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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live Aug 03. 2022

당신은 케렌시아가 있습니까?

나의 케렌시아, 그녀와 그녀의 집

스페인어 케렌시아(Querencia)는 투우장에서 소가 투우사와의 싸움 중 마지막 일전을 치르기 잠시 숨을 고르기 위해 찾는 장소이다.

사람들은 알 수 없지만 소가 투우장에 들어가 투우장을 둘러보고 나름대로 안전하다고 생각한 곳을 미리 정해 둔다.


그래서 케렌시아는 온갖 세상의 위험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고 지키기 위한 안전한 곳, 회복의 장소, 치유의 장소를 한다.


그렇지만 케렌시아가 꼭 장소일 필요는 없다.

케렌시아는 함께 있으면 편안하고, 지친 몸과 마음에 난 생채기에 새살이 돋을 수 있도록 에너지를 주는 사람일 수도 있다.


글을 쓴다거나 책을 읽는다거나 여행을 간다거나 스트레스를 받을 때면 하는 행동이나 몰입해서 할 수 있는 행위일 수도 있다.



또 아무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오롯이 나 혼자만이 있을 수 있는 동트기 전의 새벽시간이거나 모두가 잠든 한 밤중처럼 특정한 시간일 수도 있다.


그런가 하면 마음이 뾰족하게 예민해져 있거나 어수선할 때 나를 안정시켜 주고 힐링을 주는 음악일 수도 있다.


세상의 온갖 위험요소나 스트레스로부터 나를 보호하고 회복시켜서 온전한 나로 다시 설 수 있게 하는 모든 것이 케렌시아가 될 수 있다.    

사람에 따라 케렌시아는 여럿일 수도 있고, 나를 회복시켜 주고 치유해 줄 단 하나일 수도 있다.




나의 케렌시아는?

첫 번째로 글쓰기이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잡다한 생각들을 정리하고 다듬어서 활자화되는 것이 참 좋다.

잘 쓰든 못 쓰든 글 쓰는 작업 자체를 나는 사랑하고, 자아를 실현하는 그 시간이 오롯이 나로 존재하게 한다.



두 번째는 뜨개질을 비롯해서 이것저것 만들고 그리기, 요리하기 등 손으로 하는 작업들이다.

무에서 유를 창조해 내고 변형시키는 작업을 거쳐 탄생한 결과물을 보면 뭔가 해냈다는 뿌듯함이 들고 나라는 사람이 대견하다.


그런 작업을 하다 보면 머릿속에 있던 복잡한 생각들을 잠시 잊을 수 있고,

작업을 하는 동안 시간이 지남에 따라 문제를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시간을 벌게 된다.

그래서 처음에는 심각했던 문제가 생각보다 큰 문제가 아니었다는 생각으로 바뀌어서 마음이 가벼워지거나 문제가 저절로 해결이 되기도 한다.

그런데 요즘에는 바쁘다는 핑계로 그토록 좋아하는 일들을 할 수 없어서 아쉬운 마음이 크다.


마지막으로 나의 케렌시아는 나를 이해하고 지지해 주는 사람들이다.

올해는 특별히 여고동창 셋이 모여 2박 3일의 짧은 일정으로 여름휴가를 친구의 집에서 보냈다.

각자의 머릿속에 저장되어 있는 학창 시절의 기억들을 끄집어내서 퍼즐처럼 맞춰보면서 그때 그 시절로 되돌아 간 듯 까르르 웃음을 날리며 보냈던 시간들이 나에게는 치유의 시간이었다.


조조할인으로 영화도 보고, 맛집 탐방도 하면서 지친 삶을 회복할 수 있었다.

좌충우돌 모든 것이 불확실하던 고등학교 시절에 만나 긴 세월 동안 힘들고 어려웠던 시간들을 함께 보냈기에 말하지 않아도 서로를 알 수 있다.

사는 게 바빠 한동안 연락이 없다가 별안간 만나도 어제 만나고 헤어진 것처럼 반갑고 대화가 끊이질 않는다.



세월이 야속해~

학창 시절에는 돌멩이도 소화시킬 때라 서로의 집을 오가며 전기밥솥째로 냉장고에 있는 반찬 모조리 넣고 고추장 한 숟가락에 고소한 참기름 한 바퀴 돌린 뒤 야무지게 비벼서 밥통을 끌어안고 먹었다.

부른 배를 주체하지 못해 벽에 비스듬히 기대 씩씩거리며 하하 호호 놀던 친구들이다.

이제는 값비싼 음식을 배가 터지도록 먹을 수 있는 형편이 되지만 소화능력을 걱정해야 하고, 건강 때문에 살찌는 것을 경계해야 해서 예전처럼 목까지 차도록 먹지 않는다.


우연의 일치로 친정아버지들은 모두 돌아가시고 엄마들만 남아계신다.

생존해 계신 엄마의 안부를 묻고 건강을 염려한다.

그 시절 지금의 우리보다 한참은 젊었을 얌전하고 고왔던 엄마들이 이제는 어떻게 변해있을지 가늠이 안 된다.

퀘퀘 묵은 추억의 보따리를 풀어놓고 보니 주렁주렁 얼마나 많은지 2박 3일이 짧게 느껴졌다.


사람에게 받은 상처는 사람으로 치유한다

켜켜이 쌓인 얘기들을 끄집어내 먼지를 털고 시간여행을 하면서 제대로 마음치유를 하고 왔다.

알게 모르게 세상 사람들에게 시달리며 상처를 받고 살아온 우리,

그래, 사람에게 받은 상처는 사람으로 치유하는 게 맞다.


오래전 나의 잠재력을 알아봐 주고 지금의 내가 있을 수 있도록 이끌어 준 친구,

불쑥 찾아가도 버선발로 맞아주는 친구,

아무 말, 아무 행동을 해도 다 이해받을 수 있는 친구,

그녀가 나에게는 케렌시아이고, 그녀가 사는 공간이 케렌시아이다.   

나는 나의 케렌시아에서 지친 영혼을 치유하고 회복하고 돌아왔다.

 

내가 나의 케렌시아에서 치유를 받고 왔듯이 나도 누군가에게는 케렌시아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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