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당지배인. 형광 새싹. 스킨답서스. 위장구원자. 모두 정원을 가리키는 별명들이었다. 공작새 여자의 이름은 정원이었다. 어느 날 번개처럼 번쩍 나타난 그녀는 단 며칠 만에 위장을 담보로 연구소 사람들의 마음을 모조리 훔쳐버렸다. 자원봉사로 오는 탓에 매일 보진 못했지만 오는 날이면 정원은 어떻게든 냉장고를 긁어 모아 요리를 해주었다.
그렇게 점심 시간이라는 개념이 다시 부활했다. 식후 삼삼오오 모여 대화를 나누는 시간도 생겨났다. 오후 한 시가 되면 정말 오랜만에 보는 활기가 연구소 곳곳을 돌았다. 그리고 그 한가운데에는 정원이 있었다.
마치 심장의 펌프질에 맞춰 피가 온몸에 도는 것처럼, 정원을 중심으로 웃음소리가 이따금 들려왔다. 정원은 손재주도 좋지만 말재주도 상당했다. 그녀는 이 선임도 혀를 내두를 싹싹함과 강 주임도 한 수 접고 들어갈 사교성으로 누구보다 빠르게 연구소에 녹아 들었다.
대화를 딱히 즐기진 않는 나도 이 선임의 손길에 못 이겨 ‘수다타임’에 착석하곤 했다. 오늘이라고 예외는 없었다. 찬물이 든 종이컵을 든 채 자리에 앉자마자 배 소장의 비서가 오늘 소장실을 청소하다 발견했다며 핸드폰으로 찍은 배 소장의 과거 사진을 보여주었다.
“소장님 군대 계실 적 사진인가 봐요. 처음엔 다른 사람인 줄 알고 깜짝 놀랐다니까요. 인상이 지금이랑 너무 다르시지 않아요?”
“진짜 소장님이야? 말도 안 돼, 지금은 그냥 배 나온 아저씬데.”
사진 속 배 소장은 빈틈없는 군복 차림으로 총을 들고 있었다. 말마따나 그냥 배 나온 아저씨 같은 지금의 소장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었다. 군모 아래 전방을 주시하는 날카로운 눈매와 눈빛은 언뜻 표독스럽게까지 보였다.
호랑이도 제 말하면 온다더니, 때마침 지나가던 소장이 비서의 핸드폰을 흘끔거리곤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뭐야, 또 내 사진 얘기야? 하, 나도 저런 시절이 있었지. 그립다, 그리워. 그래도 다음부턴 내 물건 함부로 건드리지는 말고. 응?”
배 소장은 비서의 어깨를 지그시 누르듯 다독이곤 사라졌다. 웃는 얼굴로 뱉은 말이었으나 그것이 경고라는 것을 모르는 이는 없었다. 가라앉진 분위기를 환기하려는 듯 이 선임이 요새 심상찮다는 박 교수와 서 교수의 사내연애 현황을 꺼냈다. 가십거리에 목마른 청자들은 빠르게 선동되었다.
나는 시시껄렁한 이야기를 안주 삼아 찬물을 소주처럼 들이켰다. 좀 더 눈치를 보다 적당한 때에 빠져나갈 요량이었다. 그러던 중 같은 부서 사무원이 새 이야기의 포문을 열었다.
“참, 오늘 아침에 A동 하우스 수도장치가 고장 나서 제어실 갔더니 김 씨 아저씨가 안 보이시더라고요. 내일까지는 수리해야 하는데 어디 가셨는지 아세요?”
그러자 맞은편에 앉아있던 연구원이 다소 난처한 기색을 표하다 입을 뗐다.
“아…… 그 분. 엊그제 돌아가셨대.”
“네? 정말요? 아니, 갑자기 왜요?”
“이유야 나도 모르지. 십 년 동안 한번도 빠지신 적 없는 분이셨잖아. 안 그래도 말도 없이 무단결근 한 게 이상해서 집에 찾아가보니 번개탄이 피워져 있었다더라고.”
“……저런.”
“참, 사람 한번 믿기 힘든 시대야.”
잠시 애도를 표하는 술렁임이 내려앉았다. 개중엔 당장 내일 하우스 보수는 어찌 하냐는 볼멘소리도 드문드문 섞여 있었다. 그 별스런 술렁임이 점차 잦아들 즈음 다른 부서 사무원이 한숨을 푹푹 내쉬며 이야기를 받았다.
“어휴, 이 빌어먹을 세상. 비행기표 끊는다고 뜰 수도 없고 참. 김 씨 아저씨도 오죽하면 그랬겠어요. 저는요, 이제 내일을 생각하는 게 너무 벅차요. 생각한다고 뭐가 달라지긴 할까 싶어서 딱히 애쓰고 싶지도 않아요. 이래도 저래도 결국 이 꼬라지라면 그냥 오늘만 살려구요. 그게 합리적인 거 아니겠어요?”
“그래, 요즘 같은 시대에 그게 어디야, 어쨌든 살아본다는 건데. 평범하게 사는 게 제일 힘든 거다?”
“정말, 사는 게 대수라니까요.”
두 사람의 주장에 여기저기서 수긍과 공감서린 맞장구가 터졌다. 대화는 몇 번 더 이어지다 곧 다른 화제로 넘어갔다. 이제 누군가의 죽음은 도마에 오르기조차 어려웠다. 사람이 태어나는 것보다 죽는 게 더 빨라진 세상이었다. 우리는 몇 번 홀짝이면 동나는 자판기 커피 종이컵처럼 김씨 아저씨 이야기를 던지곤 강 주임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러나 가벼운 주제로 붕 뜨려던 화제는 사이를 비집고 불쑥 끼어든 목소리에 제동이 걸렸다.
“그래도 전 내 딸이 살아갈 세상이니까, 끝까지 포기하고 싶지 않은 걸요.”
이 선임은 정원의 말에 화들짝 놀라 크게 벌린 입을 손바닥으로 가리며 물었다.
“뭐야, 정원 씨 딸이 있었어?”
“음, 아뇨. 지금은- 아직은 없지만요.”
“뭐야, 그럼 설마 결혼해서 애 낳을라고?”
“굳이 결혼 같은 귀찮은 짓 안 해도 애는 낳을 수 있지 않을까요?”
“와…… 정원 씨 그렇게 안 생겨선 진짜 강심장이었네.”
이 선임이 혀를 내두르자 정원이 나이 지긋한 박사의 목소리를 흉내내 말했다.
“거어, 아무튼 그러니까 연구나 좀 잘 해봐봐. 지금 자네들 손에 인류의 종속이 달려 있잖아! 막중하게까진 바라지도 않으니 경미한 책임감 정도는 가지란 말이야, 어? 하여간 요즘 것들은…… 쯧.”
중간에 굴리는 발음을 강조하는 게 영락없이 조 박사였다. 이 선임에겐 직속 상사나 다름없는 분이었으나 그녀는 흉통까지 들썩이며 껄껄 웃어재꼈다. 이 선임은 겨우 웃음을 추스르고서야 손을 내저으며 대꾸했다.
“말은 고맙지만 삼가 둬, 정원 씨. 그런 숭고한 대의를 붙이기엔 하는 일이 영 꼴사나운 걸. 오늘은 이 흙이 더 고소한가, 저 흙이 더 달달한가, 아니면 그 흙이 새콤한가 냄새만 하루 종일 맡고.”
“그래도 제 눈엔 다 멋있는 걸요.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잖아요. 명칭이…… 뭐였더라. 무슨 프로젝트 랬죠?”
“바다숲 프로젝트.”
“아, 맞아, 이름도 좋잖아요. 바다숲.”
정원은 이 선임에게서 고개를 돌려 굳이 멀리 있는 나와 눈을 마주쳤다. 그러곤 처음 마주쳤을 때처럼, 활짝 웃어 보였다. 연구소는 너무 칙칙하다며, 자신이라도 ‘초록초록’ 해야 한다는 그녀의 가발이 그 순간 정말 숲처럼 보였다. 소슬거리는 바람이 불면 솨아아, 시원한 빗소리가 날 것만 같았다. 말라붙은 세상을 담뿍 적셔줄 것만 같았다.
그 해 겨울은 그렇게 지나갔다. 이상기후 탓에 이미 계절의 구별이 무의미 해진지 오래지만, 선물처럼 찾아온 김치찌개 덕에 그나마 살만 한 계절로써 지나갔다. 하루하루를 살아내는 게 가장 큰 과업인 세상에서 정원은 통조림 햄을 가지고 가장 큰 일을 한 셈이었다. 정원의 말을 빌리자면 ‘초록초록’했다. 겨울 주제에 참 초록초록한 계절이었다.
그러나 계절은 돌아오는 시간이 아니라 지나가는 시간이었다. 적어도 정원의 시간은 그랬다. 김치찌개의 유통기한은 예기치 못하게 짧았다. 기껏 혓바닥을 달달이 길들여 놓곤 벌써 바닥을 보이고 있었다.
“아, 그거 아세요? 정원 씨 다음주가 막근이래요.”
“……그래? 무슨 일 있대?”
“거기까진 모르겠고, 멀리 이사간다나 봐요. 다시 얼굴 보긴 힘들 것 같아요.”
이 선임과 조 박사의 대화가 정원의 소식을 알렸다. 나는 반사적으로 멈춘 발끝에 힘이 실리는 것을 느꼈다. 샬레나 화분 따위를 옮기던 중이 아니어서 참 다행이었다. 필시 떨어뜨려 바닥을 엉망으로 만들었을 테다. 정원을 이제 영영 볼 수 없다는 소식에 잠시 머리가 하얘졌다. 숫기도 없어 이야기를 많이 나누지도 못했건만 내심 정이 퍽 들었나 보다. 일방적인 애정에 가까울 만큼 나는 그녀를 많이 좋아하고 있던 모양이다. 물론 연구소의 누가 그러지 않았겠냐마는.
조 박사 역시 마찬가지인지 그의 낯빛도 어두워졌다. 기민하게 그를 알아챈 이 선임이 눈을 가늘게 떴다.
“왜요, 서운하세요?”
“난 자리는 몰라도 빈 자리는 아는 법인데. 당연히 서운하지, 그럼.”
조 박사가 말을 마치자마자 그의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들려왔다. 이 선임은 입가를 가리는 최소한의 예의도 내던지고 쿡쿡거렸다.
“위장이 서운하신 건 아니고요? 속이 너무 빤하시다, 박사님.”
그들과 두세 걸음 떨어진 곳에 있던 나는 그 타이밍에 조용히 나섰다. 조 박사의 휠체어 손잡이를 힘주어 잡고 식당 쪽을 향해 밀기 시작했다. 혼자 할 수 있다고, 뒷방 늙은이 취급하지 말라고, 도움 따윈 사양이라며 웬만해선 홀로 이동하는 조 박사지만 가끔씩 내 손길은 마다하지 않곤 했다.
나는 별다른 타박이 날아오지 않는 것을 허락으로 알아듣고 경사로를 천천히 내려갔다. 이 선임은 휠체어 바퀴 자국을 따라 우리 옆에서 걸었다. 조 박사는 이 선임이 내미는 담요를 잠자코 받아 무릎에 펼치며 말했다.
“쉰 소리 말고 작게 송별회나 해줘. 그간 섭섭지 않게 신세진 위장이 몇 갠데, 그 정도 감사는 표해야지. 가는 길이 좋아야 다음에 또 오는 길도 좋은 법이고.”
“에이, 다시 볼 사람도 아닌데 무슨 송별회씩이나…… 우리 코가 석 자인데 남 챙길 여력이 어디 있어요.”
“선의는 돌고 도는 거야, 이 선임. 자네가 친 공이 홈런이 될 지 업보가 될 지는 모르는 거라고. 착하게 좀 살아.”
“전 누구보다 착하게 살고 싶은데 세상이 못난 걸 어떡해요. 눈을 동그랗게 떠도 세모로 보이는 세상 아닙니까.”
혀를 가볍게 찬 조 박사는 고개를 흘끗 들어 날 일별했다.
“내가 만약 첫사랑에 성공했다면 딱 해수만한 딸이 있었을 텐데. 그럼 저 입바른 소리 한 번 못하는 능구렁이랑 온종일 붙어 같이 일할 일도 없고. 얼마나 좋아?”
“으, 그 놈의 첫사랑이랑 군대 얘기는 좀 건너뛰시면 안 돼요?”
“군대 얘긴 아직 안 했어.”
“곧 하실 거잖아요.”
“하여간 요즘 것들은…… 쯧.”
한스럽다는 듯 푸념하는 조 박사를 이 선임은 가볍게 건너뛰었다.
“아무튼 간에 첫사랑 닮았다고 해수만 너무 예뻐하지 마세요. 누군 이렇게 생겨 먹고 싶어서 생겼나요. 어휴, 첫사랑이 죄지, 죄야.”
“저 봐, 저. 술 취해서 그냥 한 소리가지고 몇 년을 우려먹는 게야. 해수야, 이 선임 너무 가까이 하지 말아라. 나쁜 물들라.”
나는 그러겠노라 대답하는 대신 작게 고개만 끄덕였다. 이 선임에겐 안 보이고, 조 박사에겐 보일 애매한 정도로만. 아무리 뒷방 늙은이를 자처한다지만 조 박사가 우리 중에선 대장인 셈이니 말을 잘 들어 해 될 건 없었다. 빈틈없는 팀플레이에 이 선임은 토라진 체를 하며 우리를 앞질러 갔다. 그 순간 휠체어가 작게 덜컹거렸다.
“왜 그래? 뭐 걸렸어?”
두리번거리던 조 박사가 고개를 숙여 아래를 살폈다. 그보다 먼저 땅바닥을 확인한 나는 급히 허리를 구부렸다. 휠체어 바퀴에 낀 장애물이 있었다. 나는 누가 볼세라 그것을 주워 실험복 주머니에 넣고 다시 휠체어를 밀었다.
“아무것도 아녜요.”
툭 털어버린 말과는 달리 뒷목의 솜털이 오소소 일어섰다. 다시 걸음을 옮겼지만 식당으로 가는 내내 머리가 핑 돌았다. 무어라 말을 거는 조 박사의 목소리가 자꾸만 귓바퀴를 미끄러졌다.
나의 모든 신경은 주머니 속으로 쏠렸다. 황급히 주머니에 구겨 넣은 그것이 내 심장인 것처럼 박동하고 있었다. 두근, 두근, 두근. 우연도 세 번이면 필연이라 했다. 이제 아무것도 아닐 순 없었다.
세 번째 탄피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