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양사 #성장일기
아이가 어린이집을 다니면서는 시간에 여유가 좀 생겼다. 아이를 낳으면서 자연스럽게 경력이 단절되고 아이 키울 때는 정신없이 살았는데, 이제는 일해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새 일을 얻고자 면접을 보러 갔더니, 예전에 같이 일했던 H 본부사장 차린 회사였다. 좀 찝찝한 마음이었지만 조건과 급여가 마음에 들어서 출근을 하기로 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P 회장이 실세 소유주였다. 오랜만에 다시 일을 할 수 있다는 기쁨에, 회사를 선택할 때신중하지 못했다.
이 회사엔 H 본부장 말고도 P 회장의 정부가 있었다.
그녀는 P 회장의 와이프라는 것을 대단한 ‘빽’으로 여기며 직원들(영양사 및 조리원)을 함부로 대했다.
한번은 주말에 이런일이 있었다.친척 결혼식에 참석하고 있었을 때 정부에게서 전화가 왔다.
”다음 주에 오는 파출 여사님 급여 많이 주지 말고 민희 조리장 급여 줄이세요. “
바쁜 내용도 아닌데 주말 일요일 오후에 전화해서 전할 말은 아닌 거 같았다.내가 답했다.
”월요일 출근할 때 다시 전화 주세요.“
”주말에 잠깐 전화하는 것도 안됩니까? "
점점 고성이 오가는 말다툼을 하게 되었다.
P 회장은 다른 곳에 투자받아서 회사를 운영한 것이었다. 그런데 운영 결과가 좋지 못하니 회사는 경영난에 허덕이게 되었다. 결국에는 가장 많이 투자하던 S 회사에서 우리 회사를 인수하게 되었다.
정부와 새로운 S 회장이 내가 근무하고 있는 업장에 오게 되었다. 하필 그날 음식은 모두 솔드아웃된 상황이었다. 새로운 S 회장은 화를 내며 말했다.
”대접할 음식이 없으면 영양사가 나가서 김밥이라도 사 와야지. 쯧쯧.“
또 며칠 후에, S회장은 업장 관리자를 만나 내가 시간 맞춰 출퇴근하는지 알고 싶다고 정문 CCTV를 보여 달라고 했다. 나를 신뢰하지 않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내 발로 나가 그들이 원하는 걸 이뤄주기는 싫었다. 이를 악물며 참았다.
얼마 뒤,H 본부장이 커피숍에서 만나자고 했다.그가 A4용지 몇장을 내밀었다. 직원해고 통보서와 권고사직서 였다. 그 A4용지에 적힌 해고의 이유는 이랬다.
1. 본인이 사직하겠다는 의사를 표현함
2. 고객사 응대 불성실
3. 직원들에게 회사 및 직원들의 험담을 하고 다녀 다른 직원들이 사기를 떨어뜨림
(나머지는 생략)
드라마에서 보는 것처럼 박박 찢었어야 했는데 억울하고 분해서 손이 덜덜 떨렸다. 분한 게 고작 눈물로 나왔다.
“내가 이 회사에서 뭘 그렇게 잘못했나요? 제가 왜 이런 취급을 받아야 하죠? 새로운 S 회장한테 물어볼 거예요”
그렇게 말하며 일어서는데, H 본부장은 내 팔을 잡으며 말했다.
“제발 내 얼굴 봐서 참아줘...”
그 일로 끝난 줄 알았는데 집으로 내용증명이 날아왔다. 인수인계를 제대로 하라는 내용이었다.
'만약 이행하지 않을 경우 귀하의 처신에 대하여 강력히 대응할 것임을 고지하오니 참조하시기 바랍니다.'라고 쓰여 있었다.
내 자리엔 온 영양사는 무슨 죄인가 싶어서 성심성의껏 인수인계해 주었다.
그런데 나중에 안 사실로 목덜미 잡았다.정부가 직원들을 불러 모아 나에 대해 뒷담화를 하라고 했다는 것이었다.
내가 회사를 욕한 게 있는지를 묻고, 만약 그렇다고 말해준다면 승진시켜 주겠다고 했고, 승진에 눈이 먼 직원 몇 명은 없는 말을 지어냈다고...
정부는 내부 직원들로도 부족해 식재 납품 사장에게 내가 정부 욕을 했다고 말해주면 앞으로 당신 회사 물건만 쓰겠다는 조건을 제시했다.식재 납품 사장님은 거짓말할 수 없다고 말해서,그날로 그 회사에서 짤렸다.
이 사실을 알게 되고, 식재 납품 사장님께 전화를 걸었다.
“사장님 왜 제 편에 서주셨어요.전 어차피 그 회사에 안 다니는데 그냥 회사에 납품하시지.”
“하지 않은 말을 하라고 하니깐. 이건 아니지 싶었어요. 돈도 중요하지만 나는 그럴 수 없었어요. 지금은 그들 때문에 상처받았겠지만 다 잊어버려요. 우리 힘내요.”
사장님의 따뜻한 말 덕 뿐에 인류애를 상실하지 않은 것 같다.
한 달 후쯤, 승진했다는 소문의 동료 영양사에게 문자가 왔다.
"같이 아이 키우는 입장에서 거짓말하면 우리 아이 잘못될까 봐, 더 이상 거짓말할 수 없어서 퇴직했어요. 정말 미안합니다.“
나를 위한 사과인지 본인의 양심의 가책에 사과한 것인지 싶어 뒷맛이 씁쓸했다. 게다가 그 회사의 이사라는 사람이 보낸 문자 메시지는 더 가관이었다.
"세상에서 급여를 주는 사람은 훌륭한 사람이라는 것 명심하고 사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