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 아이유
다시 누군가 사랑할 수 있을까
예쁘다는 말 들을 수 있을까
하루 단 하루만 기회가 온다면
죽을힘을 다해 빛나리
(아이유, 드라마)
다시 회사 이야기다. 작년 가을, 이제 직원들의 인건비도 회사가 주지 못하게 될 거라는 이야기가 돌고 있었다. 그즈음 공석인 대표직을 맡은 대표대행의 취임식이 열렸다. 말이 취임식이지 거의 간단한 직원간담회였는데, 대표대행에게 이 위기를 극복할 어떤 묘안이 있을까 많은 직원들이 궁금해하고 있었다.
라디오 공개방송 스튜디오의 전 좌석을 가득 메운 직원들. 나는 그틈에서 몇몇 직원들과 선 채로 대표대행의 취임사를 듣고 있었다. 그런데 그가 이런 말을 했다.
"제가 전 직장에서 2009년 부당해임을 당하고, 취소소송을 해서 2012년에 최종 승소를 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최종 승소를 하니 후회가 됐습니다. 오로지 승소만 바라보고 그 시간을 힘들어만 한 것이 후회가 됐습니다. 그 시간을 힘들어만 하지 말고, 조금 더 잘 보냈으면 어땠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는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재수생 자녀를 둔 외벌이 남자 선배, 이제 막 가정을 꾸리고 임신 계획을 세우고 있던 후배, 결혼을 앞두고 있는 여자 후배, 혼자 방송국 인근에서 자취하며 차곡차곡 미래를 준비하던 후배. 다들 흔들리는 조직을 바라보며 걱정에 잠 못 들고 있었다. 성과급은 나오지 않은 지 오래고, 초과근무 수당을 받지 못해 주말에 택배 상하차 알바를 시작하는 동료들도 있었다.
나 역시 이대로 재정 위기가 심각해져 조직이 사라지면 어디에서 무엇을 해야 할까 고심이 깊어지던 날들이었다. 그런데 만약 내가 힘들어만 하는 오늘이 나중에 내가 힘들어만 하지 말고 잘 보낼 걸... 하며 아쉬워하는 날이 된다면 어떨까? 어차피 내가 힘들어하든 힘들어하지 않든 상황은 그대로인데. 그렇다면 그 상황에서 내가 힘들어만 하지 말고 할 수 있는 게 무엇일까?
그런 생각 끝에 그즈음부터 나는 좀 더 적극적으로 책을 읽고,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 시간을 거쳐 탄생한 책이 전작인 '당신은, 이미 대단한 사람'이기도 하다.) 그리고 읽어볼 만한 책의 리스트를 만들어 한 권씩 지워나가는 즐거움은 생각보다 컸다. '초격차(넘볼 수 없는 차이를 만드는 격)'(권오현, 김상근 저)같은 자기계발서를 읽으며 좋은 리더상에 대해 고민해보기도 하고, 한강의 소설들과 청소년 문학소설들을 읽으며 찔끔 눈물 흘리기도 했다. 그리고 그때 읽었던 책 중에서 지금도 나의 마음 한켠에 깊은 감동으로 남은 책은 '긴긴밤'이라는 어린이문학소설이다.
'긴긴밤'은 코뿔소 노든과 펭귄 치쿠가 등장하는 이야기다. 코뿔소 노든은 동물원에서 태어나 코끼리 무리에서 자라지만, 방생 후 자연에서 아내와 딸을 만나 행복한 시간을 보낸다. 그러나 밀렵꾼들의 습격으로 가족을 잃고, 다시 동물원으로 끌려온다. 그곳에서 반항적인 태도를 보이던 노든은 동물원에서 유일하게 자신을 이해해 준 코뿔소 친구와 탈출을 시도하지만 실패하고, 친구마저 잃게 된다.
그러던 어느 날, 아무도 돌보지 않는 알을 품고 있는 펭귄 치쿠를 만나게 된다. 전쟁이 터지고 동물원이 폐허가 되는 날, 노든과 치쿠는 알과 함께 탈출하게 된다. 펭귄 치쿠는 새끼 펭귄이 태어나기 위해서는 반드시 바다로 가야 한다고 믿고, 노든과 함께 긴 여정을 떠난다. 하지만 치쿠는 결국 힘겨운 여정 끝에 세상을 떠나고, 남겨진 노든이 새끼 펭귄을 품고 바다를 찾아 나선다.
태어나서 한 번도 바다를 본 적 없던 새끼 펭귄은 노든을 통해 세상을 배운다. 사막과 산을 넘으며 길을 찾던 중, 다시 인간들에게 잡히지만, 노든은 연구와 보호를 받으며 초원에 남기로 결정한다. 그리고 새끼 펭귄에게 말한다.
"이제 너의 바다를 찾아 떠나라."
망설이던 새끼 펭귄은 마침내 떠나고, 끝없는 여정 끝에 바다에 다다른다. 자신이 얻은 자유가 자신만의 것이 아님을 깨닫고, 더욱 힘차게 헤엄치는 새끼 펭귄. 긴긴밤 끝에 마침내 별을 찾은 코뿔소와 펭귄의 이야기다.
아이유가 자작한 '드라마'라는 노래에는 이런 가사가 나온다. '다시 누군가 사랑할 수 있을까. 예쁘다는 말 들을 수 있을까. 하루 단 하루만 기회가 온다면 죽을힘을 다해 빛나리'.
시덥지 않은 노래 가사같지만 '오늘이 내가 살아있는 날 중에 가장 젊은 날'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그렇다면 정말 죽을힘을 다해 빛나야 하지 않을까. 더 많이 웃고, 더 많이 아이들을 사랑해주고. 더 열심히 일하고, 생각을 해야지.
나는 오늘 하루도 죽을힘을 다해 빛나기로 조용히 결심한다.
그리고 그렇게 나아가는 우리 모두가, 각자의 긴긴밤을 지나 마침내 별을 맞이하길 바란다.
(글에 등장하는 노래)
드라마-아이유
https://www.youtube.com/watch?v=vORDkdgLz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