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몇년간 온라인에 사랑하는 글귀들과 나의 생각과 일상들을 남겨왔다. 그 기억은 당시의 나였다. 지금 본다면 조금 어설프거나 어리석거나 낯간지러울지 모르지만 그때만의 뜨거움과 지혜가 있었다. 내가 고민했고 내가 다짐했던, 나를 일깨웠던 모든 기록. 사소한 감정의 기복조차 의미 있는 듯 남았던 순간의 각인. 그런데 그 기록이 모조리 사라졌다. 마음이 무너졌다. 조금 더 소중히 여길 것을. 뒤늦게 뉘우친 들 이미 잃어버린 것을 돌이킬 수 없는 법.
파리에서 가방을 도둑맞고 카메라 속 모든 사진과 일기를 분실했던 엄유진 작가에게 어머니는 이렇게 편지하셨다.
"일상을 기록한 자료를 잃어버리는 바람에 너무 분해서 상상력 섞어 복원하느라고 소설가가 된 사람이 한둘이 아니란다. 우리가 잃어버리는 물건 중에 정말 소중한 건 사실 없어. 건강이나 관계가 더 중요한 거야."
다시 기록한다. 비록 당시의 일들이 온전히 기억나지 않아도 내 삶 곳곳 흔적이 남아 지금의 내가 되었기에 지금을 비추어 그때를 회상하려 한다. 내가 소설가의 기질이 있는지 조금 알아가게 될 것이다. 다시금 채워지는 취향의 상자가 당신의 마음에도 따뜻함으로, 울림으로 닿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