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둘레길,
나의 156.5km를 완성하다

by 노크


서울 둘레길은 역사·문화·자연생태를 스토리로 엮어 국내외 탐방객들이 걷고 느끼고 체험할 수 있도록 만든 도보 길이다. 서울을 한 바퀴 휘감는 총 길이는 156.5km. 오늘, 그 긴 여정을 마무리한다. 사당역 갈림길에서 관악산 공원 입구까지 5.7km. 이 구간을 걸으면 드디어 나만의 156.5km가 완성된다.

8월 하순, 여전히 아니 아주 많이 덥다. 사당역 4번 출구를 나서며 모자를 눌러 쓰고 신발끈을 조인다. 설렘이 묻어나는 순간이다. 오늘은 대망의 마지막 구간이다.


순천에서 지리산 둘레길 295km를 완주한 뒤, 서울 순성길(한양도성길) 18.6km를 걸었다. 북악산을 주산으로 인왕산, 낙산, 남산으로 이어지는 길. 북악산의 그 끝없는 계단을 오르던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다. 숨이 턱까지 차오르던 그때, 잔망대에 올라 바라본 한양의 모습은 정말 아름다웠다. 그 감동이 오늘의 서울 둘레길까지 나를 이끌어 준 것 같다.


서울 둘레길은 코로나19 전부터 틈틈이 걸었다. 서울에 올 때마다 일부러 시간을 내서 한 구간씩 걸어야 했기에 완주까지 긴 시간이 걸렸다. 비가 오거나 날씨가 거칠어 걸을 수 없는 날은 얼마나 아쉬웠는지 모른다. 비가 오면 어쩔 수 없이 포기할 때도 있었지만, 빗속에서도 걸었던 기억도 있다.


쉬운 구간부터 시작해 북한산 구간은 세 번으로 나눠 걸었고, 수락산과 불암산 구간은 서울에 이사 온 뒤에야 걸을 수 있었다. 오늘 걷는 이 마지막 구간까지, 어느 한 구간도 동행 없이 홀로 걸었다.

지리산 둘레길은 혼자 시작했지만, 토요일마다 전국 각지에서 찾아온 사람들과 함께 걸을 수 있어 좋았다. 그러나 서울 둘레길은 늘 혼자였다. 어쩌면 그 덕분에 더 깊이 나를 바라볼 수 있었던 시간인지도 모르겠다. 늘 생각한다. 인생은 결국 오롯이 혼자라는 걸. 그래서 외로움도, 긴 고독도 묵묵히 받아들일 수 있는 걸까. 남의 이야기는 잘 들어주면서도 내 속 이야기를 쉽게 꺼내지 못하는 이유도 어쩌면 그 때문일지 모른다.


둘레길을 걷다 보면 두셋씩 함께 걷는 사람들을 많이 만난다. 그러나 나처럼 혼자 걷는 이들도 꽤 있다. 산과 오롯이 마주하고 싶어서일까, 조용히 자기 자신을 만나고 싶어서일까. 땀 흘리며 길을 걷는 이들이 생각보다 많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도대체 왜 그렇게 힘들게 걷느냐’ 묻는 사람도 많지만, 나는 안다. 이 길은 단순히 걸음으로만 끝나는 길이 아니라는 걸.


둘레길은 걷는 것 그 이상의 의미를 준다. 걸으며 지나온 역사를 이해하게 되고, 각 지역이 품고 있는 아픔과 기쁨을 알게 된다. 서울이라도 지역마다 다른 문화와 사람들의 삶이 있었다. 경복궁을 중심으로 한 성곽길, 평창동 산중턱 마을, 안양천을 따라 걷던 날들, 노을진 하늘공원, 아차산 숲길까지. 걸음과 걸음이 이어지며 서울이라는 도시가 조금은 더 친근해졌다.


관악산 중턱에서 남산을 넘어 멀리 북악산과 경복궁이 보이는 순간, 그 풍경이 실로 아름답고 신기하다. 스페인의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어보고 싶은 마음도 있지만, 이렇게 내 나라 곳곳을 걸으며 역사와 사람들을 만나고 나를 성찰하는 길도 충분히 값지다.


관악산 공원 앞, 마지막 스탬프 통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스탬프를 꾹 찍고 인증샷을 남긴다. 뿌듯하고 아쉽다. 정년퇴직을 잘 감당했듯 긴 여정을 무사히 끝낸 나를 스스로 칭찬한다.


이제 알 것같다. 이 길은 단순히 걷는 길이 아니었다는 걸. 숲과 산, 마을과 하천을 따라 걷는 동안 나는 수없이 멈추고 생각했다. 나를 이끄시는 분이 계시지 않았다면 이렇게 끝까지 걸을 힘이 있었을까. 길 위에서 만난 바람, 빛, 사람들, 그리고 나의 고독까지도 결국은 하나님이 내게 주신 선물이었다.

지금까지의 내 삶이 그렇듯이.


끝은 또 다른 시작이다. 오늘 마지막 스탬프를 찍었지만, 나의 여정은 여전히 계속된다. 나의 길을 인도하시는 하나님과 함께, 또 다른 길을 향해 발걸음을 내디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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