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갑을 훌쩍 넘긴 어느날
김여사는 고향 지인의 전화를 받았다.
지인이 희미해져가는 기억 속의 이름을 꺼냈다.
건강이 악화되어 귀향한 남자가 그녀를 꼭 한 번 보고싶어 한다는 것이다.
그녀는 희미한 기억을 드문드문 짚어가며 병문안하였다.
세월이 흘러 많이 늙었지만 그들은 오랜 기억 속의 서로를 바로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가 꼭꼭 힘주어 말했다.
"너는 나의 소녀 그대로구나… 하나도 변하지 않았어!"
김여사는 불룩불룩 넘치는 뱃살을 가리고 서서 너털웃음 지었지만
저도 모르게 얼굴 붉혔다.
뜻밖의 고백을 남긴 채 그는 세상을 떠났다.
뜻밖의 고백과 이별 뒤에
김여사는 비로소 지는 풍경을 바라보게 되었다.
지는 풍경 속에 들어 있는 수많은 빛살들의 사연이
석양을 타오르게 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중에 첫사랑의 맹목을 장착한 빛살 하나가 자신에게 잠시 와 닿았음을
그로 인해
지친 삶에서 걸어 나와 풍경을 바라보게 되었음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