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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해빵이

by 백수광부

[소설 : 핸섬 가이즈]

19. 해빵이


세종은 수의대 화장실 세면대 거울 앞에 섰다. 자신의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기분이 좋은 것도 아니었다.

아주 반가운 것도 아니었다.

온풍이 채워지기는커녕 가슴이 휑해지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그녀에 대해 알고 싶었다.

이유는 알 수 없었다.

그냥 알고 싶었다.


세종은 화장실을 나와서 과 동아리방 쪽으로 조심스레 걸어갔다. 문이 열려있어 안을 들여다보았다. 악기는 가지런히 놓여있었지만, 그녀는 없었다. 그래서 안으로 들어가 보았다. 그제야 그녀 외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개해빵?”


동아리 이름은 개해빵이었다. 동아리 이름 아래에 이렇게 적혀있었다.


‘개가 해방되는 그 날까지, 빵빵하게 지원합니다.’


쇠창살 속에 있던 유기견이 풀려나는 모습, 털이 정리되지 않은 강아지가 사료를 허겁지겁 먹는 모습이 담긴 포스터가 벽에 붙어있었다. 창문 아래 한쪽에는 빵빵해진 강아지 볼을 연상케 하는 로고가 박힌 담요와 문구류 등 행사용 상품들이 있었다.


개해빵은 고통받는 개를 찾아 신고하고, 유기견을 구조하여 새 주인을 찾아주는 동물보호 동아리였다.


한쪽 장식장에는 동아리연합회에서 받은 상장과 상패가 있었다. 사진 액자도 있었다. 거기에 그녀가 환하게 웃고 있었다. 세종의 입가에도 미소가 번졌다. 자신에게 비벼대는 동물은 질색했던 그가 동물을 보고 웃고 있었다. 유기견을 구조하고 그들에게 따뜻한 먹이를 주며 보듬어 주는 그녀를 보니 그도 치유 받는 느낌이었다.


세종은 뒤돌아서 악기가 있는 쪽으로 가보았다. 기타에 글자가 새겨져 있는 것 같았다. 고이 들어 확인했다.


‘원지우?’


그녀의 이름이었을까?

그때 뒤에서 인기척이 났다.


“누군데 함부로 악기에….”


세종은 화들짝 놀라 뒤돌아보았고 그녀도 하던 말을 멈췄다.


“아, 죄송해요.”


당황한 세종의 모습을 보고 그녀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우리 처음 보는 사이는 아닌 것 같은데, 맞죠?”

“그게….”


“그 ‘재수 없는 새끼’ 쪽지 맞죠?”

“아 그때 그건 취해서…. 사과드릴게요.”


“실수였나? 실수였구나.”


그녀의 의미심장한 말에 세종은 어쩔 줄 몰랐다.


“마냥 실수라고 하기엔. 제 행동이 거짓은 아니었고….”

“훗.”


“그러니까 그게 어떻게 된 거냐면.”

“재수 없는 새끼 같진 않았으니 오해는 풀게요.”


그녀는 기타를 한쪽에 세워두고 가방을 챙겼다. 동아리 방을 나갈 참이었다. 또 갑자기 사라지려는 그녀에게 세종이 물었다.


“저기 혹시 대국대 학생이신가요?”

“알고 싶어요?”


“네.”

“술집 알바생인지 명문대생인지 그게 궁금한가요?”


“아니 전 그냥 당신이 궁금해요.”

“훗. 나이는 25세, 대국대 수의학과 4학년, 원지우.”


“고마워요. 알려줘서.”

“그것만 알면 날 알 수 있나요?”


“전 건축공학과 2학년, 온세종이라고 합니다.”

“후배고 동생이겠네.”


세종이 나이를 말하지 않았지만 지우는 바로 말을 놓았다.


“전화번호 알려주세요. 전화하고 싶어요.”


지우는 피식 웃고 밖으로 나갔다. 세종도 따라 나갔다. 지우는 백팩을 둘러메고 오토바이에 올라탔다.


“헬멧 왜 안 써요? 위험한데.”

“난 바람을 느끼는 게 좋아.”


“사고 나면 어쩌려고요.”

“내 운명이라면 어쩔 수 없지.”


세종은 지우 오토바이 뒤에 올라탔다.


“뭐야?”

“저도 그 바람 느껴보려고요.”


“내리지?”


세종은 내리지 않았다. 지우가 왼쪽으로 얼굴을 돌렸다. 세종이 바짝 지우 얼굴 쪽으로 다가왔다. 10cm 거리였다. 지우는 사선으로, 세종은 정면으로 서로의 눈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더 알고 싶어요. 당신.”


지우는 그의 눈에서 진심을 보았다. 그러곤 정면을 응시했다. 차분하지만 강하게 시동을 걸었다.


“꽉 잡아.”


세종은 지우의 후드티 귀퉁이를 조심스레 잡았다. 가방을 사이에 둔 채 둘은 하나가 되었다.

지우는 후문 쪽으로 가서 학교를 빠져나갔다. rpm을 높였다.


“부웅~~~”


갑자기 세종은 지우와 멀어졌다. 거친 맞바람이 그리 만들었다. 세종은 급하게 지우의 허리를 잡았다. 지우는 개의치 않는 눈치였다. 자유와 맞닿아 있는 듯한 지우에게 세종은 자꾸만 빠져들었다. 머릿속에 남아있던 가은에 대한 미안함도 잠시 잊기로 했다.


지우를 향한 복잡 미묘한 이 마음을 그리고 싶었다. 눈을 감고 머릿속 스케치를 시작했다. 4B연필을 들었다.


_새하얀 모래밭이 펼쳐진 반짝이는 바다.

_그곳을 산책하는 지우와 골든 리트리버 한 마리.

_그녀를 향해 달려가는 자신의 모습.

_따뜻한 바람이 피부에 고스란히 느껴져 행복해하는 그들.


그때, 철퍼덕하는 소리가 났다. 오토바이가 진흙에 빠지는 느낌이 났고 이내 도착한 곳에선 개소리가 요란하게 났다. 유기견 보호센터였다.


세종은 닫힌 철창 속 개들을 쳐다보았다. 그들은 지우를 보며 반가움에 꼬리를 살랑거렸다. 지우는 오토바이를 세웠다. 세종도 따라 내려 철창 가까이 다가갔다. 개들의 상태를 보니 마음이 좋지 않았다. 살이 파여 피딱지가 털과 뭉친 아픈 개도 있고 눈을 뜨지 못한 채 힘겹게 버티는 개도 있었다. 삐쩍 말라 힘이 없는 개도 있었고 다리를 저는 개도 있었다.


개 짖는 소리에 안쪽 사무실에서 누군가 나왔다. 센터장이 지우를 보고 반가움을 표했다.


“우리 해빵이 왔어?”

“네~ 저 왔어요.”


“요즘 공부하느라 바쁘지?”

“아녜요. 애들 다 잘 있죠?”


“얘들이 이제 나보다 너를 더 찾아.”


한참 둘의 대화가 이어졌다. 멀찌감치 서 있던 세종을 보고 센터장이 물었다.


“저 친구는 누구야?

“후배요. 일 좀 시키려고요. 건축공학도거든요.”


센터장은 세종을 아주 반갑게 맞아주었다.


“안녕하세요. 온세종이라고 합니다.”


세종은 군 제대 이후, 처음 보는 사람에게도 인사를 곧잘 했다. 낯가림도 없어졌고 넉살도 생겼다.


“세종 씨 착한 사람인가 보네요. 해빵이랑 봉사 다니는 거 보면.”


봉사를 해본 적 없던 세종이었지만 기분이 좋아졌다. 그가 잔잔한 입가의 미소를 지었다.


“센터장님, 필요한 개집 있으면 저 친구한테 말하세요.”


유기견의 턱을 만져주던 지우가 해맑게 웃으며 센터장에게 큰 소리로 얘기했다. 세종의 예상과 달리 지우는 동물뿐 아니라 사람과의 친화력도 아주 좋아 보였다.


세종에게 금방 말을 놓더니 N극이 S극을 끌어당기듯 본인 가까이 상대를 끌어당겼다.


“준커랑 정남이 덩치에 맞는 집이 없긴 한데, 세종 씨가 만들어 줄 수 있어요?”


세종이 대답하기 전에 지우가 대답을 가로챘다.


“껌이죠. 건축공학과 학생이 그거 하나 뚝딱 못 하면 안 되지.”

“껌이죠. 개껌.”


실실 웃으며 농담을 하는 세종에게 지우가 말했다.


“재료비는 다음 주에 벌어서 줄 테니 도면 작업부터 해봐. 그리고 준커랑 정남이 얼굴 보고 가. 아무리 개라도 각자의 개성을 살린 집이면 좋겠는데?”

“노력해 볼게요.”


세종은 지우가 그녀의 영역에 자신을 끌어들이는 게 마냥 좋았다. 그에겐 그녀와 가까워지는 느낌 그 자체가 감추려 해도 감출 수 없을 만큼 신나는 일이었다.


“얘가 준커예요? 얼굴은 길쭉하고 눈은 초롱초롱하네요. 착하게 생겼네요”

“맞아. 저런 애를 누가 버리고 간 건지.”


“그럼 얘가 정남이? 얘는 사람같이 생겼네요.”

“그래서 이름도 정남이라고 지었어. 가끔 사람처럼 어설픈 모양새를 하고 ‘생각하는 로뎅’처럼 그러고 있어.”


세종은 준커와 정남이, 그 개들과 벌써 친구가 된 느낌이었다. 멋진 집을 지어줘야겠다는 생각이 뭉게뭉게 피어났다. 가슴속이 포근했다.

그 마음은 지우를 향한 마음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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