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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돌비 Apr 26. 2022

<바다 앞> 칼국수 집

장봉도 트레킹 3화

칼국수 한 그릇을 주문하고 자리에 앉았는데 옆 테이블에서 사진을 찍어달라고 했다. 정확히는 내 귀에 다 들릴 정도로 의논했다.


"저기 혼자 온 손님에게 사진을 부탁할까?"


가게가 너무 작은 탓에 모른 척하기도 어려워서


"사진 찍어 드릴까요?"

하고 먼저 물었다.


그 사람들은 6시 15분 차를 타려는 건지 이미 칼국수 한 냄비를 끝내고 나갈 채비를 하는 중이었다. 금방 끓여져 나올 줄 알았던 내 칼국수는 생각보다 시간이 걸렸고 나는 이러다 마지막 버스를 놓치는 거 아닐까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영종도야 정 안되면 카카오 택시를 잡아타면 그만이지만 이곳에선 그 방법이 통하지 않을 것 같았다. 하루 종일 도로를 따라 걸었지만 택시는 한대도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드디어 기다리던 바지락 칼국수가 나왔다. 나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사장님께 선착장으로 가는 마지막 버스의 시간을 확인했다. 그런데 칼국수를 내어주던 사장님은 깜짝 놀라며 마지막 차는 6시 15분이라고 말하는 게 아닌가. 나는 정류장에서 본 대로


"그 뒤에 35분 차가 한 대 더 있지 않나요?"


하며 재차 물었지만 여기서 십수 년을 사셨을 사장님이 틀렸을 리가 없었다. 그러던 중 내가 사진을 찍어준 옆 테이블 손님들이 6시 15분이 막차가 맞다며 자신들도 그걸 타기 위해 기다리는 중이라고 했다. 나는 그때까지도 반신반의하는 상태였지만 그래도 배는 타야 했기에 국물만 뜨고 얼른 나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시간을 확인하니 이미 6시 10분 다 되어가고 있었다. 그런데 주방에서 우리 얘기를 듣던 여사장님이 나오셔서 그 뜨거운 걸 어떻게 먹냐며 버스가 마을 안쪽을 돌다가 선착장으로 가는 것이니 그 타이밍에 맞춰서 자신들이 가까운 정류장까지 손수 데려다주겠다고 하셨다. 나는 여차하면 김이 모락모락 나는 칼국수를 내팽개치고 뛰어가려고 했건만 사장님 부부는 내 처지가 그저 안쓰러워 보였던 것이다.


급박한 상황에서 찍은 칼국수 사진


옆에서 이야기를 듣고 있던 옆 테이블 손님이 자신들도 사장님 차에 태워달라고 넉살을 부렸고 4명까지 탈 수 있다는 말에 맥주 두 캔을 더 시키는 호기를 부렸다. 그분들은 이제 막 뜨거운 칼국수를 받아 든 나에게 버스를 잡아줄 테니 걱정 말고 얼른 먹으라고 말할 정도로 넉살이 좋은 사람들이었다. 나는 그렇게는 안된다는 걸 알면서도 말만으로도 고마웠다.  지난번에 신도에 다녀왔던 생각이 나 슬며시 웃음이 나기도 했다. 배 시간까지 아슬아슬한 상황에서 등산객들이 멀리서 걸어오는 일행의 버스를 잡아두느라 기사님도 나도 엄청 화가 났던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섬 한 바퀴를 분노의 질주를 한 덕에 겨우 표를 끊고 제시간에 탑승할 수 있었지만 그 똥고집에 여간 불쾌했던 게 아니었다.


그런데 이젠 내가 그 입장이 되어버린 것이다. 사장님은 그런 식으로 버스를 잡으면 다른 승객들의 시간이 같이 밀린다고 연신 안된다고 했다. 나는 그렇게 오가는 혼란과 호의 속에 별 대꾸도 못하고 허겁지겁 칼국수를 밀어 넣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시원치 않게 먹고 가서 베푼 은혜를 의미 없는 일로 만들고 싶진 않았다. 후후 불 시간도 아까워서 차가운 김치에 칼국수를 싸서 입안에 밀어 넣었다. 그러면서도 사장님은 차를 놓칠세라 안절부절 오가시며 내가 얼마나 먹었는지 확인하셨는데 매몰차게 그만 먹으란 말도 하지 못하셨다.


사장님이 두 번째로 칼국수 양을 확인하러 오셨을 때, 맥주를 마시며 그 모습을 지켜보던 옆 테이블 손님이 이제 가야 할 때 아니냐고 물었고 나는 아슬아슬하게 마지막 김치를 밀어 넣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음식을 다 삼키키도 전에 종이컵의 찬물을 한 모금 머금고 뜨거워진 입안을 식혀야 했다.


들어갈 땐 안 보였는데, 나가려니 짖는 개


정신없이 가방을 챙기고 헐레벌떡 가게를 나섰다. 사장님의 SUV가 나와 손님들을 태웠다. 마당에 묶인 작은 강아지가 요란스레 짖기 시작하며 정신을 쏙 빼놨다. 나는 가게 안에 계신 여사장님께 연신 감사하다는 말을 외쳤고 시동 걸린 차는 출발을 알리며 레이싱을 하듯이 골목골목을 질주했다. 저 뒤로 버스가 지나가는 게 보인다며 사장님은 매의 눈으로 백미러를 응시했고, 우리의 라이벌인 버스의 동선을 확인했다. 열린 창문으로 시원한 바닷바람이 쏜살같이 들어왔다. 갓 끓여저 나온 칼국수에 데어서 얼얼했던 입안의 고통도 바람에 날아갔다. 네 명의 관광객의 운명을 짊어진 사장님의 긴박한 마음도 몰라주고 우리 네 명은 일탈이라도 하는 사람들처럼 신이 났다.


일행 중 한 분은 나에게 이렇게 혼자 여행을 다니는 걸 보니 '학생은 참 멋쟁이 같다'고 말했다. 그날 하루 만에 우리 부모님 뻘 되는 어른들에게 멋지다는 말을 연달아 듣자니 쑥스러웠다. 한편으론 부모님에게는 사실 멋진 자식이 아니라서 부끄럽기도 했다. 그 와중에 뒤에 앉은 그 넉살 좋은 아저씨는 '근데 학생인 게 맞냐'며 부인의 말을 정정하기 시작했다. 얄미울 정도로 눈썰미가 좋은 사람이었다.


온갖 소동을 겪고 나니 눈 깜짝할 사이에 정류장에 도착했다. 우리는 사장님에게 진심으로 감사하다고 몇 번이고 감사인사를 전했다. 사장님은 다음에 또 찾아오라는 쿨한 말과 따뜻한 미소를 남기고 되돌아가셨다. 생각해보니 옆 테이블 사람들은 시간에 맞춰 버스를 타도 되는 거였는데 버스 시간표 보는 법도 제대로 깨우치지 못한 나를 챙기느라 함께 타고 온 것 같았다.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이런 경험은 돈 주고도 못 산다’는 아저씨의 코멘트를 떠올려보면 그저 모험을 즐기는 사람일지도 모르겠다.

무사히 잡아 탄 6:15 막차


그렇게 우리 넷은 같은 버스를 타고 선착장에 도착했고, 나는 섬에서 남은 시간을 한 톨도 허투루 쓰지 않으려고 선착장 주변을 이리저리 돌아다녔다. 선착장 바로 옆에 난 작은 해변은 아직 바닷물이 돌아오기 전이었다. 그러다가 안 가본 방향으로 걸었는데 바로 거기에 장봉도의 명물이라고 할 수 있는 인어상이 있었다. 인어상에는 나름의 전설이 있다. 어부들이 인어를 낚아 올렸다가 불쌍히 여겨 풀어주었는데 그다음부터 이상하리만치 그 부근에서만 어획량이 늘었다는 스토리였다.


결국 사람의 마음에 남는 것은 예기치 못하게 마주한 사건과 그걸 풀어나가는 따뜻한 마음인 것 같다. 배고픔에 막차를 놓칠뻔한 칼국수 집 손님 이야기처럼 말이다. 비록 내가 인어는 아니지만, 사장님 부부가 베풀어준 대가 없는 호의만큼 <바다 앞> 칼국수 집 손님도 부쩍 늘어나길 진심으로 바라본다.


장봉도 선착장 옆에 세워진 전설의 인어상



그리고 내가 막차라고 착각했던 6시 35분은 장봉 4리에서 출발하는 6시 15분 버스가 선착장에 도착하는 시간을 표기해놓은 거였다.

 

- 끝 -




트레킹 모습이 궁금하시다면, 아래 영상으로 확인해보세요!

https://youtu.be/T4buPxuNhE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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