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한국인이에요, 공장 알바

국적을 잃고 80만 원을 얻다

by chacha

대학 생활의 마침표는 역시 졸업 여행 아니겠는가. 나도 남들처럼 그럴듯한 여행 한번 가보고 싶었다. 과거 워킹 홀리데이 시절, 돈이 없어 제대로 된 여행을 못 해 본 나는 이번에야말로 정복하고 싶었다.


내가 총대를 메고 대학 동기와 후배, 심지어 이들과 아무런 접점도 없는 내 친구까 지 모아 '북규슈 원정대'를 꾸렸다.

'졸업'이라는 숭고한 명분 아래, 그들은 얼렁뚱땅 한 팀이 되었다.


여행 계획형 인간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극강의 P 성향인 내가 총무를 맡아 정리하기 시작하였아.

밤새 인터넷을 뒤져 북규슈 4박 5일 코스를 짜고, 숙소 는 에어비앤비, 식사는 편의점과 현지 마트 조합으로 예산을 극한까지 쥐어짰다.

하지만 모니터에 찍힌 최종 예산은 1인당 80만 원.

한 명은 저축해 놓은 돈이 있었고 다른 두 명은 부모님이 도와주신다고 하였다.

안타깝게도 나는 저축해 놓은 돈도 여유 있는 부모님 도 없었다.


한 달 벌어 한 달 사는 내게 80만 원은 거금이었다.

하지만 여기서 포기할 '알바머신'이 아니었다.

나는 곧장 단기 아르바이트를 찾아 나섰고, '유리 공장 검품'이라는 낯선 구인 광고를 발견했다.

"하루만 일해도 오케이!"


이 파격적인 문구에 홀려 지원 버튼을 누르자, 그날 저녁 바로 전화가 왔다.

"내일부터 나올 수 있어요?"

면접은 그게 끝이었다.

시급은 최저였지만, 밥이 공짜였고 집 근처까지 셔틀버스까지 운행했다.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2주만 버티면 규슈행 비행기에 오를 수 있었다.

그렇게 나의 화려한 공장 데뷔가 막을 올렸다.


다음 날, 내가 도착한 곳은 맥주병과 에너지 드링크 병을 만드는 거대한 공장이었다.

덜컹 거리는 셔틀버스에서 내리자, 후끈한 열기와 쇠 부딪히는 소음, 그리고 어딘가 쇠 비린내가 섞인 낯선 공기가 나를 덮쳤다.

온통 갈색 병뿐이었다.

내게 주어진 임무는 두 가지였다.


첫 번째는 쉴 새 없이 쏟아져 나오는 갈색 병들을 정신없이 상자에 쓸어 담는 일.

컨베이어 벨트의 속도는 인정사정없어서, 잠깐이라도 한눈을 팔면 병들이 저만치 달아나 버렸다.

처음엔 허둥댔지만,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 했던가.

며칠 만에 나는 벨트의 속도에 맞춰 영혼 없이 몸을 흔드는 갈색병 처리 로봇이 될 수 있었다.


두 번째 일은 훨씬 정적이었다.

새카만 작은 공간에서, 남자 작업자들이 가져다준 병을 불빛에 비춰보며 흠집을 찾아내는 일이었다.

흠집 난 불량품에 노란색 테이프를 붙여 따로 모아두면 임무 완료.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수백 개의 병들이 열을 맞춰 늘어선 모습은 꽤나 아름다웠다.


하지만 공장은 소통이 불가능한 고독의 섬이었다.

쉴새 없이 부딪히는 병 소리와 기계 소음으로 귀가 먹먹해서, 바로 옆 사람과도 대화할 수 없었다.

모든 소통은 손짓과 눈짓, 혹은 필사적인 입 모양으로만 이루어졌다.

시간은 더디게 흘렀고, 일은 어렵지 않았지만 지독하게 외로웠다.


가장 슬픈 건, 아무도 내게 말을 걸어주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밥 먹을 때도, 좁은 휴게실에서도 모두가 나를 흘깃 쳐다볼 뿐, 이내 자기들끼리 손짓으로 대화했다.

혹시 이게 말로만 듣던 텃세나 직장 내 따돌림인가? '내가 뭘 잘못했지?', '인사를 제대로 안 했나?' 오만가지 생각이 머릿 속을 헤집었다.


2주간의 근무 마지막 날, 나는 용기를 내어 근처 이모에게 물었다.

"혹시... 제가 뭐 잘못한 거라도 있나요?"

내 질문에 이모님이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어머나! 아가씨, 한국말 할 줄 아네?"


알고 보니 이유는 기가 막혔다.

소장님이 내 이름을 등록할 때, 친근함의 표시로 성 을 떼고 적었던 것이다.

내 특이한 이름을 본 어머님들은 나를 당연히 '중국에서 온 노동자'라고 생각하셨던 거다.

어머님들은 중국인(으로 오해 받은) 나에게 말을 걸고 싶어도 걸 수가 없었던 것이다.

어쩐지 식당을 가리키며 열심히 손짓 하시던 어머님들이 생각이 났다.


그렇게 나는 2주 동안 국적을 잃은 채, 무언의 작업과 고독한 식사를 견뎌내며, 졸업 여행 경비를 벌었다.

그 외롭게 모은 80만 원으로 떠난 규슈 4박 5일은, 정말이지 눈물 나게 행복했다.

공장에서 느꼈던 고독의 무게만큼, 친구들과 함께 웃고 떠드는 시간은 소중하고 값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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