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끝이 저리고 뒤통수가 한 대 얻어맞은 듯 알딸딸했다. 새삼 내 몸이 이리 무거웠던가, 자각하게 만드는 중력이 한없이 날 아래로 끌어당겼다. 지구에 떨어질 소행성이 내 얼굴 위로 궤도를 틀기라도 한 건지 눈꺼풀마저 천근만근이었다. 막돼먹은 무게에 못 이겨 나는 하는 수 없이 저항하길 포기했다. 그렇게 가만히 숨만 고르고 있자니 지저귀는 새소리가 들렸다. 잠깐. 숨을 쉰다고?
자각과 동시에 눈이 번쩍 떠졌다. 가장 먼저 눈부신 빛이 각막을 태울 듯 들이닥쳤다. 나는 인상을 확 구기면서도 찌푸린 눈을 어떻게든 다시 뜨려 애썼다. 한구석에선 허여멀건 병원 천장을 보게 될까 두려운 마음이 들었다. 그렇다면 이모가 날 옮긴 것일 테고, 죽었다 살아났을 난 아직 친척 식구들을 비롯해 연구소 사람들까지 볼 낯이 없었다. 할머니 가신지 얼마나 됐다고 또 초상을 치르게 할 뻔한 것도 모자라 연구에도 차질을 빚은 셈이니까.
일이 실패하면 사고가 되고, 사고는 수습해야 한다. 방아쇠를 당길 때의 희열은 수습 과정에서 감당해야할 감정소모에 비하면 새발의 피였다. 이럴 때면 차라리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아이가 되고 싶었다. 책임을 져야하는 어른이란 건 참 피곤했다.
나는 부디 병원만은 아니길 바라며 완전히 눈꺼풀을 올렸다. 그러나 차츰 익은 눈에 담긴 건, 온통 파랑이었다. 과연 끝이 있을까 싶을 만큼 광활한 파랑. 그 한가운데는 구름 한 조각도 걸치지 않은 깨끗한 태양이 떠있었다.
“……천국인가.”
내가 그렇게 착하게 살진 않았던 거 같은데. 나는 태양을 쥘 수 있을 것처럼 손을 뻗어봤다. 노란 빛줄기가 손 틈새로 넘쳐흐르다 손바닥에 가려지길 반복했다. 태양은 몹시도 생생했고, 또 따듯했다.
이번엔 숨을 크게 들이마셔봤다. 곧바로 폭력적일 만큼 신선한 공기가 페부를 찔렀다. 근 몇 년 간 다소 때묻은 내 호흡기관이 감당하기엔 버거운 새뜻함이었다.
모든 게 믿기지 않았다. 그러니 이곳은 분명 꿈이거나 사후세계여야 했다. 현실에 있는 거라곤 퀘퀘한 흙먼지와 뿌연 하늘, 그 하늘에 파묻힌 텁텁한 태양뿐이었으니까. 이런 낙원은 결코 내가 살던 곳이 아니었다. 이곳을 지구라고 부를 수 있으려면 적어도…….
“꺄악!”
새 한 마리가 요란하게 푸드덕거리며 가까이에 착지했다. 너무도 놀란 나머지 그만 새와 똑같은 비명을 내지르고 말았다. 까까까까, 날 조롱하듯 까치가 연신 울었다. 얇은 다리를 종종거리며 내 곁을 맴돌던 까치는 곧 불쑥 나타났을 때처럼 훌쩍 날아갔다.
나는 작게 숨을 헐떡이며 들뜬 가슴을 진정시켰다. 그러고서야 퍼뜩 일으킨 상체로 깨달았다. 내가 여태 누워있던 곳은 넓은 풀밭이었다. 양껏 움켜쥐면 쪽물이 흠뻑 밸 것만 같은 푸르른 녹지.
바닥을 문지르자 보드라운 잔디가 손바닥을 쓸었다.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다더니. 저승이 이렇게 좋은 곳이라 못 오게 하려고 지어냈나 보다. 나는 그러쥔 주먹을 풀며 확신했다. 꿈이 이리 생생할 순 없으니, 여긴 필시 사후세계렸다. 그리 생각하기가 무섭게 겨우 잠재운 가슴을 다시 후들기는 목소리가 떨어졌다.
“아야, 간이 그리 쥐똥만혀서 요즘 같은 시상 어찌 살라 그라냐. 새 날갯짓에 그리 펄쩍 뛰믄, 경보 소리엔 아주 날아가겄어잉.”
흠칫거리며 고개를 들자 뒷짐을 진 채 나를 굽어보고 있는 노인과 눈이 마주쳤다. 신은 가장 보통의 형태로 인간의 삶에 나타난다고 하더니, 사투리를 쓰는 동네 할아버지 모습일 줄이야.
노인은 심지어 다소 촌스러워 보이기까지 했다. 저 잔꽃무늬 셔츠는 우리 할머니조차도 장롱 구석에 얌전히 박아 두던 스타일인데. 따로 복장규정은 없는 건가. 뭐, 신이면 그 정돈 자율에 맡길 수도 있겠다. 체계가 그렇게 빡빡하지는 않은가 봐.
너무 비현실적인 풍경을 마주하고 있어서인지 마치 남의 일인 양 시시콜콜한 의문들이 떠올랐다. 나는 쓸데없이 복잡한 머릿속을 정리하고 제법 정중한 투로 물었다.
“저는 이제 어떻게 되나요? 생전의 죄목을 심판 받은 후에 환생이 결정되나요? 아니면 그냥 여기서 계속 사는 건가요?”
노인은 나를 내려다보던 허리를 펴고 고개를 기울였다. 곧 그의 얼굴 위로 별 희한한 걸 다 보네, 식의 썩 달갑지 않은 표정이 떠올랐다. 나는 내 질문에 어떤 어폐가 있었나 곱씹어보다 깨달았다. 이미 죽었는데 계속 산다는 표현이 이상하게 들리긴 했다. 죽음 뒤에 또다른 죽음이 있는 게 아니라면. 혹은 내가 여기서 살 자격에 못 미치는 것일수도 있었다.
“혹시 자살이면 죄목이 더 추가되거나 형이 늘어나나요? 환생이 불가능해진다거나? 근데 저는 다음 생에 돌로 태어나도, 아니 아예 안 태어나도 괜찮아요. 지옥에 가는 건 좀 곤란하긴 하지만 가기 전에 엄마만 잠깐 볼 수 있게 해주시면 그것 또한 겸허히 받아들일게요. 그러니 부탁드려요. 우리 엄마, 박정녀를 아시나요? 5년쯤 전에 여기 왔을 거예요.”
엄마를 보지 못할까 조금씩 엄습하는 불안감에 말이 빨라졌다. 노인은 엉덩이를 털고 일어난 날 빤히 보다가 이내 혀를 끌끌 찼다.
“오메, 젊은 처자가 머리를 많이 다쳐부렀는갑네. 살 날이 앞으로 새털처럼 많을 턴디 우짜쓰까잉.”
“아뇨, 전 죽었고 방금 여기 온 거예요. 만약 제가 자유로울 수 있는 시간이 얼마 없다면 그 안에라도 엄마를 만나고 싶어서 그래요.”
“그려그려, 엄마. 엄마 찾는겨? 마지막으로 본 게 어딘지는 기억나고? 요새 허구헌 날 데모들을 해싼께 조심해야혀잉. 처자는 서울에서 왔는가?”
아무래도 머리를 다친 건 내가 아니라 노인 쪽인 것 같았다. 이제 보니 신이 아니라 같은 처지의 망자에 더 가까워보였다. 하긴, 여긴 저승이니 신보다야 망자들이 더 많겠지.
더 이상의 의사소통이 불가하다고 판단한 나는 이만 자리를 뜨기 위해 마땅한 핑계거리를 찾으며 주위를 둘러봤다. 근래 저승은 레트로 감성이 유행하는 모양이었다. 마치 드라마 세트장처럼 8,90년대 풍경이 사방에 배경으로 깔려 있었다. 고만고만하게 낮은 건물들하며 가게마다 투박하게 걸린 한글 간판들까지. 영락없이 과거 한국의 모습이었다.
그 순간 일찍이 떠난 줄 알았던 까치가 크게 울었다. 깍깍소리가 쾌청한 하늘을 시원하게 갈랐다. 노인은 뒷짐을 진 채 까치의 뒤꽁무니를 눈으로 좇더니 다시 날 보며 껄껄 웃었다.
“아따, 처자 오늘 운수 좋겄어.”
“네?”
“까치가 징허게 울자네잉.”
“…….”
경쾌하게 받아 칠 넉살 따위 내게 있을 리 만무했다. 그러면서 매정하게 떠날 용기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나는 어정쩡한 자세로 머뭇거리다 시간낭비를 계속 이어가고 싶진 않아 슬 몸을 물렸다. 그러던 차, 노인의 뒤 길 건너편에서 낯익은 얼굴이 보였다.
초등학생이나 중학교 저학년쯤 되어 보이는 학생이었다. 그 나이대엔 내가 아는 사람이 없다는 걸 알면서도 몹시 익숙해 뚫어져라 쳐다봤다. 강렬한 시선을 느꼈는지 학생도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동그랗게 앳된 눈과 단박에 부닥뜨렸다. 나도 모르게 입에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엄마?”
엄마의 유품에서 본 사진과 완벽하게 똑같았다. 영락없이 학창시절의 엄마였다. 누군가의 아내도, 엄마도 아닌 소녀 박정녀.
사람은 가장 행복했던 때를 죽을 때의 모습으로 가지고 간다고 했던가. 그녀에게도 가장 간직하고 싶은 시간이 있었을 것이다. 바로 지금 모습처럼.
내 엄마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당연히 엄마의 모습을 기대했던 내가 일순 부끄러워졌다. 나와 함께한 시간이 엄마에게 1순위가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던 게 바보 같았다.
수치심에 잠시 머뭇거리는 사이 엄마는 빠르게 멀어지고 있었다. 나는 허둥지둥 그녀의 뒤꽁무니를 좇아 달렸다.
“엄마! 엄마!”
내 부름이 들리지 않는 건지, 일부러 무시하는 건지. 엄마는 줄곧 앞에만 시선을 고정한 채 걸음을 재촉했다. 내가 더 크게 소리치며 다가갈수록 엄마의 걸음도 빨라졌다. 잡힐듯 잡히지 않는 술래잡기를 하며 거의 달리기 시합이 되었을 즈음엔 사람이 꽤나 북적이는 거리로 나온 후였다. 이 지경까지 오니 간과하고 있던 의문점이 하나 떠올랐다.
‘잠깐만. 대체 엄마가 날 피할 이유가 뭐가 있어? 내가 모르는 사람도 아니고. 아무리 5년이 지났다지만 자기 딸 얼굴을 까먹을 리…… 아.’
내가 모르는 사람도 아니고. 그 생각이 갈고리가 되어 내 발목을 걸고 넘어졌다. 나는 뛰던 속도를 조금씩 줄이다 제자리에 우뚝 멈춰섰다. 계속 달려서인지, 엄습하는 불안감 때문인지 숨쉬기가 힘들었다. 상상조차 해본 적 없던 가정이 자꾸만 머릿속을 휘저었다.
만약 엄마가 날 기억하지 못한다면? 엄마의 기억속에서, 내가 지워진 거라면?
나는 참을 수 없는 공포에 질려 이젠 거의 시야에서 빠져나가고 있는 엄마를 향해 소리쳤다.
“박정녀!”
외치면서도 생각했다. 차라리 엄마가 아니었으면. 나를 피해 달아나고 있는 저 소녀가 박정녀가 아니어서, 날 돌아보지 말았으면. 그럼 사람 착각했구나, 가슴 한 번 쓸어 내리고 진짜 엄마를 찾아 다시 달릴 수 있을 텐데.
그러나 내 간절한 바람이 무용하게도, 내 외침이 떨어지기가 무섭게도. 소녀는 퍼뜩 멈춰 서선 돌아봤다. 제 이름이 불렸을 때 반사적으로 나오는 전형적인 반응이었다. 엄마는 자신을 부른 사람을 찾아 인파 속을 살피다 나와 눈이 마주치고는 기겁하며 다시 도망치기 시작했다.
잇새로 실소가 절로 터져 나왔다. 좀 더 착하게 살 걸, 후회했다. 신 같은 거 내 앞에 나타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난 이미 지옥에 떨어져 있었다. 무슨 벌을 받고 있는지도 알았다. 엄마가 날 기억하지 못하는 세계, 그것이야말로 산지옥이었다.
그렇게 몇 분이 느릿느릿 흘렀다. 나는 길 한복판에 우두커니 서서 계속 생각했다. 앞으로 뭘 생각해야 할지를 생각했다. 그러다 문득 내 상태가 생각보다 괜찮다는 걸 깨달았다. 방금 지옥에 처박힌 사람치고는 정신머리 돌아가는 꼴이 나쁘지 않았다.
‘기억 못하면 뭐. 내가 엄마 딸이고, 엄마가 내 엄마인 게 달라져?’
날 잊었다 해도 상관없었다. 지금은 엄마가 보고 싶었다. 그냥 너무 보고 싶었다. 그리움이 좌절감을 압도했다. 어린 시절의 엄마든 50줄의 엄마든 상관없으니 달려가 마냥 안기고만 싶었다.
그러나 고개를 들자마자 조금 전과 사뭇 달라진 풍경에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인파가 부쩍 늘어나 있었다. 원래도 사람이 적지 않은 거리였는데, 엄마를 찾기가 더 어려워졌다.
나는 엄마가 사라진 쪽을 향해 무작정 사람들을 헤치고 나아갔다. 그러다 그들에게 어떤 목적이 있음을 깨달았다. 늘어난 인파는 한 곳으로 향했다. 뒤돌아보니 한 블럭쯤 떨어진 회관처럼 보이는 건물 앞으로 사람들이 잔뜩 몰리는 중이었다. 대부분 갓 스무 살을 넘긴 듯한 앳된 나이처럼 보였다. 계속해서 뭉쳐지는 사람들 반대편에는 까맣게 차려 입은 검은 무리가 보였다. 거리가 있어 자세히 보이지는 않았다.
저기서 망자의 심판이 진행되기라도 하는 걸까. 다소 시끌벅적한 소란이 들렸다. 미약한 호기심이 일었지만 내겐 더 급한 용무가 있었다. 엄마를 먼저 찾아야 했다. 심판은 언제라도 받을 수 있었지만 엄마는 이번이 마지막일지도 몰랐다. 나는 엄마의 인상착의를 떠올리며 인파를 빠져나왔다. 그렇게 비교적 한적한 도로에 선 순간이었다.
퍼엉, 무언가 터지는 소리가 났다. 회관 앞 소란이 한층 거세졌다. 개미굴에 불똥이 튄 양 바글대던 사람들이 뿔뿔이 흩어지기 시작했다. 뭔진 몰라도 가까이 가선 안 되는 일인 건 분명했다. 지옥의 사자들처럼 보이는 검은 무리가 모인 군중들을 때려잡고 있었다. 뿌연 연기가 먹구름처럼 밀려왔다.
나는 무작정 달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바람을 탄 연기는 나보다 빨랐다. 훌쩍 날아와선 온 거리를 집어삼켰다. 단박에 눈이 얼얼하고 콧등이 시큰해졌다. 조금 더 가선 얼굴 전체에 불이 붙은 듯 화끈거렸다. 어찌나 따가운지 눈을 제대로 뜰 수 조차 없었다. 연기가 억지로 끄집어낸 눈물이 뺨을 타고 하염없이 흘렀다. 찌르르 욱신거리는 코도 연신 맑은 물을 뱉어냈다.
상황이 어찌 돌아가는 지도 모른 채 나는 울면서 계속 달렸다. 불현듯 까치가 우니 운수가 좋을 거라던 노인의 말이 떠올라 울컥 화가 치밀었다. 운수가 좋긴 개뿔, 뉘집 운수 다 자빠졌나보지.
지옥은 이렇게 시작될 모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