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상이란 말은 명상이 아니고 명상이란 것은 정해진 어떤 것이 아니며, 자연스럽게 진심으로 조화를 이루며 사는 것이 명상입니다.)
명상을 하는 이유는 몸과 마음이 나라고 믿고만 사는 태도에서 전체 우주와 나의 존재는 분리된 것이 아니며 내면의 에너지가 본래의 ‘참나, 의식, 존재’ 임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이런저런 생각과 마음을 지켜보는 힘이 바로 의식이며 모든 에너지를 대상에 빼앗기지 않고 마음이 하는 것을 지켜보는 여유 공간을 만드는 것이 명상입니다. 이 공간이 바로 무심의 작용이며 비어 있는 공간입니다. 고요해진 몸과 마음을 환영하며 그 상태에 평온한 마음을 살짝 얹혀 가능한 유지해 봅니다. 침묵의 상태를 멍하게 두지 않고, 긍정적인 느낌들을 공급해 그동안 습관적인 걱정의 에너지를 뒤집어 놓을 것입니다. 이것을 경험할수록 존재 에너지가 자라 집중할 때 집중하고 휴식할 때는 죄의식이나 강박 없이 진정한 휴식 안에서 평화를 만날 수 있게 됩니다.
우리는 일상생활 속에서도 하나의 에너지로 몰두해 나를 잊는 경험 속에서 행복을 느끼고 쉴 때 고요한 순간도 있습니다. 다만 이 고요를 무의미나 공허로 느끼는 것은 욕망마음으로 그 감정을 평가하는 습관 때문입니다. 부정적이며 비판적 에너지를 키우며 살기 때문에 오히려 이 고요와 침묵의 시간이 바로 진아의 발현임에도 스스로 못 견디는 상황이 된 것뿐입니다. 그러므로 숨과 숨 사이의 멈춤의 순간 생각과 생각 사이의 빈 공간에 고요를 받아들이고 행복감으로 바꾸면 이것이 바로 명상의 기본입니다. 참나가 어디 멀리 있는 것이 아닌 것이지요. 외부의 대상 없이 참나 속에 안주하는 것이 거창하고 이상한 것이 아니라 익숙하지 않고 무의식적인 탓에 모를 뿐입니다. 이렇게 삶은 흘러가야 하고 흘러가고 있지만 본질은 변함이 없다는 것을 깨닫는 것입니다.
명상적 삶의 태도에 마음을 열면 내가 주인이 되어가고, 사람에 따라 사랑의 능력이나 메타인지 능력이 자랍니다. 메타인지란 ‘자신의 인지 과정에 대해 한 차원 높은 시각에서 관찰·발견·통제·판단하는 정신 작용으로 '인식에 대한 인식', '생각에 대한 생각', '다른 사람의 의식에 대해 의식', 그리고 고차원의 생각하는 기술(higher-order thinking skills)이다.’로 정의하고 있습니다.
매일 눈 뜨면 만나는 ‘나’는 작은 세계를 생각과 환경으로 구축하며 살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지금 ‘왜, 여기서, 무엇을 어떻게 하고 있는지’에 대해 충분히 깨어 있지 않습니다. 명상을 하는 사람들도 지금의 공부와 수행으로 내가 어디까지 왔으며 무엇을 해야 하는지 대략적인 지도가 없어 멈추는 경우가 많습니다. 나라는 무의식적 삶에서 벗어나려면 배움 혹은 문제해결을 위한 특별한 전략들을 언제 그리고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관한 지식을 갖고 있다면 자신의 길이 보일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메타인지에는 두 가지의 구성요소가 있습니다.
(1) 인식에 대한 지식과 (2) 인식에 대한 규제입니다. (1) 인식에 대한 지식은 자신이 지금 여기까지 살아오면서 특정화된 성격 구조와 인격의 작용방식을 이해하는 것입니다. 자기이해지능을 높이고 통찰하는 방법을 안다면 삶은 한결 나은 자존감을 갖게 됩니다. (2) 인식에 대한 규제는 자신의 고유한 부정적인 태도와 마음가짐과 환경을 알고 극복하기 위해 필요한 의식의 일깨움이며 삶의 방식을 바꿔 가는 것입니다.
자신이 무엇을 알고 무엇을 모르는지를 아는 것, 자신의 생각(인지) 패턴이 왜 생겼으며 이런 분별과 선택을 하며 살고 있는지 등 자신의 전체성에 대해 판단하는 능력은 의식이 성장할수록 자라납니다. 내면의 의식이 깨어날수록 과거로부터 자유로워지며, 현재에 충실하고 미래를 그려나갈 수 있게 됩니다. 실제로 이러한 능력은 자신의 인지를 조절하고, 생각하고, 학습하는 잠재력을 극대화하고 적절한 또한 의식이 높아짐에 따라 주어진 상황에 대한 응답 시간을 단축하고 잠재적으로 문제 또는 작업을 완료하는 데 걸리는 시간도 줄일 수 있습니다. 지켜보고 흐름을 파악해 나를 돌보니 자존감도 자라고 가슴의 사랑이 일깨워지는 여유가 생깁니다. 그렇게 명상적 삶의 방식은 불안감보다는 신뢰를, 두려움보다는 평화를 가까이 두고 살아가게 도와줍니다.
우린 꼭 명상을 해야 무엇을 이룰 것이란 고정관념에서 자유로워질 필요가 있습니다.
깨어남의 과정을 이해만 하여도 모르는 것보다 도움이 될 것입니다. 나와 환경을 이해하고 수용하는 능력은 인간의 성장 도구로써 좁은 나를 열리게 하는 무시할 수 없는 힘을 갖고 있습니다. 나름 잘 살아왔다면 그동안의 경험과 지식을 질적으로 변화시킬 기회가 자신의 삶의 나이에 맞게 찾아옵니다. 명상이란 방편은 내 삶에 좀 더 집중이 필요하다고 느껴질 때, 여유가 생겨 나를 돌볼 여행이나 환경을 만들었을 때, 혹은 삶을 바꾸고 싶은 갈망으로 답답하고 우울이 심해질 때 혹은 몸이 약해져 휴식이 필요할 때 등 기회가 많습니다.
사회의 영향력에서 조금 자유로운 시기에 집중해 본다면 그동안의 배움을 정립하는 좋은 기회가 됩니다. 좀 더 평화롭게 살 준비가 되었다면 시작합니다. 구체적인 명상과 호흡법 연마, 요가 등에 몰두하는 것은 앞서 설명한 지성과 삶의 길과 사랑의 길을 숙지하여 거칠고 무의식적인 마음의 날뜀이 적어진 시기에 하는 것이 그렇지 못한 경우에 비해 효과가 좋습니다. 나이를 먹었다고 불가능하지 않습니다.
여기서 단계별로 의식의 성장을 설명하는 목적은 목적지를 어떻게 갈 수 있는지 네비게이션을 켜면 길을 찾기 쉽다는 점 때문입니다. 의식의 성장의 길은 70억 인구수만큼 다르지만 공통점이 있고, 주관적인 진리의 세계라 할지라도 도달하는 상태는 똑같기 때문입니다. 의심을 스스로 거두어 내기 위해서는 주관적 체험과 직관 그리고 느낌을 세심하게 알아차려 길을 잃었을 때 나타나는 징조들을 알면 오랫동안 방황하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결국은 준비가 된 만큼 흐름이 열리고, 어렵지 않게 성취될 때 존재계의 배려와 사랑의 흐름을 쉽게 만나는 법이기에 욕망을 앞세워 무리할 필요는 없는 것이지요. 많은 명상가들이 용맹정진하다 상기병에 걸리거나, 우주의식이 열려 두려움을 만나는 일도 있습니다. 깨닫겠다는 욕망으로 한계에 도전하여, 악착같이 성공하는 사람은 아주 소수입니다. 예를 들어, 빛을 보고 신의 소리를 들었다 해도, 일상은 늘 똑같아 실망하는 경우는 더욱 많습니다.
물론 결정적으로 흔들리지 않는 완성의 느낌은 좀 더 세밀하고 집중력 있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환경이 편해질수록, 자연스럽게 나이를 먹어갈수록, 과일이 익어가듯이 일어납니다. 아는 만큼 길을 찾는 방법에 눈이 열리고, 단계를 알고 있으니 효율적으로 꾸준히 자신을 재창조할 것입니다.
진리를 알고자 하는 욕망은 좀 더 자유롭게 사랑하고 평화롭게 살고 싶은 나의 ‘참나’ 의 작용입니다. 행복한 사람은 깨달음에 연연해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지금 여기에서 자연스럽게 허락된 것 속에서 즐기며 살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