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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돌비 Oct 13. 2022

커피라도 마시지 않으면

하루 중 유일하게 살아있던 시간

    운서동엔 마음에 드는 플랫 화이트를 파는 곳이 없었다. 가게마다 플랫 화이트를 메뉴에 걸어 놨지만 이전까지 내가 즐겨마시던 것과는 달랐다. 카푸치노와 라떼로 실습이 넘어가면서 플랫 화이트에 관한 이야기가 나왔다. 플랫 화이트는 거품이 없다시피한 라떼 종류의 음료인데 요즘 카페들이 라떼와의 차별화를 위해 작은 잔에 담아 라떼보다 더 비싼 돈을 주고 판다는 이야기였다. 바로 그게 내가 즐겨마시던 플랫 화이트다.


    누구는 상술 또는 마케팅이라고 부를지 모르지만 플랫 화이트의 맛을 완성하는 건 한 손에 들어오는 작은 잔이다. 덕분에 우유가 들어가도 에스프레소의 진한 맛이 불필요하게 희석되지 않는다. 커피 학원의 첫 수업 날 우리는 자기소개를 하는 시간을 가졌다. 같은 테이블을 공유하는 조원들끼리 가볍게 이름과 왜 커피를 배우러 온 건지 이유에 관해 나누는 시간이었다. 활발하게 자기소개가 시작된 다른 테이블과 다르게 우리 테이블은 침묵만 돌았다. 나빼고는 아무도 눈치를 보지 않는 상황이라 하는 수 없이 내가 성격 좋은 척을 하며 자기소개를 시작했다. 이름은 무엇이고 잠시 직장을 그만두고 영종도에 살고 있다. 커피를 배우려는 이유는 당장은 아니지만 훗날 카페를 창업하기 위해서다. 구구절절한 진실보다는 누구도 의심하지 않을 사실이 필요했다. 그리고 만약 나에게 충분한 돈이 있었다면 나는 커피 마시는 일에만 만족하지 못하고 분명 카페를 하나 차렸을 것이다.


    회사를 다니면서 동기들과 가장 많이 했던 얘기는 ‘이런 카페 하나 차리고 싶다’였다. 회사는 용산의 골목에 위치해 있었는데 거긴 카페가 나무처럼 생겨나는 곳이었다. 그럼 나와 동기들은 새처럼 새로 지어진 카페를 찾아다니는 걸 즐겼다. 점심시간이면 꼭 커피를 한잔 마셔야 했는데, 카페인은 각성제보단 마취제 같은 역할을 했다. 향이 나는 곳에, 음악이 들리는 곳에, 해가 드는 곳에, 모니터가 아니라 현실 세상을 바라보는 경험이 너무 귀했다. 회사 안에서 겪는 스트레스가 별거 아니라는 듯이 실컷 이야기하고 나서야 다시 회사로 돌아가 일을 할 수 있었다. 모니터를 마주하며 사는 현실에 무감각해지기 위해서 마셨던 커피였지만, 그러면서도 나는 사람이 진짜 살아가는 곳이 어떤 공간인지 잊지 않기 위해 발악하듯이 카페를 찾았다. 그 당시 내가 제일 좋아하던 카페는 작은 마당을 끼고 있는 낡은 주택을 개조한 곳이었다. 그건 다 가짜였다. 콘크리트 노출 벽과 휘어질 듯 불안정한 나무 서까래와 빈티지한 재봉틀을 개조해 만든 커피 테이블까지. 마당에는 앉아서 커피를 마실 수 있는 아주 작은 사이즈의 캠핑의자도 있었는데, 전혀 편하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그건 내가 접할 수 있는 유일한 진짜 같은 시간이었다. 마당에 붙어있는 ‘큰 소리로 대화 금지’ 같은 사인이나, 거기에 살고 있는 주인밖에 모르는 센치한 강아지나 바닥에 깔린 먼지나는 마른 흙과 커피 잔 주변으로 날아드는 날파리 같은 것. 카페 주위를 둘러싼 진짜 사람이 사는 집이 있었고, 강아지는 조금 못생긴 믹스견이었다. 바닥에는 놀러 온 개들이 소변을 본 흔적이 있었다. 그런 시덥지 않은 것들을 바라보면서 조그만 캠핑의자에 몸을 구겨 경사진 무릎에 커피 한잔을 내려놓고 볼거리가 사라지면 홀짝 한 모금을 마셨다. 가끔가다 커피잔이 무거우면 몸을 일으켜 세워 무릎의 경사가 수평이 되도록 맞추기도 했다. 허리에 힘이 들어갈 땐 커피를 빨리 마셔서 옆으로 치워놓았다. 그렇게 아름다운 풍경은 아니었으나, 매일 살아가는 일을 덜 슬프게 만들어주긴 했다. 


    그곳에서 즐겨 마셨던 게 플랫 화이트다. 추울 땐 따뜻하게 마셨고 여름에는 얼음을 넣어 마셨다. 한 모금 털어 넣으면 사라져 버리는 양이었지만, 두 모금에 나눠마시고 얼음에 묻어있는 커피를 아쉬운 듯이 쳐다봤다. 그렇지만 다 마시지도 못한 식은 커피를 사무실로 챙겨 들어가 비린내 풍기도록 쌓아두는 것보단 나았다. 일이 끝나지 않아 식은 커피를 버리고 또다시 새 커피를 타야 하는 것보다 말이다.


    한 번은 커피 친구와 점심을 먹고 사이폰을 그럴싸하게 장식해둔 카페를 찾아간 적이 있었다. 그건 노출된 콘크리트 벽 같은 거였다. 사이폰 커피는 없었다. 그래도 플랫 화이트가 있길래 그걸 시켰다. 잠시 후 컵 한가득 출렁이는 우유를 받았다. 장사를 거의 하지 않는 곳인지 컵에 맞는 뚜껑도 없었다. 점원은 사이즈가 안 맞는 뚜껑을 몇 번이고 우겨닫다가 마지못해 새로운 뚜껑을 찾느라 선반 이곳저곳을 열어보기 시작했다. 아무리 기다려도 컵에 맞는 뚜껑은 나오지 않을 것 같았다. 포기하고 그냥 가져가겠다고 말하니 점원이 기다렸다는 듯이 괜찮으시겠어요? 물었다. 우린 카페를 나와 바로 앞에 있는 공원 벤치에 앉았다. 카페 안은 냉기가 돌았다. 야외에서 해를 쬐자 몸이 녹기 시작했다. 조금도 기대하지 않았지만 커피는 정말 맛이 없었다. 두 모금도 마시지 못하고 버렸다. 이런데 카페 하나 차리면 좋을 텐데. 나는 습관처럼 그런 소리를 했다. 커피 친구는 어플을 켜 우리가 앉아있는 곳의 땅값을 찾았다. 눈앞에 쓰레기처럼 버려진 땅들이, 실제로 사람들이 몰래 쓰레기를 투기하고 가는 쓰레기장이 된 이곳이 모두 수억 원이었다. 우유의 비린맛이 가시지 않아서인지 입안이 텁텁했다. 억 소리를 듣자 이젠 대출받을 곳도 없는 백수신세라는 게 다시 한번 떠올랐다. 카페고 땅이고 맛있는 플랫 화이트나 마시고 싶었다. 라떼말고 플랫 화이트를 사 먹을 수 있는 돈은 벌어야 할 텐데 말이다. 자주 가던 카페의 못생긴 강아지가 여전히 살아있는지 궁금해졌다. 여전히 주인만 바라보는지, 아직도 가을 타는 귀여운 얼굴을 하고 있을지.





퇴사해도 마찬가지다. 커피 마시는 시간, 강아지 보는 순간, 식물이 자라는 공간에서 행복함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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