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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음감 Mar 04. 2021

쇼팽이 바이킹을 만든다고?

5와 7의 마법

내가 좋아하는, 무려 친하다고 생각하는 작가님이 있다. 번역은 셀 수 없이 많이 했고 작년엔 본인 책도 냈다. 첫 책이라는 게 믿기지 않을 만큼 세련이 철철 넘쳤다지. 한마디로 사기캐 작가다.


어제 그 사기 작가님이 글을 썼다. 일상 '루틴'이라는 단어 대신 일상 '리듬'이라는 말로 바꾸면 무너진 일상이 조금 더 가벼워진다고. (물론 이렇게 매력 없이 쓰지 않았다. 한 줄로 줄이다 보니 이렇다)


나야말로 일상 루틴이 급하다. 애들이 학교 가는 건 반갑지만 그러려면 나도 7시 반엔 일어나야 한다. 미국에 가본 적도 없으면서 미국 시차가 편한 나는 새벽 3시 취침, 아침 10시 기상이 제일 좋은데 갑자기 7시 반이 되니 죽겠는 거라.


내 맘대로 잠을 못 자면 과자가 그렇게 땡긴다. 무슨 호르몬의 영향이라지. 새우깡이나 새우깡 등을 입천장 까질 때까지 차곡차곡 밀어넣고 재빠르게 낮잠으로 빠지면 일상 루틴 따위.




리듬...이라는 단어에 눈이 번쩍 뜨이면서 20년 전의 쇼팽이 소환됐다. 20년 전, 나는 음대생이었다. 쇼팽의 루바토를 흠모했다. 루바토란 일정한 리듬 안에서 리듬을 갖고 노는 거다. 연 날릴 때 연을 한 번 띄우면 실을 팽팽히 유지하면서(=리듬을 유지하면서) 풀고 감고 하지 않는가. 비슷하다.


실 풀기가 쇼팽 특유의 녹아드는 듯한 멜로디를 만나면 실을 풀고 땡기는 게 아니라 심장을 들었다 놨다 하는 지경이 된다. 바이킹 끝자리에서 하강할 때 내장이 쑤욱 내려가는 그거, 쇼팽은 그렇게 음악으로 바이킹을 만든다. 그의 음악이 꾸준히 연주되는 이유다.


일정한 리듬에 루바토를 얹으면 일상 연주가 되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런데이(달리기 앱)를 켰다. 일정한 리듬으로 뛰진 못했다. 호흡에 따라 더 뛰기도, 덜 뛰기도 했다. 달리기 루바토라고 치자.


그랬더니 40분을 쉬지 않고 뛰는데 드디어 성공했다!!! 5킬로를 페이스 7.2로 뛰었다. (엊그제 페이스는 8 후반이었다. 페이스는 숫자가 낮을수록 빠르다)


그러고 나서 기운이 남아돌아 집에서 태양 경배 자세를 10번 했다. 뛰고 와서 열이 남았을 때 태양 경배를 해보니 그 전의 태양 경배는 '경배'까지 못 가고 그냥 '인사'였음을 알겠다. 경배가 되면 다리가 훨씬 시원하다!!


대체 이 언니는 루틴을 리듬으로 바꿀 생각을 어찌했을까. 나는 또 그걸 아무 생각 없이 따라 할 생각을 어찌했을까. 그 와중에 쇼팽을 불러와 혼자 기뻐하며 셀프 아드레날린을 생성할 생각은 또 어찌했을까.


맞다. 5와 7에 기뻐서, 사기 작가님이 나 뛰라고 일부러 알려준 것도 아닌데 혼자 감격해서 자화자찬 중이다. 5킬로 페이스 7이 결코 잘 뛰는 기록이 아닌데도 내겐 마법 같은 숫자다.


이 자화자찬이 오래가길. 쇼팽의 우아한 루바토가 흐르는 리듬이 내 일상에 있길. 내일 아침에는 7시 반에 일어나면서 한숨 쉬지 않기를. 이 리듬을 잘 타서 사기 작가님처럼 나도 언젠가 10킬로를 돌파하기를. 돌파하고 먹는 새우깡은 더 맛있겠지!


사기 작가님의 원문은 여기


이거 쓰고 인스타에 우려먹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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