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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로 Oct 02. 2024

9. 열쇠(2)

2032년, 겨울의 끝자락

정원과 나는 올해 스물아홉으로 동갑이었다. 성격, 취미, 말투, 이상형, 좋아하는 것 어느 하나 일치하는 게 없었지만 나이가 닮았다는 이유 하나로 나는 그녀에게 각별한 동질감을 느꼈다. 이미 느껴버린 동질감에 붙일 이유가 하나라도 남았다는 것에 느낀 안도감은 모른 체 하기로 했다.

그녀를 좋아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어야만 했다. 이유 없는 애정은 거북했다. 꼭 마지막까지 아빠를 포기하지 못하던 엄마를 떠올리게 만들었다. 나는 엄마처럼은 살지 않겠다고 맹세했었다. 엄마를 저버리면서까지 한 맹세이니 지켜야했다. 나는 이 외로운 세상에서 또래 친구를 만나 기쁜 이십구살일 뿐이었다.


“받아.”


정원이 완전히 연구소를 빠져나가기 전, 나는 그녀에게 헐레벌떡 달려가 작은 정사각형 케이스를 내밀었다. 작별을 기념해 준비한 소소한 선물이었다.


“이게 뭐야?”


되묻는 정원에게 나는 숨을 헐떡이며 재촉하듯 상자를 든 손만 흔들었다. 정원은 나와 상자를 번갈아 보다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상자를 받아 뚜껑을 열었다. 군데군데 사용감이 묻어있는 시계가 군청색 케이스 사이로 모습을 내비쳤다. 엄마의 손목시계였다.

정원의 손가락이 다이얼 옆 부분을 조심스레 쓸었다. 작게 이니셜 J가 새겨져 있는 곳이었다. 다행히 정원의 이름에도 같은 알파벳이 들어갔다. 정녀의 J는 이제 정원의 J라고 우기면 그만이었다. 정원은 그것이 내게 귀한 물건이란 걸 알았는지 조심스러워 하는 눈치였다.


“이걸 왜 나한테 줘? 정말 내가 받아도 되는 거 맞아? 너한테 소중한 거 아니야?”


어느 정도 숨을 가다듬은 나는 무릎을 짚던 손을 떼고 허리를 폈다. 그리고 시계를 얹은 정원의 손을 말아 쥐게 만든 뒤 그녀 쪽으로 밀었다. 


“그럼 소중히 썼다가 나중에 소중한 사람 생기면 그 사람에게 선물 줘. 어차피 더 이상 내 품에 있을 물건도 아니야.”


내일부터 따끈한 김이 나는 김치찌개는 영영 식탁에 올라오지 않을 터였다.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던 점심시간도, 정오의 태양처럼 웃던 얼굴도, 같이 따라 웃던 많은 웃음소리도. 이만한 아쉬움을 남길 사람이면 엄마의 시계 정도는 선물할 가치가 있었다.

그러자 정원은 자신도 줄 게 있다며 품에서 내 것보다 작은 상자를 꺼냈다. 겉모습만 봐서는 연인 사이의 사랑의 증표를 상상할 법 했다. 나는 상자를 받자마자 조심스레 열어보았다. 반지 대신 손가락 두어 마디 정도 크기의 열쇠가 들어있었다. 어느새 좀 전의 그녀와 똑같은 물음을 던지고 내뱉고 있었다.


“이게 뭐야?”

“만능 열쇠. 닫힌 건 무엇이든 열어줄 거야.”

“……무엇이든?”

“네가 열길 원한다면 무엇이든.”


그보단 더 자세한 설명이 필요했지만 정원은 내 의아한 시선에 고개를 끄덕이기만 했다. 이젠 정말 작별이라는 뉘앙스가 짙게 풍겼다. 가슴 한 구석이 욱신거렸다. 눈 아픈 형광 초록색 가발이 그리워질 날이 올 줄이야.


“아쉽네.”


원체 속내를 잘 내비치지 않는 편이었지만 오늘만큼은 솔직해지기로 했다. 솔직함으로 더 잃을 게 없었다. 그럴 때야말로 가장 용감해지는 순간이었다.

너랑 사느니 동상을 끌어안고 자는 게 훨씬 따듯할 거라며 작별인사로 외치던 옛 연인이 잠시 떠올랐다. 그도 더 잃을 게 없을 만큼 솔직했을까. 아니면 남은 미련만큼 용감했을까. 그에게도 해본 적 없던 말이 절로 튀어나왔다.


“우리, 다시 볼 수 있을까?”


정원은 잠시 말이 없었다. 그녀는 몇 초간 더 머뭇거리다 입술을 뗐다.


“-안녕.”


안녕. 그리고 끝이었다. 정원은 장황한 작별인사 없이 짤막한 한 단어, 안녕만 남기고 사라졌다. 그녀의 목적지가 어디인지는 어느 누구 하나 아는 이가 없었다. 언젠간 아이를 가지겠다고 했으니 좀 더 살 만한 곳으로 떠났는지도 몰랐다.동쪽 내륙엔 아직 푸른 색의 자연이 남아있다는 전설 같은 소식을 들은 바 있었다. 나는 머릿속으로 지도를 펼치고 대략적인 위치를 추적해보려다 실소하며 관두었다. 아무렴, 잘 살 거야. 그간 봐온 정원은 사막에서도 우물을 파낼 여자였다. 어디서든 끈덕지게 뿌리내려 악착같이 살아갈 것이다.

나는 뻑뻑해진 눈을 한번 문지른 뒤 들여다보던 차트에 다시 집중했다. 이미 ‘남겨진 사람’이 되어본 경험자로서, 지켜야 할 수칙이 있었다. 앞으로 내 삶을 살기 위해선 떠난 것들은 그저 잠시 머물렀다 가는 갈대바람인 양 휘잉 보내줘야 했다. 한번 넘긴 책페이지는  다시 되돌아올 수 없었다. 우리의 삶은 단순한 종이 위의 활자가 아니라 이야기였으니까. 지나간 이야기가 거꾸로 되감길 순 없는 노릇이었다. 그건 거룩한 운명을 거스르는, 회전하는 천체와 우주에 감히 남기는 오점과 같았다. 

그러나 그날 밤, 난 잠시 지구의 자전이 멈추는 시간 속으로 고꾸라졌다. 까맣고 반질반질한, 이제는 지독히도 익숙한 형체의 물건이 눈앞에 있었다. 정원과 헤어진 장소에서 난 네 번째 탄피를 주웠다.

그게 마지막 탄피였다. 담배 대신 네 개의 탄피가 굴러다니는 내 담뱃갑에 새로운 탄피가 들어가는 날은 오지 않았다. 그저 정원이 떠난 뒤 시간은 성실히도 흘러갔다. 따분할 만큼 굴곡 없는 시간의 연속이었다. 반복되는 하루하루가 여름이 지나고 더 더운 여름이 오는 계절을 빼곡히 채웠다.

눈 뜨면 출근하고, 맛대가리 없는 보급용 에너지바로 배를 채우고, 시체처럼 누워 잠만 자는 주말을 보내고, 다시 또 출근하고. 아, 저번 달에 일이 하나 있긴 했다. 광주할머니께서 돌아가셨다.

어렸을 적 나는 거주지를 붙여 할머니들을 구분하곤 했는데, 외할머니는 광주할머니, 친할머니는 서울할머니로 불렀다. 고모와 함께 사는 서울할머니 집은 늘 깨끗하고 새 것 냄새가 나던 기억이 선명하다. 그래서인지 나는 내가 먼지처럼 느껴지던 그 집을 썩 좋아하진 않았다. 그 집을 방문할 때마다 집먼지를 치우고, 맛있는 음식 냄새로 썰렁한 공간을 채우는 사람은 늘 엄마였으니까.

광주할머니 집은 서울할머니 집과 모든 면에서 반대였다. 온통 자질구레하고 오래된 냄새가 났다. 파종시기와 계란 한 판 값 따위가 어긋난 맞춤법으로 줄줄이 적힌 화이트보드, 개집 옆에 옹기종기 놓인 장독대, 천장에 주렁주렁 걸린 마늘 타래, 현관을 열면 바로 보이는 작은 비닐하우스와 설익은 방울토마토 줄기. 그 모든 것들에서 나는 냄새를 엄마는 참 좋아했었다. 처음엔 다소 찝찝하게 느껴졌던 그 냄새가 정겹게 느껴질 즈음 난 어른이 됐고, 이제 더는 그 냄새를 맡을 수 없었다.

종말을 향해 달려가는 시간은 집도 앗아갔다. 일요일 오후 늘어지게 자다 깨 받은 전화에서 첫째 이모는 이만 시골집을 처분하겠다는 소식을 전했다. 핸드폰 너머로 이모의 음성과 뒤섞여 찰박거리는 물소리가 들렸다.


“우리라고 이 집이 무슨 의미인지 모르겄냐. 야속한 세월 훨훨 날아가뿔 때까지 나고 자란 곳인디. 우리도 올해까진 어치케든 버텨보려 했당께. 그란디 물이 앤간치 좀 들어와야지. 엊그제부터 정웅이랑 암만 퍼날라도 말짱 도루묵이다. 인자 여그 남아있는 사람도 없고…….”


이어지는 이모의 한숨이 깊은 착잡함을 고스란히 전달했다. 나는 침대에서 꾸물텅 일어나 책상으로 향하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알죠. 그 동안 애써주신 것만으로도 너무 감사해요. 이모 아니었으면 할머니께서도 이렇게까지 오래 못 버티셨을 거예요.”

“아 야, 됐다, 나헌티 정웅이나 정서 정혜처럼 아가 있는 것도 아이고, 적적해 어차피 할 것도 없었응께 그랐제. 참 그래가, 언제쯤 올 수 있다꼬? 정리하다 보니 느이 엄니 물건도 쪼매 있는 거 같아서, 가져갈라믄 내 정리해둘랑께.”


광주할머니 집은 침수지대 한가운데 박혀 있었다. 매해 떠내려가거나 잠기는 집을 버리고 동네 사람들이 떠나간 지도 이미 꽤 됐다. 광주할머니는 버려진 동네를 지킨 마지막 수문장이었다. 그랬던 할머니마저 돌아가셨으니, 이제 시골집은 완전히 애물단지였다.

이모는 나와의 통화를 연결해 놓은 채 청소를 이어가는지 문을 여닫거나 잡동사니들을 뒤적거리는 소리가 배경음으로 깔렸다. 나는 책상 위 달력을 넘겨보며 적당한 날짜를 물색했다. 최대한 가까운 시일로 잡아 표시하던 찰나, 이모의 작게 기겁하는 탄성이 들렸다.


“하이고, 쉰내. 무신 놈의 시루떡이…… 참 나, 그 꼬부라진 허리로 허벌나게도 쟁여놓으셨소.”


이모는 아무래도 냉동실 문을 연 모양이었다. 가장 널찍한 칸을 빼곡히 채우고 있을 팥덩어리가 눈에 선했다. 엄마가 돌아가신 후 할머니는 같이 도심으로 가자며, 잘 모시겠노라 끈덕지게 설득하는 삼촌내외를 고집스레 거절하셨다. 시루떡을 향한 할머니의 집착은 그때부터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시골집에 남아 떡을 찌는 것이 마치 당신의 남은 생에 숙명이라도 되는 듯이, 할머니는 심지어 치매에 걸려 기억이 조각난 후에도 더 이상 팥을 구할 수 없을 때까지 떡을 찌셨다. 곤히 주무시다가 벌떡 일어나 부엌으로 향하던 그 뒷모습이 광주할머니에 대한 내 마지막 기억이었다.

시루떡. 우리 딸 좋아하는 시루떡 해줘야 혀. 우리 딸 배고파서 집 찾아왔다가 빈속으로 돌아가믄 워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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