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장욱
세계의 우울이 가까운 곳에 있었다.
세계는 낡은 점퍼를 입고 편의점 앞에 앉아 있었다.
세계는 옷 속에 칼을 품은 채 맥주를 들이켜고 또 세계 씨, 세계 님, 세계야, 세계 이 개새끼야!
억제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나는 묵묵히 일생을 돌아보았지만
오늘은 세계의 우울 곁에 앉아 있었다.
세계는 나에게 우주 공간이었다가 국가였다가 보험공단
또는 회사 가족 친구였다가 드디어
모르는 사람이었는데
그러니까 세계에는 세계지도도 있고 세계일보도 있고 세계사라는 출판사도 있지만 아아
세카이계에서는 무슨 일이
세계는 세계의 우울을 뚫고 기어이
식칼을 꺼내 들었다.
누구든 들으라는 듯 칼끝을 노려보며 중얼거렸다.
정부는! 회사는! 가족은! 그리고
내 곁에 앉아 있는 바로 너는!
세계의 우울과 함께 나는 마침내
적대감과 사랑에 대해
깊이 생각하였다.
낡은 점퍼를 입고
식칼을 든 채 마침내
편의점 앞에 앉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