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그리다 문득
오만가지 색깔을 지우고 보면
풍경이 아름다울 때 있다.
수첩에 빽빽한 이름들이
장대비 맞은 글씨처럼 번져버린
흔적도 없이 사라져 갈
사람이 아름다울 때 있다.
세파에 치어 각양각색인
남루 또한 훈장 마냥 눈물겨운
허리굽은 할머니가
벼랑길에 우뚝 선 나무처럼
그렇게 아름다울 때 있다.
가파른 세월이야 지나면 그뿐,
코끝에 감도는
진한 묵향에 두 눈을 감고
비 맞는 나무처럼
가슴 적시는 무심한 손놀림이
그저 아름다울 때 있다.
먹장구름 바람되어, 2023, 화선지에 수묵, 310mmX400m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