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력적인 아빠와 헤어진 엄마는 나와 내 동생을 이모한테 맡겼다.
이모는 나와 내 동생, 그리고 본인의 자식 포함 총 네명을 키웠다. 내가 기억하는이모의 이십대의 모습은 어린 사촌동생을 업고 부엌에서 무언가를 만드는 모습이었다. 이모는 요리가 익는 동안 부엌 뒤편에 나를 앉혀두고 시계를 보는 법과 구구단을, 태양계의 순서를 알려주고, 뒤주에서 죽은 사도세자의 이야기를 들려줬다.
우리 네 명은 이모 덕에 호기심 많고 감수성이 높은 청소년으로 자랐다.
이모는 우리를 가르치면서, 계속 볶고 삶고 지졌다.
항상 배고픈 4명의 아이들에게 이모는 오므라이스를 자주해줬다.
온갖 야채를 볶아서 밥과 볶아서 계란 지단을 만든 다음 밥 위에 올렸다. 우리는 오므라이스가 저녁으로 나오는 날에는 이모에게 케찹으로 내 이름을 써달라고, 혹은 하트를 그려달라고 졸라댔다.
이모가 해준 오므라이스는 우리를 언제나 행복하게 만들어줬다.
성인이 된 지금 생각해보면 오므라이스는 어쩌면 한번에 쉽게 야채가 들어간 영양가 있는 음식을 아이들에게 먹이기 위한 적절한 음식이라서 자주 해주지 않았나 추측할수 있을 것 같다.
나는 오므라이스가 최애 음식 중 하나가 되었다. 김밥천국과 같은 분식집에서도 나는 항상 오므라이스를 먹는다. 돈까스 소스 대신 캐첩을 뿌려달라고, 요구하는 귀찮은 손님이 되기도 한다. 고급 음식점에서 파는 오므라이스도 먹어봤지만 김밥천국식 저렴한 오므라이스가 최고다.
남편이 남자친구이던 시절 처음으로 이 오므라이스를 하고 남편이 좋아하는 캐릭터를 캐첩으로 그려준 날, 나는 이모가 우리게 해준 요리들을 나열했다.
밥을 먹고 나서도 출출할 땐 오뚜기에서 나온 핫케이크를 열장을 연속으로 만들었고, 수제비를 할 땐 꼭 밀가루를 약간 남겨서 우리 네명에게 물감과 함께 놀라고 던져줬다, 우린 그걸 주물럭거리면서 뭔가를 만들며 놀았다. 생일이면 없는 형편임에도 친구들을 불러 이모는 요리를 해주고 피자를 시켜줬다. 그 말 안듣는 아이들 넷을 데리고 경복궁이며, 교보문구며 데려간 것들. 단순히 이모가 해준 요리를 떠올렸을 뿐인데, 이모가 해준 요리 보다 더 깊은 사랑이 저절로 떠오른다.
남편은 내 이야기를 듣다가, 어릴 때 먹었던 피자빵 이야기를 해줬다. 주말 아침 느즈막히 일어나면 아침 겸 점심으로 먹었다고 했다. 식빵 위에 토마토 소스를 올려 햄과 함께 전자레인지에 돌려서 동생과 하나씩 먹었다는 어머님 표 피자빵. 그 시절에도 그런 피자빵을 만들어주셨다는 것이 재밌어서 신기해했다.
그 다음 만났을 때 남편은 접시에 피자빵을 만들어왔다. 그걸 만들고, 운전해서 왔을 걸 생각하니 웃음이 났다. 어쩌면 그걸 전자레인지를 돌리는 순간 어머님에게 갑자기 뭐하는 거냐고 등짝을 맞았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남편표 아니 남편의 어머니표 피자빵을 맛있게 먹었다.
그리고 우리는 결혼을 했다.
나는 이모가 해준 오므라이스를 자주 해준다. 오므라이스는 꼭 위에 캐첩으로 귀여운 그림을 그려줘야한다. 남편도 가끔 어릴 때 어머니가 해주셨던 음식을 나에게 해준다.
오므라이스와 피자빵을 먹고 무럭무럭 자라난 우리는 어느덧 성인이 되어 서로에게 음식이라는 유산을 나눈다.
나는 그 사랑이 담긴 음식이 좋다. 우리에게 그건 그건 삼대 째 내려오는 어떤 요리의 비법이나, 100시간을 우려야하는 손이 많이 가는 요리보다 더 귀하다.
언젠간 내 아이가 생긴다면, 혹은 내가 사랑하는 이가 더 많아진다면 나는 하트가 그려진 오므라이스를 자주 자주 만들어줄 것이다.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오므라이스라는 유산을 물려준 이모에 대한 보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