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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로 Oct 05. 2024

10. 열쇠(3)

나는 바로 그 주 주말에 시골집으로 내려갔다. 대문 앞에서 만난 이모는 짧은 인사 후 시동이 걸려있는 트럭을 가리키며 말했다.


“아 야, 오느라 고생 많았다. 유품은 정녀가 쓰던 보물상자에 다 넣어놨응께, 거 식혜 무면서 천천히 챙기고 있어라잉. 내는 건웅이네로 짐 좀 보내고 올랑께.”

“조심히 다녀오세요.”


누런 밭 사이를 가로질러 트럭이 떠나고, 나는 천천히 대문 너머로 발을 내딛었다. 시골집은 마지막으로 봤을 때와 달라진 게 없었다. 끄트머리에 엷은 녹이 슨 아궁이부터 칠이 드문드문 벗겨진 파란 슬레이트 지붕까지. 그 정경을 고요한 눈길로 훑는 동안 집이 주장했다. 세상이 멸망해도, 나는 십 년이고 백 년이고 지금껏 그래왔던 것처럼 여기서 변하지 않을 거라고.

그리 외쳐대는 마당을 가로질러 나는 집안으로 들어섰다. 이모가 한바탕 정리해둔 덕분에 내부는 깔끔했다. 너무 깔끔해서 낡은 탁자 위에 덩그라니 놓인 상자가 외딴 섬처럼 보였다. 발목까지 찬 물이 걸을 때마다 찰박 소리를 터뜨려 더 그렇게 보일 지도 몰랐다. 나는 상자를 들고 유일하게 마른 지대인 할머니 방으로 가 바닥에 풀썩 엉덩이를 붙였다.


“뭐 별 것도 없네.”


엄마는 생전 품었던 사랑이 워낙 무거웠기 때문인지 유품조차 가벼웠다. 한편으론 그래서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남긴 게 많았다면 그 만큼 내 미련도 무게를 더했을 테니까.

나는 양반다리를 하고 앉아 상자를 뒤적거렸다. 가장 먼저 보인 것은 엄마의 고등학교 졸업앨범이었다. 두꺼운 커버를 잡고 끝에서부터 대강 넘기자 하나 둘 팔락거리며 떨어지던 페이지는 코팅한 은행잎을 책갈피로 끼워 둔 곳에서 멈췄다. 

박정녀. 복슬거리는 단발 머리의 소녀가 흑백사진 속에서도 색이 느껴질 만큼 환히 웃고 있었다. 내 머릿속의 엄마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엄마의 이름이 적혀 있지 않았더라면 그냥 지나쳤을지도 몰랐다. 엄마는 원래 저리 티 없이 맑게도 웃을 수 있는 사람이었을까. 

졸업앨범을 덮자 커버에 붙어있었는지 가족사진이 떨어졌다. 엄마가 나와 아빠를 가지기 이전의 가족이었다. 빛 바랜 사진 속에선 네 남매가 한 줄로 서있었다. 순서대로 정서, 정혜, 정녀, 건웅. 엄마의 얼굴은 뭐가 그리 불만인지 언짢아 보였다.

엄마는 자신이 하필이면 사남매 중 셋째인 것도, 이상하게 걸린 돌림자 이름도 싫어했다. 특히 이름에 대한 콤플렉스는 꽤나 깊어서, 어느 날은 덜컥 새 이름을 지어 와선 내게 개명해 달라고까지 부탁했었다.

하지만 사는 게 몹시 바쁘단 대단하신 핑계로 나는 개명신청을 미루고 미뤘다. 신고서 작성부터 신용카드나 민증 따위를 모조리 재발급 받아야 하는 여정은 엄마를 계속 박정녀로 살게 할 만큼 귀찮았다. 지금 와 가지게 될 후회에 비하면 정말 하찮은 귀찮음이었는데.


‘해줄 걸. 그게 뭐라고 좀 해줄 걸.’


입안이 썼다. 나는 기억을 구겨넣듯 사진을 앨범 사이에 아무렇게나 끼워 넣었다. 괜한 답답함에 심호흡을 하고 나니 다음으로 눈에 들어온 건 산모 수첩이었다. 첫 장엔 나의 출생시간과 날짜, 몸무게가 적혀 있었다. 퀴퀴한 냄새가 나는 종이를 두어 장 더 넘기자 엄마의 정갈한 글씨체가 드문드문 나타났다.


⌜2002. 05. 05. 요즈음 속이 자꾸 메슥거려 병원에 갔더니 임신 판정을 받았다. 당황스럽다. 좋은 일인지 나쁜 일인지 아직은 모르겠다.⌟

⌜2002. 07. 13. 그동안 쏟아 부은 주식이 부도처리가 나버렸다. 천 만원이 세 달 만에 43만원이 됐다. 하루 종일 통장만 뚫어져라 보는데 믿기지가 않는다. 3년 동안 모은 돈이었지만 정택 씨를 믿고 맡겼다. 나보단 아는 게 많은 사람이니 괜찮을 줄 알았다. 물론 가장 웃긴 건 나다. 이 지경이 됐는데도 난 정택 씨가 도무지 밉지가 않다. 인생 공부한다 생각했다. 언젠가 거름이 될 거라고.

⌜2002. 08. 23. 가끔씩 의문이 든다. 내가 이대로 엄마가 되는 게 맞는 걸까. 나는 아직 한참 부족하고, 너에게 줄 수 있는 것도 없는데. 이리도 부족한 엄마 밑에 태어나서 네가 불행하진 않을지 걱정된다. 어쩌면 나는…… 두려운 것 같다.⌟

⌜2002. 10. 17. 서로 풍족하진 않은 집안이라 널 행복하게만 키울 자신은 여전히 없다. 하지만 함께라면 행복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우린 현재를 헤쳐 나갈 수 있다.⌟

⌜2002. 12. 20. 출산예정일이 잡혔다. 다음 주면 드디어 너를 볼 수 있다. 너는 내게 먼저 다가온 가장 큰 축복이다. 네게서 첫 태동을 느끼던 날, 나는 알았다. 내 생에 이보다 큰 사랑은 없을 거라고. 나는 너를 아주 많이, 아주 지독하게 사랑하게 될 것이다. 그 어떤 대가도 바라지 않겠다. 부디 내게 건강히만 와 다오. 사랑하고, 사랑하고, 또 사랑한다. 내 아가.⌟


띄엄띄엄 훑어 내려간 내용은 내 생일을 며칠 앞둔 날짜에서 끝이 났다. 졸업앨범과 산모수첩, 내 탯줄, 돌잡이 때 내가 잡은 연필, 처음 뽑은 내 치아, 내가 접은 카네이션. 온통 나에 관한 잡동사니들로 엄마의 별 볼 일 없는 유품 리스트는 빼곡히 채워져 있었다.


“손에 쥔 것 없이 떠났으면 좀 무겁게나 남겨놓고 가지. 사람이 어쩜 이리 한결같아. 뭐 숨겨놓은 금덩이라도 있으면 좀 좋아?”


괜스레 심통이 나 애꿎은 상자만 걷어찼다. 상자는 덜커덕거리며 볼썽사납게 밀려나갔다. 나는 잠시 움직임을 멈췄다. 덜커덕 소리가 심상치 않은 까닭이었다. 정확히는, 눈으로 보고 있는 물건의 위치와 소리가 난 곳이 묘하게 어긋나 있었다. 마치 상자 밑바닥에 또다른 공간이 있는 것 같은…….

이제 보니 상자의 겉과 안쪽 바닥 사이의 높이 차도 제법 있었다. 나는 곧바로 상자를 뒤집어 안에 있는 물건들을 모두 쏟아냈다. 아니나다를까. 안의 물건을 모두 비워냈음에도 상자에선 여전히 뭔가가 굴러 다니는 소리가 났다. 황급히 상자 바닥을 더듬었다. 겉면과 똑같은 색의 종이가 발려 있었다. 손톱으로 두어 번 긁은 끝에 종이를 벗겨냈다. 숨이 작게 들이 삼켜졌다. 마치 대문처럼 마감된 나무판 정중앙에 열쇠구멍이 있었다. 두드려 보고, 상자를 뒤집어 털어도 보았지만 문은 열리지 않았다. 일순 정원과의 대화가 뇌리를 스쳐 지나갔다.


‘만능 열쇠. 닫힌 건 무엇이든 열어줄 거야.’

‘……무엇이든?’

‘네가 열길 원한다면 무엇이든.’


말도 안 된다는 생각 반, 그래도 한번 시도는 해보자는 생각 반으로 주머니를 더듬거려 담뱃갑을 꺼냈다. 탄피와 함께 넣어 놓은 열쇠는 이 순간을 위해 존재한  양 어두운 방 안에서도 반짝였다. 나는 조심스레 열쇠를 정렬하고 열쇠구멍에 밀어 넣었다. 약간의 힘에도 열쇠는 마치 밝혀지기를 기다린 비밀처럼 쉬이 돌아갔다. 그렇게 닫혀 있던 대문이 열리고 나타난 건, 다름 아닌 총이었다.


‘이게 대체…….’


검은 몸체를 들어올리는 손이 작게 떨렸다. 생각보다 묵직한 무게감으로 단박에 깨달았다. 이건 플라스틱 구슬 따위가 튕기는 장난감이 아닌 진짜 총이었다. 방아쇠를 당기면 총알이 나가는, 진짜 총.

엄마는 대체 이걸 어디서, 어떻게, 무슨 연유로 얻게 되었을까. 여태 이걸 숨겨놓은 이유는 또 뭐고, 하필이면 정원의 열쇠가 왜 딱 들어맞았을까. 엄마와 정원은 알던 사이였을까? 아니면 단순히 정원의 열쇠가 정말 무엇이든 열 수 있는 만능 열쇠였을까.

묻고 싶은 것이 너무나 많았다. 답해줄 상대라곤 하나도 남지 않은 와중에 이러니 더 혼란스럽기만 했다. 그 순간 총에서 떨어진 무언가가 내 무릎을 쳤다.


“……탄창?”


머리가 더 복잡해졌다. 탄창은 텅 비어 있었다. 원래부터 비어있던 건지, 엄마가 사용했기 때문인지는 몰랐다. 중첩된 패배감에 고개가 푹 떨구어졌다. 그러자 총만 물끄러미 내려다보던 내 시선은 자연스레 옆으로 옮겨 붙었다. 열쇠를 꺼내느라 탄피가 쏟아진 담뱃갑으로.

일순 헤아리기 힘든 불가사의한 감각이 발끝부터 저릿하게 타고 올라왔다. 답을 알아선 안 될 질문의 해답을 마주하고 있는 기분이었다. 나는 바닥을 더듬거려 흩어진 탄피들을 끌어 모았다. 그리고 탄창을 쥔 오른손과 탄피를 쥔 왼손을 번갈아 쳐다봤다.

비로소 질문과 답이 양손에 있었다. 그 둘을 연결짓기만 하면 되었다. 지금껏 마주한 무수한 방정식들 중 가장 명쾌한 식이었다. 나는 한차례 긴  심호흡 끝에 탄피를 탄창에 밀어 넣었다.

손아귀에서 탄피가 떨어져 나가는 순간까지 나는 그것이 들어맞기를 원했는지 아닌지 가늠할 수 없었다. 그러나 운명의 주사위는 이미 굴려졌고, 찰칵, 소리가 나는 순간. 그것은 너무나 꼭 들어맞아서, 마치 하릴없이 세상에 붕 떠다니던 모든 이치가 드디어 제자리를 찾은 느낌마저 들었다.

나는 떨리는 손에 힘을 주어 흐트러진 퍼즐 조각을 맞춰 나가듯 나머지 탄피를 끼워 넣었다. 억지로 힘을 준 것도 아닌데 술술 잘도 들어갔다. 찰카닥, 찰카닥, 찰카닥.

탄창이 무게를 더할수록 가슴이 뜨거워졌다. 마냥 감내하기엔 버거운 온도였다. 그 터질 듯한 강렬함은 나의 본심에 슬그머니 방아쇠를 당겼다. 꾸역꾸역 가슴 한 구석에 묻어두고 살았던 무료하고도 파격적인 본심이었다.

나는 때때로 내 존재를 부정하고 싶었다. 다음 날이 밝아오면 기적처럼 편안히 숨이 멎어있길 빌었다. 이 세상에서 매일같이 눈을 뜰 자신이 없었다. 만일 엄마 뱃속에 웅크려 있던 내게 선택권이 있었다면, 난 무(無)로 돌아가는 길목을 향해 방향을 꺾었을 테다.

그러나 마냥 죽고 싶어 안달난 사람이라기엔 꽤 모자랐다. 굳이 따지자면 이왕 태어나 버린 거 어떻게든 살긴 살자는 쪽이었다. 일도 적당히 열심히 했다. 이미 세상에 나와버린 이상 잘 먹고 잘 살고 싶었으니까. 당장 내일 멸망하지도 않을 거고 떠날 수도 없다면, 마지못해 살아가야 하는 땅이었다. 그래서 세상이 손톱만큼이라도 나아졌으면 하는 마음으로 바다숲 프로젝트에 참여한 이유도 있었다.

물론 그것이 열렬하게 살고 싶단 얘기로 이어지는 건 또 아니었다. 그러기엔 사는 게 재미없었다. 이 넓은 세상에 정말 나 혼자 남았다는 걸 깨달은 후엔 그런 기분이 더 자주 들었다. 삶에 재미를 찾지 못하는 것이 죽는 것보다 고통스러울 줄 누가 알았겠는가. 아등바등 일을 해서 내 몸뚱아리를 먹여 살리는 행위로는 도무지 보람을 찾을 수가 없었다. 이제는 당장 내일 죽는다 해도 후회하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생과 사의 경계에서 갈팡질팡하던 마음은 차츰 한쪽으로 슬그머니 기울었다. 나는 안온한 충동에 휩싸여 탄창을 장착한 총구를 머리에 대보았다. 여기서 방아쇠에 걸린 손가락을 당기는 것은 매우 타당한 선택처럼 보였다. 이성과 합리에 뒤틀린 감상이 끼얹어져 뒤죽박죽으로 섞였다. 그렇게 마침내 거부할 수 없는 유혹으로 탄생해 잘 차려진 식사처럼 접시에 올라왔다.

덜덜 떨리던 손은 어느새 고요히 멎어 있었다. 심호흡도 필요 없었다. 모든 지표가 이 다음 순간을 기다렸다. 목표는 명확했다. 남은 건 망설임 없는 개시뿐이었다. 이 총과 탄피의 모습을 한 탄알은, 이리 쓰이기 위해 내게 온 것이다. 이것이 작동할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운명이 이끈 종착지가 이 순간이라면, 받아주는 수밖에.


‘엄마. 곧 보러갈게.’


생각보다 앞서 관절이 움직였다. 나는, 방아쇠를 당겼다. 총포 소리가 들렸는지는 모르겠다. 그보다 빠르게 의식이 저물고 있었다. 예상했던 고통 치고는 퍽 안락한 죽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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