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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아 Oct 18. 2024

10. 침잠(2)

시즌1

결과는 생각보다 금방 나왔다. 



수상자 명단에 내 이름이 없는 걸 보자 그나마 설레었던 기분이 서늘하게 식었다. 솔직히 공모전에 떨어진 횟수를 모두 세는 무의미한 짓을 하고 싶진 않지만 그렇다고 탈락이 익숙해지는 건 또 아니다. 부족했어도 기대를 가질 수 있고 적어도 작품을 제출할 때는 세상에서 내 글이 가장 최고라고 스스로 주문을 건다. 그래야 그나마 초초한 기분과 무한한 기다림의 시간을 견딜 수 있다. 나라도 나를 응원해야 숨 쉴 수 있다.


일 년이라는 시간 동안 많은 것을 비워냈다고 생각했는데 아직 부족했구나 하는 생각만 계속 맴돌아 불쑥 화가 치밀었다. 난데없이 짜증이 솟구쳐 거칠게 노트북을 닫아버리고 입을 꾹 다물었다. 아직도 화가 나면 말이 급격하게 줄었다. 속을 달래려 일부로 차가운 커피를 사 마시고는 가게 문을 열었다. 나는 그때도 동네에 이름 없는 가게 점원으로 살았다. 단골손님들은 하루종일 일하는 내가 당연히 사장인 줄 알고 쉴 새 없이 말을 걸었다. 나는 그럼 넉살 좋게 웃으며 사람들을 상대했다. 그러고 보면 학생 때부터 지금까지 일을 하면 어디서든 사장님이세요?라는 말을 들었다. 그래도 그 말이 좋았던 적은 없었다.


공모전에 떨어지고 나자 더 본격적으로 마음을 움츠렸다. 출간과 흥행이 별개인 것처럼 수상은 또 다른 문제라는 게 웃펐다. 다시 언제 글을 썼느냐는 것처럼 완벽하게 잊으려 노력했다. 이번엔 어떤 공모전도 나가지 않으리라 굳게 마음먹기도 했다. 내 안엔 여전히 선명한 장벽들이 새겨져 있는 거 같았다. 그래. 마음껏 버려보자. 마음을 커다란 항아리라고 생각하고 완벽하게 뒤집어보자. 필요하다면 항아리를 깨도 좋다. 나는 그렇게 다짐했다. 


일부로 일을 만들었다. 10평 남짓한 가게에서 정신없이 움직이며 물건을 진열하고 청소를 했다. 손님이 오면 호들갑을 떨며 말을 걸고 시답지 않은 농담을 주고받았다. 식사시간은 대중이 없어 손님이 좀 줄어들면 느지막이 도시락을 꺼내 먹었다. 그 무렵 내 도시락 메뉴는 보통 김치볶음밥이었다. 나이 많은 자식도 자식이라고 엄마는 아침마다 팬에 밥을 볶았다. 굳이 볶음밥이 메뉴가 된 건 도시락통을 여러 개 들고 다니기 싫어했던 나의 의지가 컸다. 사 먹기도 여건이 안 됐고 말이다. 한창 바쁘게 일을 하다 식은 도시락을 꺼내 앉았다. 텅 빈 가게를 바라보며 고추기름이 밴 볶음밥을 한 입 크게 떠먹으니 이상하게 웃음이 났다. 뻔히 아는 맛인데 이제는 이만한 맛이 없다는 걸 잘 알았다. 


나도 나이를 먹었는지 식은 도시락을 꺼낼 때마다 엄마 생각이 났다. 매일 아침 부엌을 서성이던 뒷모습도 늘 똑같은 된장찌개라고 투정을 부렸던 나도 떠올랐다. 엄마의 밥은 참 웃기다. 이상하게 먹으면 먹을수록 속을 채우고 하루종일 땀냄새를 풍기며 분주했던 모든 시간들을 가만히 눌러줬다. 식은 김치볶음밥을 한 숟가락씩 떠 넘길 때마다 배도 마음도 찼다. 이 채움이 아니었다면 낮도 밤도 유난히 길었을 거다. 


우리 둘만 아는 추억에 자꾸 웃음이 났다. 어느새 텅 빈 도시락을 보며 식은 커피를 마셨다. 익숙한 탄내가 코를 자극하자 자연스레 지난 시간을 더듬게 됐다. 사람 하나 없는 창 밖을 바라보며 어쩌면 가족이라는 것은 서로 같아지기 위해서 사는 것이 아니라 퍼즐처럼 서로 다른 부분을 채워주기 위해서 사는 게 아닐까 싶었다.

  

나는 지금까지 무명의 시간을 홀로 걸었다고 생각했다. 날이 새도록 나 혼자 이 모든 외로움과 괴로움을 지고 걸었다고 믿었다. 그러나 정말 그런가. 우습게도 모든 것을 멈추자 내가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이 깨달아졌다. 줄곧 응원을 받고 또 받으면서도 아무것도 받지 못했다고 생각한 것은 무엇 때문이었을 까 괜히 부끄러워졌다. 


그래서 그랬나. 일을 하고 돌아올 때면 오래전 아빠가 그랬던 것처럼 가방을 채워 집에 돌아왔다. 어느 날은 캐러멜 땅콩을 들고 또 어느 날은 옛날 통닭을 사 들고 집에 들어와 내밀었다. 그럼 우리는 식탁에 마주 앉아 이런저런 얘기를 하며 간식을 나눠먹었다. 물론 늘 도란도란 듣기 좋은 말만 한 건 아니다. 가끔은 슬프고 우울한 대화도 나눴다. 간간이 웃었고 습관처럼 화를 낸 적도 많았다. 꿈에 그린 그림 같은 시간은 아니라는 뜻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모든 시간들이 한껏 기운 내 시간들을 지탱했다. 



꿈의 무게에 질식할 것 같았던 내게 한 줌의 숨이 됐다는 뜻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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