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외 벤치에 다리를 꼬고 앉은 이 선임은 불 붙인 담배를 한 번 빨고 손가락 사이에 끼웠다. 그녀는 연기를 내뱉으며 서너 개의 담배가 굴러다니는 담뱃갑을 내게 내밀었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진짜 끊었어요.”
“으유, 독한 것.”
연구실 밖으로 나오면 이 선임은 인선 언니가 되곤 했다. 그녀는 거절당한 담뱃갑을 주머니에 구겨 넣곤 나를 흘끔거리다 한탄처럼 말했다.
“처음부터 쉬울 거라곤 생각 안 했잖아. 다 각오하고 들어온 일이면서 뭐 그렇게 풀이 죽었어. 안 되면 될 때까지 하면 되지 뭐.”
“하지만 우리에겐 시간이 많지 않잖아요. 만약 끝까지 성공하지 못한다면…….”
실패만 한 끝을 생각하니 아찔해졌다. 망망대해 위 뚝 떨어진 조각배에 나를 욱여 넣은 기분이 들었다. 그저 상상일 뿐인데도 목덜미의 솜털이 오소소 돋을 만큼 섬짓했다.
나는 늘 만족스러운 결과를 내지 못하는 상황이 두려웠다. 그래도 괜찮아, 잠시 쉬어 가도 돼, 따위의 말은 내게 전혀 위로가 되어주지 못했다. 내겐 어떻게든 상황을 해결해서 성과를 거두는 것이 최선이자 최고의 위로였다. 그 전까진 멈춰서도, 멈출 수도 없었다.
이 선임은 담뱃대를 두드려 재를 털어내며 말했다.
“그래도 아무 것도 안 하고 기다리는 것보다는 뭐라도 하면서 기다리는 게 의미가 있는 거지. 너무 거창한 데서만 의미를 찾으려 하진 말어.”
“하지만 결국 실패하면 낭비인 거 아닐까요. 성과가 없으면 과정이 대체 무슨 소용이죠. 과정이 아무리 치열했다 한들 누가, 어떻게 알아주겠어요. 설령 알아준다 해도 그게 도움이 되긴 할까요. 성과가 없으면 우린 역사에 남기도 전에 멸종되고 말 텐데.”
“음, 뭔가 6500만년 전 공룡들이 낸 선언서를 대신 읽어준 거 같네.”
“……네?”
“우리도 공룡처럼 멸종되면 언젠가 외계인들이 화석으로 발견해주려나? 막 이름도 붙이고. 난 인서니타사우르스, 넌 해수니아톱스. 아니다, 우린 종이 같으니까 코드로 분류할 수도 있겠다.”
이 선임은 연구실을 나온 순간부터 프로젝트에 관한 모든 스트레스는 잊은 듯했다. 시답잖은 농담에 내가 눈살을 찌푸리자 그녀는 넉살 좋게 이죽였다.
“자기야. 사실 그거 말고 다른 고민 있지? 대체 뭐얼까, 우리 해수가 이렇게 저기압인 이유가? 어디 보자, 보자, 오늘이 무슨 날이던가? 오늘이…… 아.”
장난스럽게 분위기를 풀어보려던 이 선임은 금세 기세를 수그러뜨렸다. 그녀의 손가락 사이에 낀 담배가 땅으로 툭 떨어졌다. 오늘이 내 엄마의 기일임을 깨달은 눈치였다.
“그러지 마요. 내가 더 불편해. 벌써 몇 년이나 지났는데요 뭘.”
엄마가 떠났을 때, 이 선임은 날 진심으로 돌봐 준 은인이었다. 나 역시 상대적으로 그녀에게 꽤나 의지했었다. 엄마가 만약 첫째 아이를 유산하지 않았더라면, 내게 이런 언니가 있을지도 몰랐다. 그 만큼 이 선임은 내가 가진 의자다리 중 하나였다. 다리 네 개 중 하나가 뽑혀도 걸을 수는 있지만, 모양 빠지게 구부정해지는 그런 지지대같은 사람. 그녀는 굳이 먼저 캐묻지 않아도 속내를 불게 되는 유일한 친구였다.
그러나 엄마에 관한 이야기는 언제 꺼내도 가시 같았다. 나를 찌르는 가시. 벌써부터 목구멍이 따끔거렸다. 하지만 어떻게든 뱉어야만 하는 가시이기도 했다. 나는 그녀쪽으로 고개를 돌리지도 못하고 혼잣말하듯 중얼거렸다.
“몇 년 후면 지구가 멸망한다는 마당에 이런 고민하는 것도 웃기긴 하지만요…… 저는 엄마가 아직도 미워요. 내가 날 죽이는 상상을 수도 없이 했을 만큼 상처 줬으면서, 여전히 가장 사랑하는 존재로 남아버린 게 괘씸해요. 엄마를 위해서 살았고 엄마 때문에 살았고 엄마만 보며 살았어요. 그게 유일한 길인 줄 알았어요. 그것만 옳은 인생인 줄 알았어요. 근데 아니더라고요. 엄마가 내 이정표인 줄 알았는데 가축 목에 채워 질질 끌고 가는 족쇄랑 다를 게 없었어요. 그래서 나이 좀 먹으니까, 대가리 좀 컸다고 엄마를 원망했어요. 엄마 잘못이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정작 내게 매달리는 건 엄마니까 그런 엄마가 종종 참을 수 없이 미워졌어요. 엄마는 내 문제를 어느 것 하나 해결해 주는 것도 없으면서 나는 엄마 문제를 해결해 주길 바라는 게 너무 짜증났어요. 근데 그렇다고 이렇게 가는 법이 어딨을까요 이건 너무 비겁하잖아요…… 혼자 훌쩍 떠나버리면 모든 건 남겨진 사람 몫인데.”
이 선임은 가타부타 별다른 말없이 새 담배를 뽑아 물고 뻑뻑 피워 댔다. 딱히 대답을 바라고 털어놓은 속내는 아니었지만 막상 아무런 반응이 없으니 왜 이런 이야기까지 꺼냈을까 싶어 얼굴이 화끈거렸다. 그러나 부끄러움에 고개를 푹 숙이기 앞서 그녀의 주먹이 더 빠르게 내 이마를 두드렸다.
“임마, 청승 그만 떨어. 느이 아빠 같은 사람도 멀쩡하게 사는데 왜 네가 후회를 하니.”
“그거 말곤 답이 없잖아요. 후회하라고 내가 남겨진 것 같아요."
나는 아픈 이마를 문지르며 읊조렸다.
"내가 엄마를 사랑하는 마음보다 엄마가 날 사랑하는 마음이 더 무거워서...... 그래서 그 무게 차이를 뼈저리게 느껴보라고 엄마가 아닌 내가 남겨진 사람이 된 것 같아요. 근데 가장 무서운 건 따로 있어요.”
이 선임은 눈살을 조금 찌푸리며 물었다.
“뭔데?”
“엄마도 날 원망하고 있을지 모른다는 거예요.”
이 선임은 대답 대신 꽁지만 남은 담배를 바닥에 비벼 껐다. 그러곤 또다시 새 장초를 꺼내려다 도로 집어넣고 한숨처럼 말했다.
“원래 죽음은 산 사람이 해결하는 문제야. 별 수 있어? 우린 강물에 뜬 노 없는 배다, 생각하고 그냥 살아야지 뭐. 이리 흐르면 이리로, 저리 흐르면 저리로.”
“그래도 되는 걸까요?”
“안 되면 뭐 어쩔 거야. 하늘에 계신 네 어머니가 소행성 타고 우르릉 내려오셔서 널 훈계라도 할까?”
“……그렇게라도 다시 볼 수 있다면 지구멸망의 날이 기다려질 것도 같네요.”
“……가끔 보면 너도 정상은 아니라니까.”
옷자락을 탁 털고 일어나는 것으로 대화를 일단락 낸 이 선임이 팔을 쭉 뻗었다. 이어 그녀는 다리도 쭉쭉 뻗으며 본격적인 스트레칭에 돌입하는가 싶더니, 돌연 허공에 대고 코를 킁킁거렸다. 지켜보는 사람으로선 다소 이해하기 어려운 흐름이었으나 그녀는 굴하지 않고 괴상한 동작을 유지한 채 물었다.
“해수야. 무슨 냄새 안 나?”
“무슨 냄새요?”
“그 뭐냐… 뭐랄까… 음식 같은… 그러니까 내 말은 제대로 된 음식 있잖아. 고체블럭이나 팍팍한 우주식량 같은 거 말고 막 국물이 있는 그런…….”
이 선임은 공중에 음식 분자가 떠다니기라도 하는 것처럼 코를 박고 계속 공기를 들이마셨다. 처음엔 그녀를 개 보듯 봤던 나도 이젠 느꼈다. 분명히 음식 냄새였다. 연구소에서 결단코 날 리가 없는, 어떤 찌개 냄새.
퍼드득 시선 교환을 하자마자 우리는 냄새의 근원을 따라 바삐 걸음을 옮겼다. 이 선임이 킁킁대며 길을 찾으면 나는 그 뒤를 따랐다. 이윽고 우리는 목적지에 다다랐다. 다소 원시적인 방법으로 도착한 곳은 폐쇄된 식당이었다. 우리는 미지의 세계에 발을 내딛는 기분으로 식당에 들어섰다. 몇 년 간 아무도 사용하지 않았던 그곳엔, 해바라기처럼 웃는 한 여자가 있었다. 그녀는 트레일러 뒤에 서서 식판에 국을 담으며 인사했다.
“어서오세요!”
누군가와의 첫 만남에서 내가 이리 굳은 게 얼마만이더라. 물론 이건 전적으로 상대의 잘못이었다. 여자의 첫인상을 꼬집자면 마치 공작새를 보는 듯했다. 정확히는 짝짓기 시기에 들어선 공작새. 무조건 시선을 사로잡을 수 있도록 화려한 것만 모조리 갖다 붙인 공작새.
정말 그녀의 모습이 딱 그러했다. 눈이 아플 만큼 쨍한 형광빛이 도는 초록색 가발, 쥐 잡아먹은 시뻘건 립스틱, 두꺼운 숯검댕 눈썹까지. 그녀는 만화 캐릭터를 텔레비전 속에서 그대로 가져왔다 해도 믿을 만큼의 특이점이었다. 나이도 내 또래 같아 보이는데 왜 저런 스타일을 고수하는 지는 모를 일이었다.
“어? 두 분도 오셨네요. 냄새 맡고 왔죠? 하여간 이 선임님 개코는 알아줘야 한다니까요.”
어처구니 없게도 식당엔 이미 강 주임이 자리를 떡하니 차지하고 있었다. 우리를 보고 짧게 목례한 그는 다시 식판으로 고개를 내렸다. 사각틀에 담긴 벌건 액체를 숟가락으로 연신 떠먹기 바빠 보였다. 공작새 여자는 참한 청년이 밥도 복스럽게 잘 먹는다며 기뻐했다. 강 주임이 멋쩍게 웃고, 영문을 몰라 멀뚱히 서 있는 이 선임과 내 앞에도 각각 식판이 놓였다.
“식기 전에 얼른들 드셔요.”
“차려진 음식을 거절하는 건 도리에 어긋나는 일이죠. 설명은 먹으면서 듣겠습니다. 잘 먹겠습니다!”
이 선임이 먼저 덥석 앉았다. 나는 좀 더 머뭇거리다 의자에 엉덩이를 붙였다. 얼떨떨한 기분으로 식판에 담긴 것을 멀거니 바라봤다. 만약 공작새 여자가 이것을 만들었다면, 한눈에 보기에도 꽤나 애를 썼음이 느껴졌다. 이건 때묻은 트레일러 위를 줄지어 지나가던 딱딱한 프로틴 바 따위가 아니었다.
보급용 덩어리 캔 햄과 분말김치, 손톱만한 크기의 건두부로 얼추 구색을 낸, 말랑말랑하고, 부드럽고,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진짜 음식이었다.
물론 김치찌개라고 부르기엔 기실 실로 엉망인 혼합물이었다. 그러나 김치찌개라는 이름을 달고 있는 것만으로도, 난 붉그멀건 국 표면 위로 일렁이는 엄마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해수야, 우리 딸. 얼굴이 왜 이렇게 상했어. 밥은 잘 먹고 다니는 거야? 국그릇 안의 엄마가 물었다.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숟가락을 들고 국을 휘저어 엄마의 얼굴을 날려버렸다.
그 때였다. 무언가를 밟아 발바닥이 미끄러졌다. 탁자 밑으로 팔만 내려 더듬거린 끝에 ‘무언가’를 주워 올릴 수 있었다. 시선만 아래로 내려 확인해보니 이미 아는 물건이었다. 탄피였다. 아침에 주운 것과 매우 흡사한, 똑같다고까지 말할 수 있는 탄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