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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돌비 Mar 05. 2022

영종도 나무에선 굴이 자란다


산에는 나무 말고 놀라운 게 많다고, 연달아 발견한 깃털 때문에 보물찾기를 하는 기분으로 걷고 있다가 어깨 옆의 나무에 눈이 갔다. 내 마음을 바꾸려는 듯이 나무의 잎도 열매도 가지도 아니고 나무 줄기가 내 발을 멈추게 했다. 나무 줄기는 꼭 석화껍질을 여러개 덮어놓은 것 처럼 조각나있었다. 이게 왜 놀라운 일인가 하면, 나무 껍질이 울퉁 불퉁하다는 걸 머리론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울퉁과 불퉁 사이가 구별될 정도로 갈라져서는 몇겹의 나무 껍질이 덮이고 덮여 이토록 두터운 나무 기둥이 되었는지를 이렇게 쉽게 확인 할 수 있을 줄 예상도 못했기 때문이었다. 나무를 잘라야 나이테가 보이고 그 촘촘함으로만 나무의 시간을 가늠할 수 있는 줄 알았는데. 겹겹이 덧데어진 껍질, 그 위에 껍질, 그 위를 덮은 껍질의 단면이 고스란히 노출되어있었다. 나는 경이로운 마음에 그 쪼개진 틈에 시선을 끼워가면서 거친 굴곡을 하나하나 살폈다. 낡은 집의 도배지를 벗겨낼 때 켜켜히 쌓여서 그것마저 하나의 굵은 벽이 되어있는 모습을 본 사람이라면 이해가 쉬울지 모르겠다. 편평하고 납작한 수직의 벽 조차도 시간을 쌓아둔다. 경계라고 부르는 개념에도 두툼하게 나잇살이 찐다.



사실 나무껍질에 놀란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그 여러번을 다 겪고 나서도 오늘 본 나무는 그 전에 본적 없는 모양을 하고 있어서 놀랄 수 밖에 없었다. 모든 나무는 다 다르게 생겼지하고 말할 때 쉽게 떠올리는 것은 나뭇잎의 색, 나뭇잎의 모양, 가지가 풍성하게 뻗어있는 형태나 나무 줄기의 굵기같은 것들, 줄기에 자란 가시같은 것들이다. 나 역시도 나무 껍질 만큼은 정말 특이한거 빼고 다 비슷비슷하게 여기곤 했다. 예를 들면 이게 나무야 그림이야? 하고 들여다보게 하는 나무들. 그런 것 빼고는 모두 거기서 거기인 녹갈색의 배리에이션이라고 생각했는데, 알고보니 거북이와 민달팽이 만큼이나 달랐다.



벌어진 틈을 아무렇지도 않게 노출시킨 나무와는 다르게 조심스럽게 켜켜히 쌓인 껍질 사이를 찍었다. 그걸 따라가다 고개를 위로 올렸을 때 하늘 저 위로 길게 뻗은 나무 한그루가 온전하게 보였다. 잔가지를 내 손이 닿지 않을 높이까지 활짝 펼친 나무. 이렇게 키가 크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이 지난 걸까? 잠시 숨을 고르고 다시 움직였다. 멋진 걸 보고 나서도 내가 하는 생각이라고는 '사람들도 이걸 알까?', '사람들도 나무의 줄기가 이런 모양이라는걸 알고 살아가는 걸까?'하는 질문들 뿐이었다. 정말 중요한 사실을 나무라는 단어에 갇혀, 평면적인 이미지들에 갇혀 영영 모르고 살거라고 생각하니 살아있는 건 이상한 일이라는 기분도 들었다.



걸음마다 솔방울이 발에 치였다. 단단하고 바싹마른 표면을 보고 있자니 몇걸음 전에 지나친 나무 껍질이 생각났다. 솔방울과 나무 껍질. 둘은 전혀 다르게 생겼으나 어딘가 비슷한 구석이 있었다. 그 생각을 마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솔방울 옆에 나무 껍질이 떨어져 놓여있는게 보였다. 나는 속으로 웃으면서 아무래도 오늘은 백운산이 나에게 현장학습을 시키려는 참인가보다 생각했다. 어떤 날엔 인간 밖에 존재하는  무언가의 유머감각이 느껴지는 것 같은데 오늘이 마침 그런 날이었다. 나는 백운산이 미리 준비해놓은 준비물을 향해 걸어갔고 나란히 놓인 솔방울과 나무 껍질을 바라봤다.



-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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