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버나 유튜브에서 검색했을 때 나오는 우울증 극복법을 그대로 따라했다.
일기를 썼고 운동을 했다. 취미 생활로 뜨개질을 시작했다. 회사에서 숨 쉬기 어려울 땐 호흡법도 찾아서 호흡했다. 약도 거르지 않았다. 그런데도 나는 여전히 내가 너무 싫었고, 끔찍했다.
이해가 안 갔다. 이렇게 열심히 살고 있는데 왜 안 낫지? 약도 먹고 일기도 쓰잖아.
설마 나도 남들처럼 10년씩 우울증과 함께 살아야하는 걸까? 살기 싫었다. 너무 지겨워. 이렇게 힘든 감정으로 살아가야한다면, 왜 살아야할까? 엉망진창이었다.
하루의 시작이 끔찍하게 싫었다. 하루를 끝내는 것도 무서웠다. 내 꿈에서는 나를 압박하고 걱정하는 것들이 나와서 항상 잠을 설치게 만들었다.
다 놓아버릴까 싶은 감정은 매일 같이 쳇바퀴처럼 돌아가는 일상에서 쉽게 자리잡지 못했다.
포기하고 싶을 때 쯤 나는 회사에 가야했고 PT를 가야했고 강아지와 산책을 가야했다.
인터넷에서 나온 정보들은 아주 틀린 것은 아니었다. 호르몬 변화고 뭐고는 잘 모르겠고, 내가 심어놓은 지뢰 같은 일정들은 나의 무기력을 오래 유지하게 만들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오늘도 나를 위한 식사를 만들어야했다.
굶을까의 선택지는 이제는 없었다. 시간이 있는 한 나는 나를 위한 식사를 해야했다.
너무 피곤하고 졸려서 집에 가는 내내 뭐 먹을지 생각도 못했다. 냉장고를 열어서 쓸만한 재료를 다 꺼내본다. 토마토, 계란, 치즈, 상추, 무화과, 그릭요거트, 닭가슴살. 등등
뭘 만들어야할지 모를 땐 오답노트 샌드위치를 만들어야한다.
그게 무슨 말이냐하면 이미 실패해본 재료들을 다 빼고 성공할만한 재료들만 넣어서 만드는 샌드위치다.
몇 년 전 다이어트를 할 때 샌드위치가 탄단지가 완벽한 식사라는 것을 알고 자주 해먹었던 적이 있었다.
그때부터 나는 아주 많은 재료가 들어간 높은 탑과 같은 샌드위치를 곧잘 싸먹었다.
통밀빵을 마른 후라이팬에 굽는다. 따뜻한 빵 위로 바로 치즈를 올리면, 치즈가 살짝 녹고 그 위에 올라갈 야채에서 나오는 물 때문에 빵이 쉽게 젖지 않는다.
그 위에 올리는 건 오답노트에 적혀있는데로다. 실패할 수 없는 것들도 있고 새로 도전해보는 것도 있다.
오늘은 무화과를 도전해본다.
씨겨자를 바르고, 그릭요거트를 올린 다음에 무화과를 잘라서 숭덩숭덩 그릭요거트에 숨긴다.
냉장고에서 다 죽어가는 닭가슴살 햄도 그리고 청상추 10장을 쌓아 올려서, 비틀거리는 샌드위치 탑을 마무리한다.
쌓는 것도 재료 고르는 것도 생각만큼 쉽지는 않다.
이렇게 두꺼운 샌드위치는 혼자는 못 먹는다. 반으로 썰어서 남편과 나눠 먹는다.
뭐든 맛있어하는 남편은 오답노트 샌드위치는 가끔 읍. 할때가 있다.
단 무화과와 새콤한 그릭요거트와 잘어울린다. 남편은 표정이 좋지 않다. 아무래도 이번 샌드위치는 오답노트에 적어야할 것 같다. 점수는 70점 정도인 것 같다.
나의 우울감 또한 오답노트가 있다. 틀린 게 있었으면, 앞으로 그 틀린 걸 고쳐나갈 일만 있잖아? 장원영식 사고방식처럼 말이다.
생각해보면 나는 실수가 많아 푹죽은 팀원들에게도 항상 틀린 게 많았으니 그만큼 성공할 일이 더 많아졌다는 뜻이니까 괜찮을거라고 격려해준 적도 있었다. 그것 참 생각보다 말이 된다.
아아, 오답노트에 적힌 걸 알려주자면 무기력하고 우울할 때, 힘차게 강아지와 산책을 나가보거나 런닝머신을 미친듯이 뛴다. 그럴 의욕 조차 없을 때는 좋아하는 아이돌 노래를 틀어놓고 따라 부른다. 그러다 보면 나도 모르게 엉덩이도 들썩거린다.
반면에 절대 해선 안되는 것이 있다. 나와 같이 우울, 불안장애가 있는 사람의 책이나 수기는 읽지 않는다. 더 우울해진다. 릴스나 숏츠를 보지 않는다. 술을 먹지 않는다.
내 병이 생각보다 빠르게 호전되지 않고 일주일은 괜찮다가 다시 일주일은 지옥같을 때가 있다.
그럴 때 나는 나의 오답노트를 적고 있다고 생각한다. 시도해보고, 틀려봐야 생기는 그 기록들이 말이다.
틀리는 것이 많아지만 앞으로 많이 더 좋아질 일이 생길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의 샌드위치도 더 맛있어질 일만 남았다.
(그나저나 오답노트는 틀릴 때만 적는건데, 나는 맞는 것도 적는다. 이상하네)
왼족은 파인애플크래미 샌드위치, 오른쪽은 계란듬뿍샌드위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