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PF 위기가 증권사 책임일까요?
금융감독원은 증권사가 리스크에 대한 철저한 분석 없이 무리하게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을 추진한 책임을 묻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습니다.
자기 책임 원칙하에 유동성 리스크 관리를 잘한 기관과 그렇지 않은 기관에 차이를 둘 수밖에 없다. KDB산업은행 등을 통해 유동성을 공급하는 것은 대주주와 금융사의 자체적인 자구 노력을 전제로 한 것이다. 특정 금융사를 말씀드리지는 못하지만 대원칙을 갖고 진행 중이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 2022.12.21
2022년 12월 21일 ‘사전지정운용제도 현장 안착을 위한 퇴직연금사업자 간담회’에서 한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의 발언은 증권사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습니다. 이복현 원장은 2023년 1월 1일 신년사에서도 자기자본 대비 PF 비중이 높은 일부 중소형 증권사에 대해서는 다양한 조치와 규제를 도입하겠다고 언급했습니다.
* 중소형사들이 자기자본 대비 PF 비중이 높은 이유는 사업 초기 브리지론이 차지하는 비중이 49%로 대형사(37%)에 비해 크기 때문임
부동산 PF, 해외 대체투자 등 고위험 자산 리스크를 집중 점검해 손실흡수 능력을 확충하는 등 선제적 관리에 만전을 기하겠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 2023.01.01
2022년 말 다수의 중소형 증권사가 정리 해고를 하고 임금을 삭감했습니다. 작년 힘든 한 해를 보냈지만 올해의 전망은 작년보다 더 부정적입니다. 부동산 PF가 경제 위기의 최대 뇌관으로 부상하면서 정부가 선제적이고 적극적인 관리를 하고 있습니다.
부동산 PF 사업은 자금을 얼마나 원활하게 마련하느냐에 따라 성공 여부가 갈립니다. 부동산을 준공하기 전까지는 프로젝트에서 수입을 창출할 수 없기 때문에 브릿지, PF론을 통해 이 시기에 발생하는 비용을 안정적으로 마련해야 합니다. 지난 10년 동안 증권사는 개발사업의 조력자 역할을 했습니다. 자금조달 구조를 짜주고, 가장 조달하기 힘든 후순위 대출로 선순위 대출을 받치는 역할을 했습니다. 또한, 개발 사업 초기 시행사에 계약금 대출, 브리지론을 제공했습니다.
국내 부동산 개발사업은 토지매입 단계부터 연쇄적으로 자금조달을 합니다. 토지 잔금을 낼 때 브릿지론, 착공하기 전 본 PF를 거치면서 전단계 대출을 상환합니다. 부동산 시장이 좋으면 연쇄적인 자금조달과 상환이 문제가 없습니다. 그러나, 시장이 하락하게 되면 연쇄적으로 시행사, 건설사, 금융사가 위험해집니다.
금리가 급격히 올라가고 부동산 시장이 얼어붙으면서 많은 금융기관과 기관투자자가 부동산 PF를 비선호하고 있습니다. PF대출이 되지 않으면 브릿지론에 참여한 대출이 장기화되고 대출비용도 늘어나게 됩니다. 현재 브리지론 단계에 있는 많은 개발 사업은 본 PF가 되지 않아 겨우 이자를 내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와 같이 브리지론 단계에 있는 개발사업은 PF대출이 되지 않으면 디폴트에 빠질 수밖에 없습니다.
한국기업평가는 부동산 PF 위기 관련 중소형 증권사의 리스크를 지적했습니다.
PF 우발채무 중 브리지론 비중이 크거나 비금융그룹 증권사의 경우 유동성 대응력 유지에 어려움이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조정유동성비율이 100%를 밑돌거나 근접한 일부 증권사는 모니터링이 필요하다.
* 조정유동성 비율: 유동성 부채와 우발채무를 합한 금액 대비 기존 유동성 자산의 비율
지난 10년 동안 증권사에서 부동산 PF팀은 가장 잘 나가던 부서였습니다. 증권사는 2010년대 중반 이후 무료 수수료 경쟁 심화로 기존 사업방식에 한계를 느꼈고 이에 기업금융(IB) 부문에서 부동산 PF 관련 사업을 확장했습니다. 자본이 부족하고 신용이 없는 시행사가 PF 대출을 받으면 증권사가 자신의 높은 신용도를 활용해 PF 대출 관련 신용보강을 하고 이 과정에서 수수료를 받아 황금알이 낳았습니다. 특히, 중소형사는 대형사보다 상대적으로 취약한 리테일·운용 부문 사업을 만회하고자 공격적으로 부동산 PF 관련 사업을 벌여왔습니다.
그간 금융기관은 주로 시행사가 개발인허가·토지 확보 등 까다로운 인출 선행 조건을 충족해야 PF 자금을 조달해 줬습니다. 그러나, 코로나19 사태 이후 유동성 장세가 펼쳐져 추세가 바뀌었습니다. 부동산 개발사업 투자에 대한 선호도가 높아지자 '자금'을 가진 사람보다 '딜(Deal)'을 가진 사람이 더 중요해진 것입니다. 이에 따라, 토지 계약을 한 시행사가 협상에서 우위를 점하게 되었고 예전보다 비교적 느슨한 조건으로 계약금 대출, 브릿지론 대출이 나가게 되었습니다. 기준 금리, 건축 비용 급상승 등 상황이 급변하고 PF 대출에 대한 비선호도가 커지게 되면서 중소형 증권사는 위기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이 모든 것이 리스크 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한 증권사의 책임?
어느 정도 책임은 있지만 모든 책임을 증권사로 떠넘기는 것은 온당하지 않습니다. 리스크 검토를 제대로 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비판받아 마땅합니다. 하지만, 지난 1년간 누구도 예상할 수 없었던 2가지 변수가 발생했습니다.
건축 비용 급상승
러시아-우크라 전쟁으로 시멘트, 레미콘, 철근콘크리트 등 건설 원자재 가격이 급등했습니다. 주요 건설자재인 레미콘은 ㎥당 7만 1,000원에서 8만 3,000원으로 13.1% 인상되고, 철근 값은 지난해 4월 t 당 70만원에서 1년 만에 110만 원대로 치솟았습니다. 건자재 가격은 전체 공사비의 30~50%를 차지할 만큼 비중이 높아 개발사업의 비용과 수익에도 직결되는 부분입니다.
금융비용 급상승
부동산 개발사업의 특성상 대규모 차입을 통해 사업을 진행해야 합니다. 금융비용이 개발사업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상당합니다. 2022년 2월 미국 연방준비제도의 기준 금리는 0.25% 수준이었습니다. 그 후 1년 동안 금리는 4.5%까지 올라갔습니다. 지난 15년 간 최고 수준이며, 역사적으로 봤을 때도 가장 급격히 금리를 올렸습니다. 2022년 2월, 금리가 이 정도로 빠르게 올라갈지 예측한 사람은 없었습니다.
2023년 1월 현재 PF 대출을 요청하고 있는 많은 개발사업은 2021년 말 또는 2022년 초에 사업이 구상하고 추진되었습니다. 부동산 개발사업은 차입을 많이 하기 때문에 매우 큰 리스크가 존재합니다. 시행사와 증권사는 개발사업이 실패하게 되면 모든 것을 잃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면밀하게 사업수지를 돌립니다. 분석 당시의 건축비와 금융비용을 고려하여 예상 사업이익률이 20% 정도 되면 안전 마진(safety of margin)을 가진 것으로 보고 긍정적으로 사업을 검토합니다. 시행사, 증권사, 건설사의 담당자는 여러 난관을 부딪치며 사업을 추진했습니다. 그러나, 아무도 예상치 못한 변수가 생겼습니다.
러시아-우크라 전쟁이 터져 건축비가 30% 올랐고, 미국 기준금리는 0.5%에서 1년 만에 4.5%가 되었습니다. 개발사업의 큰 비중을 차지하는 건축비와 금융비가 상승하니 예상 사업이익률이 20%에서 한 자릿수로 떨어졌습니다. PF 대출을 고려하는 금융기관 또는 기관투자자 입장에서는 안전 마진이 그만큼 없어진 것이고 사업 매력도가 낮아진 것입니다. 충분히 리스크를 검토했다고 생각했지만, 사업을 추진한 사람은 모든 것을 날릴 위기에 처했습니다. 10개 개발 사업장 중 2~3개가 어려움을 겪을 수는 있습니다. 2021년 말과 2022년에 시작된 대다수의 개발사업이 좌초되고 있습니다. 이 많은 사업장이 다 리스크 관리를 하지 않은 것일까요?
모든 게임에는 규칙이 있고, 이 규칙은 모든 참가자에게 공정해야만 합니다
러시아-우크라 전쟁에 따라 건축비가 올라간 것은 게임의 규칙이 변경되었다고 보긴 힘들 것 같습니다. 하지만, 지난 1년간 미국이 주도한 기준금리 인상은 심판이 게임의 규칙을 자의적으로 변경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미국이 변경한 규칙은 모든 참가자에게 공정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대출이 있는 분들은 어떤 의미인지 공감하실 것입니다.
작년 기준 이자율 3.0%로 1억원 은행 대출이 있으면 월 25만원 이자가 발생했습니다. 부담스럽지 않은 수준입니다. 지금은 대출 금리가 2배 이상 올라 같은 금액의 대출을 갖고 있어도 이자 부담은 2배가 되었습니다.
브릿지론의 대출금은 개발사업에 따라 몇 백억에서 몇 천억입니다. 작년 기준 이자율 5.0%로 500억원 브릿지대출을 받게 되면 월 2억원의 이자가 발생됩니다. 지금은 브릿지론 금리도 2배 이상 올라 월 4억원의 이자를 내야합니다. 네, 맞습니다. 연간이 아닌 월 4억원입니다. 개발 사업은 준공 전까지 수입이 발생하지 않기 때문에 PF론이 되지 않으면 디폴트가 날 수밖에 없습니다.
러시아-우크라 전쟁과 금리가 이렇게 빠르게 상승하는 것을 예측한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이번에 발생한 수많은 부동산 개발사업의 좌초 원인은 리스크 관리가 아닌 전쟁과 급격한 금리 상승이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