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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I want you

by 백수광부

[소설 : 핸섬 가이즈]


20. I want you


세종은 유기견센터에 다녀온 이후로 틈만 나면 준커와 정남이 집을 만드는 일에 집중했다. 특별하게 만들어 지우에게 잘 보이고 싶었다. 강의 시간에도 졸지 않고 개집 스케치를 마무리했다. 수업 종료를 알리는 교수님 말씀에 부리나케 강의실을 빠져나갔다.


수의대를 가려는 길에 복도에서 가은과 마주쳤다. 세종은 사실 먼저 연락하려다 타이밍을 놓친 후, 까맣게 잊고 있었다. 미안함이 그제야 밀려왔다. 그래서 먼저 말을 걸었다.


“잠깐 시간 돼?”

“없는데.”


“잠깐이면 돼.”


가은은 밖으로 나갔고 세종은 따라 나갔다. 잠시 멈춰 선 가은에게 세종이 말했다.


“미안했어. 그날은.”

“뭐가?”


“기다리게 해서.”

“아니야. 안 기다렸어.”


“미안해.”

“너 진짜 나쁘다. 네가 먼저 보자고 했잖아.”


“갑자기 일이 좀 생겨서.”

“갈게.”


가은은 잠시 벌어진 틈을 단단히 여미고 돌아섰다. 혹시나 기대한 가은의 사랑은 무참히 짓밟혔다. 차갑게 돌아서는 그녀를 보고 세종도 터벅터벅 걸어 내려갔다.


야외 공연장 쪽에 가까워질수록 시끄러운 소리가 들렸다. 축제가 열린 듯 사회자 소리가 들렸고 경쾌한 전주가 흘렀다. 누가 무대에 올라간 듯 여기저기서 환호성이 들렸다.


“와~ 우리 언니 차례다!”

“누나, 멋져요!”


“휘이익~”


세종은 여기저기서 열광적 반응을 하는 관객들 시선을 따라가 보았다. 그 시선을 따라 군중 사이를 파고들었다. 서서히 앞으로 가면서도 바닥을 볼 수 없었다. 눈을 뗄 수 없었기에.


_뚠뚠뚠뚠뚠뚠뚠뚠 뚠뚠뚠뚠뚠뚠뚠뚠

_I threw a wish in the well

_Don’t ask me, I’ll never tell


그녀의 무대가 시작되었다. 검은색 크롭티에 찢어진 청바지를 입은 보컬.


그녀의 모습에 세종은 또 얼어버렸다. 도대체 몇 번이나 얼렸다 녹이는지 차가운 도시 남자, 세종이 흐물흐물 해파리가 되어 바다 위를 부유했다.


관객들의 환호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원지우, 그녀만 보였다. 한참 무르익어가던 그녀의 노래는 통통 튀기 시작했다. 온몸으로 리듬을 타면서 노래를 부르는 모습은 스무 살 새내기보다 더욱 상큼하고 사랑스러웠다.


_Hey, I just met you

_And this is crazy

_But here’s my number

_So call me, maybe


그녀의 무대 장악력과 가창력에 관객 모두가 마음을 뺏겼다. 그녀에게 빨려 들어갔다. 세종은 점점 비집고 들어가 맨 앞자리로 갔다. 그녀의 노래가 드디어 끝났다.

사회자가 무대로 뛰어왔다.


“역시 원지우양, 수의학과 여신답네요. Carly Rae Jepsen의 ‘Call Me Maybe’였습니다.”


지우는 관객을 향해 손을 흔들고 무대 뒤로 사라졌다.


모든 참가자의 순서가 끝났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세종은 자리를 뜨지 않았다. 곧바로 시상식이 이어졌다.


“축제 시작 전에 알려준 모바일 링크로 투표를 마무리하였습니다. 인기상 발표하겠습니다.”

“원지우! 원지우!”


“사랑해요! 원지우! 멋있어요! 원지우!”


사회자는 관객들의 환호를 즐기듯 쳐다보았다. 한참을 뜸을 들이며 마이크를 들었다.


“오늘의 인기상은 수의학과, 원지우!”


‘해빵이’라는 피켓을 들고 있는 곳에서 함성이 터졌다. 그녀는 반달 웃음을 지으며 무대로 뛰어 올라갔다. 트로피와 상금 30만 원을 받아들었다. 그녀는 배꼽이 다 보일 정도로 손을 위로 뻗쳐 트로피를 흔들었다. 개해빵 동아리 아이들에게 그걸 보여주면서 기쁨을 만끽했다.


뒤이어 동상, 은상, 금상을 시상한 사회자는 마지막 대상 발표만을 남겨두고 있었다. 사회자는 3분 이상 뜸을 들이더니 드디어 발표할 모양이었다.


“올해로 2회째인 대국대 노래경연대회 대상은.”


다들 조용히 앞을 주시하고 있었다.


“대상은 바로바로.”

“수의학과 여신, 원지우.”


여기저기서 함성이 들렸다.


“원지우 양, 축하합니다. 무대로 나와주세요.”


대상에 그녀 이름이 호명되자, 세종은 지우를 쳐다보았다. 그녀는 얼떨떨한 표정이었다. 무대로 올라가라는 동아리 회원들의 부추김에 지우는 덮어쓰고 있던 핑크빛 개해빵 로고가 박힌 담요를 손에 쥐고 무대로 뛰어 올라갔다. 트로피와 상금 100만 원을 받아든 그녀의 눈에 눈물이 글썽였다. 사회자가 그녀에게 마이크를 넘겨주었다.


“소감 한마디 하시죠.”

“유기견 보살피는 일에 소중히 쓰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지우는 담요를 여러 번 흔들면서 감사의 퍼포먼스를 했다. 그리곤 어딘가를 향해 담요를 던졌다. 그 담요를 어떤 남자가 뒤집어썼다. 지우는 그 남자 쪽으로 해맑게 달려갔다. 그를 와락 끌어안았다. 세종은 그를 주목했다.


‘무슨 사이지? 설마 남자친구가 있었어?’


얼굴을 드러낸 그 남자는 지우와 손을 잡고 뱅글뱅글 돌면서 환호했다. 망막에 거꾸로 맺힌 그 남자의 상을 보고 세종이 단번에 누군지 알아챘다. 건드리면 바스락 부셔질 것 같던 건조하고 마른 남자였다.


‘핸섬 가이즈 사장?’


지우와 정우는 함께 어디론가 사라졌다. 세종은 그들 사이가 궁금해 미칠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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