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마켓 진열대마다 딸기가 넘쳐난다.
무심코 딸기팩 하나 집어들다가 새삼 혼란스러워진다.
언제부터 겨울딸기가 이토록 자연스러워졌을까
딸기가 덜익은 맛을 냈다면 "참, 제철이 아니지!" 납득했을텐데
그 달콤한 맛은 봄딸기를 통해서만 얻어지는 제철 감각을 무뎌지게 한다.
그러고 보면
때 이른 열매가 그럴싸한 탐스러움과 육즙을 갖는다는 건 슬픈 일인 것 같아
빠른 절기를 온몸으로 받아들이면서 빠르게 익어가다가
느릿느릿 꾸물거려도 기어이 완숙해진 시간이 찾아온단 걸 알아차리게 될 즈음
그때쯤이면 너무 늦어버릴지도 모를.
철든다는 건 이미 철을 리드해간다는 의미가 되었지만
철들지 않은 채로
가슴팍에 딸기씨처럼 빨갛게 박힌 낡은 기억 하나쯤
갖고 가고 싶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