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밀린 미드를 몰아보며 봉지과자를 먹었다. 몇 개월에 불과하지만 짧은 휴식시간도 생겼다. 나는 여느 때와 같이 집 주변을 걸으러 나갔고 가끔은 새로 생긴 빵집에 들러 우리가 먹을 빵을 샀다. 아무도 없는 밤거리에 가로등을 새며 걷는 날엔 일부로 맨발에 슬리퍼를 신고 발가락 사이로 스미는 찬 공기를 즐겼다.
다행히 글에 대한 생각은 나지 않았다. 이제라도 새로운 글을 써야 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도 들지 않았다. 오랜 고민에 대한 나의 생각은 여전했다. 아직은 때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 무렵 정신을 빼앗길만한 일도 생겼고 말이다. 나는 오랜 친구와 이별을 맞이했다. 친구가 고인이 됐다거나 하는 얘기는 당연히 아니다. 그저 사람과 사람으로서 오래 쌓아온 인연에 마침표를 찍었다는 말이다.
우리는 꼭 과거에 존재했던 사람들처럼 자주 편지를 주고받았다. 친구는 편지에 대한 남다른 기억이 있었고 그걸 나에게도 남겨주기 위해 자주 편지를 써 쥐어줬다. 여행을 좋아하는 남편과 긴 여행을 떠날 때면 대여섯 장의 편지와 날 위한 작은 선물을 사 오곤 했다. 그러고 보면 녀석에게 받은 게 참 많았다. 졸업식조차 제대로 치르지 못한 날 위해 화려한 꽃다발과 선물을 사 내밀었고 생일을 잘 챙기지도 못하는 걸 알고 레스토랑을 예약해 함께 테이블 너머에 앉길 자처했다. 자신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 스테이크를 시키고 조각케이크를 따로 준비하며 겨울에도 좋은 기억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하곤 했다.
내가 생일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는 걸 녀석은 잘 알았다. 그래서 녀석과 함께 일 땐 유난히 과분한 생일을 보낼 수 있었다. 또 우리는 서로를 너무 잘 알았다. 숟가락 젓가락 개수는 물론이고 모든 가족들이 우리에 대해 알았다. 나는 유난히 살구를 좋아하는 녀석을 위해 온 동네를 뛰어다니며 아직 여물지 않은 살구를 사 내밀었고 외할머니가 담근 마지막 양파김치를 친구의 집으로 보냈다.
언젠가 녀석에게 물었다. 어째서 많은 과일 중에 살구를 가장 좋아하느냐고. 그러자 녀석은 이렇게 말했다.
'이건 정말 아무 맛도 안나거든. 그래서 좋아.'
사람들은 잘 이해할 수 없는 맛. 새콤하지도 달콤하지도 않은 무맛의 과일이라서 좋다는 말에 나는 두 눈을 치켜떴고 녀석은 그런 날 보며 푸흐-하고 웃었다. 우리는 쌍둥이는 아니었지만 서로에 대해서는 뭐든 알았다. 치매에 걸린 친구의 어머니가 갑자기 사라졌을 땐 온 신경이 곤두서심장이 쿵쾅거렸고 회사에서 받은 스트레스로 녀석의 위장에 구멍이 났을 땐 내 명치가 오래아렸다. 구토가 습관이 된 녀석은 오랜 우울증이 있었고 드물게 자살 충동에 시달렸다. 수면 유도제가 없으면 쉽게 잠이 들지 못하는 녀석을 보면서 곁에서 밤을 새운 날도 있었다. 손목에 가늘게 간 몇 개의 상흔을 보며 소름이 돋기는커녕속이 진탕날만큼 슬펐다는 것을 녀석이 몰랐어도 상관없었다. 어차피 우리는 떨어져 있어도 서로의 마음을 쉽게 짐작했다.
어느새 서랍하나를 채우고도 남을 만큼 주고받은 편지와 선물들을 보면서 우리가 함께 지나온 시간들이 길게 스쳤다. 일부로 오래 묵은 편지들을 꺼내 하나씩 읽어 내려갔다. 그러고 보면 우리가 서로에게 날을 세우기 시작한 뒤로 너는 내게 지난 편지들을 꺼내 읽었다고 말하기도 했는데 그땐 그 말의 의미를 미처 깨닫지 못했다. 어쩌면 네가 나보다 먼저 이별을 준비했을지도 모르는데.
알록달록한 낡은 편지들을 읽으면서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이제는 돌이킬 수 없는 인연에 대한 인사가 얼마나 가슴 아픈 것인지도 그때 깨달았다. 오래 돌아 선 것을 곱씹자 그땐 미처 보지 못했던 것들이 사방에서 쏟아졌다. 두 눈이 퉁퉁 붓도록 오래 울려 퍼진울음소리가 방문을 넘어서자 옆에 있던 작은 쓰레기봉투가 단단해졌고 말이다. 나는 녀석에게 받은 선물들 중에 단 한 가지만 빼고 모두 쓰레기봉투에 넣었다. 물론 편지도 함께 버렸다. 유난한 일이지만 이렇게까지 하지 않으면 녀석을 내 삶에서 덜어낼 자신이 없었다.
아마 녀석은 나와 반대로 모든 것을 모아뒀을 거다. 그러니 나는 반대로 갈 생각이었다. 너는 늘 쌓아두고 나는 늘 버린다. 우리는 원래 그렇게 같고 또 다르니까.
녀석의 어머니가 결국 떠나셨다는 말을 들었을 땐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부조금을 보낼 생각을 했다. 그리고 보냈다. 그 무렵 우리는 근 일 년이 넘게 연락을 주고받지 않았다. 나는 일부로 녀석에게 연락을 하지 않았고 녀석도 그랬다. 그러던 어느 날 날아온 장문의 메시지에 나는 주저 없이 답장을 보냈었다. 여전히 너에게 자존심따위는 세우고 있지 않았다.
녀석에게 어머니가 어떤 의미인 줄 누구보다 잘 알았다. 세상에 어떤 어머니는 엄마이기보다 자식처럼 보살핌을 받다 떠나기도 한다. 녀석에게는 엄마가 부모이자 또 다른 자식이었다. 그러니 엄마가 떠났다는 건 부모와 자식을 모두 잃었다는 뜻이기도 했다. 나는 아무말없이 멀리 떨어져있을 녀석을 짐작했다. 담담하게 메시지를 주고받았지만 정신없이 헝클어져 있을 속을 이해했다. 그런데 우습게도 조만간 밥이나 먹자는 말만 주고받고 말았다. 우리 사이에 이상한 거리가 생긴 게 느껴졌다. 나는 또 이상하게 그런 녀석에 서운했다.
지금도 가끔씩 생각한다. 그때 내가 다른 말을 했다면 우리가 조금 다른 모습으로라도 함께 할 수 있었을까. 어쩌면 좀 더 길게 남들이 보면 유난이라고 할 만큼 더 길게 친구로 남을 수 있었을까. 이미 예정됐다고 생각한 결과를 바꿀 수 있었을까.
어떤 날은 잠자리에 누워 서늘한 기운만 감도는 장례식장에서 까만 상복을 입고 앉아 있을 널 떠올렸다. 다정하고 착한 남편이 잠든 밤 거실 구석 자리에서 무릎을 껴앉고 멀리 해가 떠오르는 곳을 보고 있을 너를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