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기 며칠 전

2025년 6월 29일

by 노크





오후에는 도서관에 갔다.

오늘이면 이 도서관도 마지막인데 ~ 하면서 도서관을 찬찬히 둘러봤다. 기말고사 때인가?

늦은 시간인데도 몇몇 학생들이 열심히 공부한다. 엄마 따라서 온 저 아이는 엄마 옆에서

수학 문제를 풀면서 지겨워 죽겠다는 표정이다. 나도 아들을 데리고 도서관에 다녔었는데

우리 애도 저렇게 지겨웠겠다 싶었다.

12년 전 남편이 이곳에 오면서 말했었다.


"당신이 좋아하는 산이 있고 호수 공원이 있어. 그리고 도서관도 있어"

그렇게 아는 사람 하나 없는 이곳에서 정 붙이고 살 수 있었던 건 도서관의 도움이 컸다.

11년 동안 600권이 넘는 책을 빌려봤더라.

특별히 남편이 서울에 먼저 올라가고 혼자 원룸에서 살았던 9개월 동안엔 퇴근하고

수영장 갔다가 바로 도서관으로 가서 도서관이 문 닫는 10시까지 있었다.

원룸이라는 곳이 좁고 답답하기도 했고 혼자 있는 것이 싫었으며 늦은 시간 도서관에서

책을 보면 집중이 더 잘되기도 했다.

도서관에서는 책을 보는 것은 물론이고 글도 쓰며 때로는 일기장을 펼쳐 속 얘기를 털어놓기도 했다.

너무 피곤하면 잠깐 엎드려 단잠을 자도 흉이 되지 않았고 텀블러에 우려낸 차를 마시며

창밖을 바라볼 때는 창 넓은 카페에 앉아있는 듯 행복했다. 한 여름엔 에어컨으로,

추운 겨울엔 따듯한 바람으로 휴식처가 되어주었다.

한마디로 나의 행복한 놀이터였다. 그런데 이 도서관을 떠나야 한다고 생각하니 많이 아쉽다.

새로 이사하는 곳에도 도서관은 또 있겠지만. 오랫동안 정이 들었다.


책들아 안녕 그동안 고마웠어 나 서울로 이사가 잘 있어….

마음으로 인사를 나누고 내려와 책을 대출하고 반납하며 인사를 나누었던 사서에게 다가갔다.

뭐 도와드릴까요 하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기에

음! 저 오늘 이곳이 마지막이에요 내일이면 먼 곳으로 이사 가요
그동안 인사해 주시고 친절하게 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했더니 사서들도 인사를 하며 서로의 건강을 빌었다.

문을 열고 이만큼 천천히 걸어 나왔다. 왠지 눈물이 날 것 같이 아쉬웠다. 그때 뒤에서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선생님…….

뒤를 돌아보니 조금 전 인사를 나누었던 사서다. 그녀는 양손을 벌리며 내게 다가왔다 그리고

나를 꼭 안아주었다. 순간 울음이 왈칵 쏟아졌다. 조심히 가세요. 건강하시고요.

나는 눈물이 나 아무 말도 못 했다.

그녀의 따듯함이 너무 고마워 "선생님도요"

하며 인사를 하고 돌아섰다.


그냥 인사한 것으로 끝낼 수도 있는데 그녀는 따라 나와 이렇게 따듯하게 안아주었다.

고마웠다. 떠남의 아쉬움을 따듯하게 안아준 그녀…. 책의 마음처럼 부드러웠다.

낯선 사람과는 쉽지 않은 행동이다. 누군가를 진심으로 안 주는 건 그것 만으로도 큰 위로와 힘이 된다.

그녀는 그것을 용감하게 실천해 주었다.

한때는 명동 한복판에서 허그 챌린지가 화자 됐던 때도 있었다.


12년을 살았던 곳에서 먼 곳으로 이사를 하고 10년 동안 다녔던 직장을 퇴사함과 동시에 정년을 맞이하니

아마도 모든 것으로부터 밀려나는 것 같아 마음이 쓸쓸했나 보다.

나의 상황을 다 알지는 못하지만 따듯함으로 안아준 그녀에게 그동안 힘들고 어려울 때마다 도서관으로

도망 와 책으로 위로를 받았을 때처럼 편안함과 따듯함을 느꼈다.

책과 함께 살며, 일하는 그녀들은 책을 닮아가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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