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카 - 뉴질랜드 마오리족
원래부터 내 길이 있는 게 아니라
가다보면 어찌어찌 내 길이 되는 거야.
못 알아들으면 이렇게 말해버려
그건 니 생각이고
(그건 니 생각이고 - 장기하)
‘원래부터 내 길이 있는 게 아니라 가다보면 어찌어찌 내 길이 되는 거야’. 나는 요즘 담백한 장기하의 이 가사가 가슴 깊이 와닿는다. 태어날 때부터 정해진 운명이 있다는 말은 "그건 니 생각"일 뿐. 우리는 한 걸음 한 걸음 걸어가며 우리만의 이야기를 써내려간다. 하지만 그 여정에서 문득문득 타인의 찬란한 길에 시선을 빼앗기고, 내가 걷는 이 길이 과연 옳은 것인지 마음이 흔들리곤 한다.
삶에서 만난 과한 것들은 종종 우리를 불편하게 만든다. 설렘 가득한 마음으로 과자 봉지를 열었는데 허공만 가득한 순간의 씁쓸함, 기대에 부풀어 극장을 찾았지만 실망스러운 영화에 무거워진 발걸음, 나를 과대포장하는 칭찬 속에서 느끼는 어색함까지. 이처럼 현실과 기대 사이의 간극은 우리를 실망시키고 혼란스럽게 만든다.
이런 간극은 우리가 타인을 바라볼 때도 마찬가지다. 주변의 '영웅'들에게도 적용된다. 그들은 분명 대단하다. 나이가 들수록 그들의 높이는 더욱 아득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그들의 진솔한 이야기를 들어보면 위대해지려 안간힘을 쓴 사람은 없다. 그저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걸었을 뿐이다. 어쩌면 그들은 자신들이 과대포장되고, 우상화되는 것을 내켜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런데 우리는 그들의 찬란한 결과물만을 바라보며 스스로를 자책하고, 불안에 떨며 시간을 허비한다.
언젠가 훈련장에서 무심코 내뱉은 김연아 선수의 담담한 한마디가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중요한 경기를 앞둔 새벽, 평소와 다름없이 복도에 매트를 깔고 몸을 풀고 있는 그녀에게 묻는다.
"무슨 생각을 하면서 하세요?"
그러자 그녀가 말한다.
"무슨 생각을 해. 그냥 하는 거지."
수많은 카메라 플래시 속에서도, 그녀는 그저 자신의 길을 걸었다. 국민의 영웅이 된 순간에도 "평범한 직장인들처럼 나는 그저 내 일을 열심히 한 것"이라는 겸손한 고백을 남겼다. 때론 세상의 관심을 받을 수도, 그러지 못할 수도 있다. 하지만 대체로 그녀처럼 '내 일을 열심히 하는 사람들'은 주목을 받으면 받는대로 주목을 받지 못하면 못하는대로 '그냥' 한다. 그저 계속 걸을 뿐이다. 묵묵히 걸어갈 뿐이다.
회사가 어려워지기 시작할 즈음 같은 업계로 이직한 동료가 있었다. 그리고 그 동료가 결혼 소식을 전해왔다. 이직한 지 거의 1년이 넘은 동료의 결혼식에는 이직한 회사의 동료들도 꽤 많이 참석했다. 이름만 들어도 알 수 있는 타 방송사의 MC들도 눈에 띄었다. 왁자지껄한 분위기에서 새로운 시작을 하는 신랑신부를 둘러싸고 박수치며 다같이 결혼식 사진을 찍는 순간, 여유로운 그들의 얼굴을 보며 축하하는 마음과 동시에 문득 불안이라는 싹이 내 맘에 올라왔다.
'나도 빨리 다른 길을 알아봐야 하는 거 아닐까. 내가 나태한 것이 아닐까. 지금 여기서 계속 프로그램을 제작하고 있는 게 맞나'
이전에도 막연히 이직에 대한 생각은 있었지만, 누군가의 기쁜 출발을 보는 순간 그 생각이 구체적인 불안으로 변했다. 그의 새 직장 동료들과 인맥을 보며, 내가 놓치고 있는 기회에 대한 두려움이 엄습했다. 하지만 동시에 내 마음 깊은 곳에서는 다른 목소리가 들렸다.
아직 사진을 찍고 있는 인파들을 뒤로 집으로 돌아오면서 아직은 지금 직장에서 가라고 떠밀어도 차마 내딛지 못할 내 마음이 느껴졌다. 그랬다. 아직 내 마음은 어떤 선택을 내릴 만큼 익지 못했다. 그리고 상반된 상황의 전 동료를 보는 순간, 더욱 명확하게 내 마음에 이런 울림이 퍼지기 시작했다.
'누가 알아주든 알아주지 않든 나는 내가 있어야 할 자리에서 내 일을 하고 싶다'
다만 내가 있어야 할 자리와 내가 해야 할 일을 알아보는 안목과 지혜가 있기를. 나는 돌아오는 차 안에서 내내 기도했다.
사실 '불안'이라는 것은 다른 이의 길을 넘겨다보며 비교하는 순간, 우리 마음속에 씨앗이 자라난다. 저 길은 얼마나 더 아름다울까, 내가 잘못된 선택을 한 걸까 하고. 그런데 화려한 소식, 화려한 SNS 게시물들 틈에서 우리는 흔들린다.
그럴때마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또 다른 결혼식 장면이 있다. 뉴질랜드 원주민 '마오리족'의 결혼식이다. 그들은 전통춤 '하카'로 새로운 출발을 하는 부부를 축복하는데 괴기스럽고 무섭기까지 한 함성과 춤사위 속에는 굉장히 깊은 뜻이 있다. 그들은 이렇게 외친다.
"옳은 것은 언제나 옳다
네게 지금 가장 큰 문제는 무엇이냐
얼마나 오래 그 문제를 가지고 있었느냐
잘 들어라
모든 것이 힘들어도
아무리 해결이 안 될 것 같아도
정답은 니 안에 존재한다
넌 그걸 극복할 강인한 전사이다 그걸 잊지마라
진실하라
스스로에게 진실하라..."
https://www.youtube.com/watch?v=EuUdSZEhlHk
https://www.youtube.com/shorts/ITBs6QUwrj0
친구들이 외치는 함성을 들으며 신랑과 신부, 하객들까지 눈시울이 붉어지는 이유를, 나는 알 것 같다. 그들도 불안하기 때문에, 그러나 목청껏 외치는 사람들의 함성에, 그들의 선조들로부터 내려 온 그 메시지에 그들은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될 것이다. 스스로에게 진실한 자신만의 길, 자신만의 답을.
참고는 하지만 남들의 길에서 내 삶의 해답을 찾으려 하지 않으려한다. 화려해보이는 다른 사람도 한걸음 한걸음 걸어가며 자신만의 길을 만들어냈을 뿐이다. 우연히 세상의 찬사를 받게 됐을지라도, 그건 그들의 이야기다. 신은 이미 모든 답을 내 안에 주셨다.
당신도 스스로에게 진실하게 한걸음씩 내딛다 보면, 그것이 바로 당신만의 길이 될 것이다. 그 길은 다른 사람없이 혼자 걸어도 행복한 길일 수 있다.
(글에 등장하는 노래)
그건 네 생각이고 - 장기하
https://www.youtube.com/watch?v=bCMTgsFnc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