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와 예술 속을 걷다.
오늘 아침은 어제 다녀온 스톤헨지와 옥스퍼드의 여운 속에서 시작됐다.
오랜 전통을 지켜온 영국 사람들의 자부심 앞에서,
자연스레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되는 시간이었다.
오전에는 런던의 중심 거리를 가볍게 걷기로 했다.
오후에는 대영박물관에서 세 시간 넘게 이어질 바이블 투어가 예정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포트넘 앤 메이슨에서 피카딜리 서커스를 지나 토트넘 코트 로드까지.
마치 비틀즈 멤버들이 걷던 길을 따라 걷는 기분이었다.
딸은 소매치기를 조심하라며 몇 번이나 당부한다.
여행의 설렘 옆에 늘 경계심을 두어야 하는 유럽의 풍경이 조금은 낯설다.
점심은 이탈리안 레스토랑에서 먹었다.
정작 이탈리아에 갔을 때는 피자와 스파게티가 전부였는데,
이곳 음식은 이름도 모를 만큼 화려했다.
큼직하고 독특한 접시들에 마음이 먼저 빼앗겼고,
와인과 함께한 식사는 분위기만큼이나 달달했다.
오후 1시부터 시작된 대영박물관의 바이블 투어는
로제타석을 시작으로 이집트와 출애굽의 이야기로 이어졌고,
아시리아 전시관에서는 오벨리스크를 통해 예후 왕의 최후를 만났다.
그리스관에서는 아덴에서 설교하던 바울이 떠올랐고,
로마관에서는 예수님 당시 사용되던 화폐들을 마주했다.
허리도 아프고 다리도 무거웠지만,
성경의 역사를 유물로 확인하는 시간은 더없이 흥미로웠다.
간단히 간식을 먹고 내셔널 갤러리로 향했다.
나는 다음 기회를 기약하며 초기 르네상스 작품들만 천천히 둘러봤다.
금요일이라 밤 9시까지 관람할 수 있어 마음이 한결 느긋했다.
명화 앞에 선 남편은 가슴이 먹먹했다고 했다.
어둠이 내려앉은 트라팔가 광장에는 불이 하나둘 켜지고,
버스킹 음악과 사진을 찍는 사람들, 여행객들의 웃음이 뒤섞였다.
뭘 해도 좋은 가을밤이었다.
트라팔가 전쟁과 넬슨제독을 기념하기위해 만들어진 이광장은
과거와 현재가 만나는 공공의 공간처럼 느껴졌다.
또 하루가 그렇게 저물어갔다.
박물관의 역사와 갤러리의 그림으로 채워진 하루가
내 인생의 소중한 한 페이지가 된다.
도서관에서 읽어왔던 책의 한 장면 속에
내가 잠시 서 있는 기분이었다.
숙소로 돌아와 서둘러 저녁을 먹는다.
미역국에 김치볶음, 삭힌 고추, 두부조림까지.
점심에 먹은 비싼 이탈리안 요리보다
이 저녁상이 더 맛있게 느껴지는 이유는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알 것 같다.
60년 동안 먹어온, 우리의 음식이니까.
식탁을 정리하던 딸이 케이크를 들고 나왔다.
“엄마, 60회 생신 축하해요.”
며칠 남은 생일이지만 미리 준비했단다.
남편과 친구 부부의 지난 생일과 다가올 생일까지 함께 축하했다.
케이크는 달콤했고, 우리의 수다와 웃음은 그보다 더 깊었다.
누군가는 말한다.
여행을 하는 동안, 하잘것없게 느껴졌던 우리의 삶이 아름답게 보인다고.
무심히 지나쳤던 감정들이 사람과 자연을 통해 다시 살아나기 때문이라고.
이렇게 쌓인 감정들이 내 삶의 여행 앨범이 되는 순간.
꺼내보고 싶을 때마다 다시 펼쳐볼 수 있는 것.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나만의 행복 자산이 하나 더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