다. 혹자는 그를 밥 딜런과도 비교하지만, 그의 순결한 인생과 음악 세계는 밥 딜런보다 치열했고 구도자적이다.가왕 조용필도 그 앞에서는 말없이 술만 마실뿐 말을 건네지 못했다고 하던가. 김민기, 그는 우리 시대의 음유시인이자 언행일치의 삶을 보여준 시대의 현자이다.
김민기는 1971년에 <김민기 1집>을 발표했지만, 서울대 문리대 신입생 환영회 때 불렸던 노래가 문제가 되어서 경찰서에 끌려갔다. 얼마뒤 독재 정권은 <김민기 1집> 앨범 자체를 금지시켰다. 이는 독재정권과의 길고 긴 불화의 시작에 불과했다. 서슬 퍼런 5공 무렵, 민통선에서 농사를 지었던 김민기는 상경하여 극단 학전과 인연을 맺게 된다. 이때 그는 극단의 빚을 갚고자 서울 음반으로부터 선불 5천만 원을 조건으로 네 장 시리즈로 앨범을 발표한다. <작은 연못>은 4번째 앨범에 들어있다. 때는 1992년이었다.
<작은 연못>이 담긴 앨범 표지에는 김민기 얼굴이 나와있다. 흑백의 무거운 색조 바탕 위에 우울함과 어딘가를 바라보는 그의 표정이 커버 전체를 압도하고 있다. 양희은의 <작은 연못>이 빠른 템포에 산뜻한 분위기라면, 김민기가 부르는 <작은 연못>은 저음의 베이스 톤으로 음유적이다. 그래서 양희은이 노래한 <작은 연못>은 따라 부르기 좋고, 김민기 버전은 사유하기에 적절하다. 1987년에 금지곡에서 풀린 <작은 연못>은 <아침이슬>, <상록수>와 더불어 우리 시대의 서정적인 저항가요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작은 연못>의 노랫말처럼 세상은 종말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오늘도 일본 열도에는 후쿠시만 원전 오염수가 수만 톤씩 바다에 버려지고 있다. 뿐이랴, 지구 이상 기온으로 일찍이 볼 수 없었던 산불이 호주에서, 캐나다에서 산림을 불태우고 있다. 물의 도시 베네치아와 인도네시아의 수도 자카르타는 도시가 물에 잠길 지경이란다. 이제 지구의 종말은 미래 후손들 문제가 아닌, 당장 인류의 생사가 달린 시급한 일이 되었다.
어이없는 일이 있다. 몇 해 전 지구 온난화로 북극의 빙하가 녹아버리자 북태평양과 북대서양이 이어지는 바닷길이 생기고 말았다. 이쯤 되면 재앙이 턱 밑까지 도달했음을 실감하게 된다. 하지만 인간은 경악할만한 동물이었다. 녹아버린 북극해, 이른바 북극항로를 이용하면 물류비용을 아낄 수 있다며 여러 나라들이 좋아한다는 것이다. 자본에 환장하면 제정신을 잃게 되는 모양이다. 잔혹 동화보다 더 잔혹한 재앙을 보고도 좋다니 할 말이 없다.
지구라는 연못은 하루가 다르게 망가지고 있는데 철없는 붕어들은 여전히 욕망에 눈이 멀어있다. 이러다가 동화 속 피리 부는 사나이가 재림하여 피리를 불어대면 어떻게 감당할는지? 결국 붕어들이 거의 다 죽게 되어 물 위에 둥둥 떠다녀야 하는 것이지. 그제야 약속을 배반했던 하멜른 사람들처럼 울며 불면서 피리 연주를 멈춰달라고 애원할지도 모르겠다. 그렇다고 그의 연주가 멈출까? 바위 동굴로 사라져 버린 아이들처럼 우리 인류도 사라질 것만 같다.지구의 파괴 상태가 예상보다 빠르다면서 과학자들은 경고하고 있다.
빈대 잡겠다면서 초가삼간을 태우는 어리석음. 그 잿더미에는 집착과욕망, 경쟁 등이 뒹굴고 있을 것이다. 붉은빛이 차오르는 서녘 하늘을 두려운 심정으로 바라본다. '안 되는데... 정말 안 되는데...' 지금 순간에도 숲은 불에 타오르고, 바다는 원전 오염수와 섞이고 있다. 붕어가 물 위로 여기저기 떠오를 것만 같다. 문득 『우리 문명의 마지막 시간』이라는 섬찟한 제목의 책이 떠오른다. 몸서리가 쳐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