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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live Sep 20. 2023

너나 잘하세요

그래, 나나 잘하자

애초에 남의 마음을 알려고 한 것부터가 오만이었다.

말을 하지 않아도 쇽~쇽~ 들여다보는 부채도사도 아니고, 무르팍이 닫기도 전에 꿰뚫어 보는 무르팍도사도 아니고, 내 마음도 잘 모르면서 무슨 재주로 남의 맘을 들여다볼 생각을 했단 말인가.


예전부터 나랑 얘기하고 나면 마음이 후련해진다는 말을 자주 들었고, 전문적인 공부를 한 번 해 보면 좋을 것 같다는 권유도 여러 차례 받았다.

지인들은 나에게 신세한탄을 하며 눈물 한 바가지 쏟아내고 나면 쏟아낸 눈물만큼 가벼운 발걸음으로 돌아갔다.


단지 들어주고, 추임새 넣어주고, 지인이 화내면 같이 화내고, 울면 함께 울어줬을 뿐인데 문제가 해결된 것처럼 맑은 얼굴로 돌아가는 뒷모습을 보며 짜릿한 희열을 느꼈다.

"아~나도 누군가에게는 꽤 쓸모 있는 사람이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이것도 재주라면 기왕이면 본격적으로, 제대로 공부를 해서 좀 더 전문적인 도움을 주고 싶었다.

도움을 주고 싶었기 때문에 의도는 매우 선했다.


그래서 상담심리학과에 입학했고, 조금 늦게 시작했기에 1년을 단축한 조기졸업과 복수전공을 목표로 삼았다.

딱 죽기 직전이 될 때까지 내 몸을 갈아가며 나 스스로 멱살 잡고 하드캐리 했다.

결국 목표로 했던 것들을 모두 이루고 덤으로 성적 우수상까지 받고 졸업을 했다.


그러나 빛이 있으면 어둠도 있는 법이다.

지나친 공부 욕심 덕분에 지식을 얻고 건강을 잃었다.

당시에는 내 몸이 망가진 줄도 모르고 목표를 초과달성 했기에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행복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보니 굳이 그렇게까지 열심히 할 필요가 없었는데 "도대체 왜 그랬을까?" 하는 후회도 했다.



아~ 기 빨린다

막상 전문적으로 공부하고 상담을 하다 보니 남의 마음을 안다는 것이 마냥 좋기만 한 것이 아니었다.

내담자의 문제 상황은 금방 파악됐지만 결과에는 만족할 수가 없었다.


상담은 느린 걸음으로 내담자와 속도를 맞춰가며 내담자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그런데 내담자들은 문제와 자신이 한 덩어리가 돼서 무엇이 문제인지 보는 것이 어렵디.

반면에 상담자들은 제삼자로서 한 걸음 뒤에서 바라보기 때문에 쉽게 문제를 파악할 수가 있다.


만약 지금 이 순간에도 여러 가지 문제들로 힘들어하는 사람이 있다면?

문제와 나를 분리한 뒤 마치 유체이탈을 한 것처럼 한 걸음 뒤에서 바라보거나 문제 장면을 영상으로 촬영해서 제삼자의 관점으로 바라본다면 많은 도움이 될 수도 있다.


그렇게 문제의 원인을 알고 난 뒤 상담자들은 그들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돕는 조력자가 되어야 한다.

그런데 나는 자꾸 내가 알고 있는 해결 방법, 내게 보이는 지름길을 알려주고 싶은 마음이 들어서 조급해졌다.

어려움을 겪고 힘들어하는 내담자들의 발걸음에 내 보폭을 맞춰야 하는데 내 걸음으로 성큼성큼 앞서 가며 뒤에 오는 상담자들을 재촉하고 있었다.

이제 와 생각해 보니 상담자로서 자질이 부족했던 것 같다.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들은 

"그 사람 때문에 힘들어요."

"그 사람이 바뀌었으면 좋겠어요."

"이 상황이 너무 괴로워요." 하며 상담장면에 오지 않은 사람들을 탓하며 하소연한다.

문제에 매몰되어 남 탓을 하는 사람들을 매일 만나다 보니 급격히 에너지가 소진되고 번아웃이 왔다.

속된 말로 기가 쫙쫙 빨리는 느낌이었다.

어쩌면 내가 상담에 적합하지 않은 사람이어서 그럴지도 모른다.


"그래, 방향을 살짝 바꾸자."

이런 결론을 내리고 나는 대학원에서 상담심리가 아닌 닮은 듯 다른 코칭심리학으로 전공을 바꿨다.

조금 더 직접적이고 피코치가 가고자 하는 목표에 빨리 도달할 수 있도록 변화를 돕는 코치가 되고 싶었다.

본래 성격이 급하고, 뭔가를 알려주고 도와주는 것을 좋아하는 나에게는 상담보다 코칭이 적격이었다.


하지만 이제 와서 생각을 해보면 상대방의 마음을 읽어주는 상담이든, 상대방의 변화를 돕는 코칭이든 그런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정작 내 마음도 잘 모르면서 남의 마음을 읽고 변화를 시키려고 한 것부터가 매우 오만하고 교만한 생각이었다.




영화 친절한 금자 씨 중 한 장면


"너나 잘하세요"

그래, 영화 '친절한 금자 씨'에서 배우 이영애의 대사처럼 "나나 잘하자."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 중 하나가 상대방을 바꾸는 것이다.

내가 바뀌는 것이 백만 번 쉽다.

세상 사람 모두가 나부터 잘하면 된다.

그래서 내가 먼저 바뀌고, 시간이 흘러 너도 바뀌고, 결국 우리가 바뀐다면 세상도 바뀌지 않을까?


요즘에는 많은 사람들이 매일 가던 뒷동산을 가는 것도 망설여지고, 여느 때는 아무렇지 않게 다니던 골목길도 주위를 살피며 신경을 곤두세우고 다니게 된다.

사람 많은 곳을 가려면 단단히 굳은 마음을 먹고 가야 한다.

누가 내 근처에 가까이 오기만 해도 움찔하며 위아래를 훑어보는 버릇이 생겼다.

이불 밖은 위험하다는 생각을 매일 하고 있다.


너를 밟고 올라서야 내가 이길 수 있다는 과도한 경쟁사회에 내몰리던 사람들이었는데 엎친데 덮친 격으로 사상 초유의 코로나까지 겪으며 생긴 상처가 아직도 아물지 않았다.


거기에 더해 해묵은 종교와 이념의 갈등, 지역 갈등, 세대 간의 갈등, 남녀 간의 갈등으로 서로 목소리를 높여 싸운다.

그러다 보니 많은 사람들 마음속에는 알 수 없는 불안과 대상을 특정할 수 없는 사람에 대한 분노로 가득 차 있는 것 같다.




옛말에 창고에서 인심 난다는 말이 있다.

주머니 사정이 넉넉하다면 정서적으로도 안정감이 있어 남에게 베풀 여유가 있겠지만 사는 게 힘들고 여유가 없다면 매사에 날이 설 수밖에 없고, 남 탓을 하며 불평불만이 생길 수밖에 없다.



'젊은이는 미래를 먹고살고, 늙은이는 추억을 먹고 산다.'는 말이 있다.

그러나 그 말은 현실적으로는 그럴법하지만 심리적으로는 매우 부적절한 말이라고 생각한다.

본디 과거를 생각하면 우울하고, 미래를 생각하면 불안한 것이 사람의 심리이다.


옛날에 이렇게 할 걸, 그때 이랬더라면 하고 과거를 생각하면 현재가 맘에 들지 않아 우울하다.

아직은 눈에 보이지도 잡히지도 않는 막연한 미래를 생각하면 늘 불안할 수밖에 없다.

오늘날 정신건강과 관련해 사회적 문제를 발생시키는 원인이 되는 것이 우울과 불안이다.

그런데 우울과 불안이 많은 이유가 현실에 발을 딛지 않고 과거와 미래만 바라보기 때문이다.


될 수 있으면 미래도, 과거도 바라보지 말고 현재에, 오늘에, 지금 이 순간에 충실하는 것이 가장 좋다.

지금 내가 발을 딛고 서 있는 이 순간에 최선을 다한다면 순간순간쌓여서 탄탄한 미래가 될 것이다.

그러다 보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곳간에 경험이 쌓이고, 지식도 쌓이고, 능력도 쌓여서 여유도 생기고 남에게 베풀 인심도 차곡차곡 쌓일 것이다.

그리고 남탓하며 남이 나에게 잘하기를 바라지 말고, 내가 먼저 손을 내밀어 상대방에게 잘한다면 결국은 살만한 세상으로 바뀌지 않을까 생각한다.


점 하나하나가 모여서 선이 되고, 선 한 줄 한 줄이 모여서 면이 된다.

그 면들이 모여서 한 페이지 두 페이지 인생이라는 책이 완성이 된다. 

기왕에 책을 쓴다면 절대 읽어서는 안 될 지하창고에 보관해 둬 케케묵고 먼지 쌓인 금서보다는 도서관 제일 좋은 위치에 꽂혀서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양서를 쓰는 것이 좋지 않을까? 

오늘, 지금 이 순간에 최선을 다 한다면 내가 원하는 미래가 펼쳐질 것이고 결국은 후회 없는 삶으로 이어진다. 

나의 스토리와 너의 스토리, 우리의 스토리가 모여서 히스토리가 된다.


"그래, 그렇다면 다 필요 없고 나나 잘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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