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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흥디자인 Oct 15. 2021

깨진 유리를 다루는 방법

나는 늘 아내가 안쓰럽다



아내에게 섣불리 말하는 게 아니었다. 내가 아이에 대해서 조심스럽게 말을 꺼내자, 아내는 금세 닭똥 같은 눈물을 흘렸다. 1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으면 괜찮을 거라고 여겼던 내 생각이 너무 짧았다.... 사실 아내는 무척이나 여린 사람이다. 사람을 잘 믿고, 상처를 잘 받는다. 근데 사람들은 그걸 모르고 아내에게 상처를 준다. 매우 안타까운 일이지만, 나 또한 아내에게 상처를 주었으니 할 말이 없다....






처음 소개팅했을 때의 아내의 모습이 떠올랐다. 검은색 슬랙스와 간결한 디자인의 흰색 셔츠를 매치한 아내의 모습은 소개팅이라기보다 업무 미팅에 참여하려고 나온 사람처럼 보였다. 꾸미긴 했지만, 이성에게 잘 보이려는 모습은 아니었다. 여자들이 소개팅을 하러 나오면 보통 원피스를 많이 입고 나오던데. 전투적이네.라고 생각했다. 감정이 없어 보이는 무표정한 얼굴을 보며, 소개팅은 한 시간 만에 파하겠구나, 싶었다. 그런데, 그런 그녀가 소개팅 상대가 나라는 것을 알자마자 바로 인사를 하며 환하게 웃었다. 꽃망울이 막 열리는 것 같은 환한 웃음이었다. 순간, 마음이 철렁하는 기분이 들었다. (다른 말로 심쿵이라고 하지요.) 그 웃음을 시작으로 우리는 여기까지 왔다.



아내는 유리 같은 사람이다. 나에게 솔직하게 감정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하기 싫은 일이 있거나 마음에 들지 않으면 금세 표가 난다. 반대로, 좋아하는 것도 단박에 알 수 있다. 좋아할 때의 모습은 흡사 어린아이 같다. 주변이 환하게 밝아지는 것 같은 웃음을 짓는다. 어쩜 저렇게 감정을 남에게 잘 표현할 수 있을까 싶다. 인상이 조금 센 편이긴 하지만 (무표정일 땐 조금 무섭다) 아내는 무척 여성스럽고 여린 사람이라고 여기고 있다. 그래서 아내가, "여보 말고 다른 사람한테는 무뚝뚝한 편이야."라고 말했을 때, 믿을 수가 없었다. 근데 친정에서 하는 행동을 보면 그 말이 맞나 싶기도 하다. 나와 있을 때와... 굉장히 다르다. 차가운 도시의 여성이라고 불러야 할까? 거기에 또 한 번 매력을 느끼는 나는, 그렇습니다. 아내 바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산책 이후에 빠르게 침대에 누웠지만, 아내는 한동안 뒤척이며 잠을 이루지 못하는 것처럼 보였다. 결국, 붙잡을 새 없이 아내는 서재로 가버렸다. 아아, 어쩌면 좋을까? 행복한 가정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지만, 각자의 생각이 다르고 받아들이는 게 다르니 이렇게 서로 상처만 받고 만다. 나 또한 잠을 이루지 못한 채 눈만 껌뻑이며 천장을 보았다. 어떻게 하면 아내가 상처를 딛고 올라설 수 있을까.



그래, 아직 시간이 더 있어야만 했다.



새벽에 침실로 들어온 아내의 모습은 전투장에서 피를 철철 흘리고 돌아온 검투사 같았다. '침통하다'라는 말이 잘 어울리는 얼굴을 하고 지친 채 돌아왔다. 또 밤새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구나... 아내는 지나칠 정도로 생각이 너무 많다. 그래서 가끔은 생각이 이상한 쪽으로 흐르곤 한다. 그런 아내에게 그러지 않아도 돼, 괜찮아,라고 말하며 보듬어주고 싶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새벽에도 그런 마음이 들었지만, 그러면 또 울어버릴까 봐 그저 가만히 있었다. 안타까웠다.



언제부터인가, 아내는 깨진 유리 같아졌다. 아니다, 언제부터인가가 아니라, 아이를 잃고나서부터였다고 정확히 말하자. 매사 투철하게 일생을 살아온 아내는 매 순간마다 계획을 세우고, 그 계획을 성공하는데 온 힘을 다 바치는 사람이었다. 계획이 조금만 어긋나도 굉장히 스트레스를 받았다. 연애시절부터 아내의 그런 모습이 대단하다고 여겼다. 나는 일이 잘 안돼도 그냥 다음에 하지 뭐, 하고 넘겨버리는 편이다. 그래서 스트레스를 받는 일이 거의 없다. 어떻게 정반대의 성격인 사람들이 이렇게 사랑에 빠졌는지. 정말 모를 일이다.



결혼을 하고 나서 아내는 결혼 전에 미리 세워둔 아이 계획을 이루려 열심이었다. 하나는 부족하고, 둘은 있어야 한다며 아들-딸보다는 딸-아들이 좋다는 계획을 설파했다. 조금 놀랐다. 지금에 와서 이야기하지만, 나는 아이는 천천히 가져도 된다고 생각했었다. 신혼의 알콩달콩 분위기도 좀 즐겨야지, 라는 생각이었다. 그렇지만 아내는 아이가 있어야 행복해질 수 있다고, 다른 사람들도 아이와 행복을 같은 선상에서 놓는다고 강력하게 주장했다. 그때의 아내의 표정은 개선장군의 그것이었으며, 정말 행복해 보였다. 자신이 세워둔 미래를 상상하면서 웃음꽃을 피우는 아내의 모습은 나만 보기 너무 아까웠다. 아니지? 그래도 나만 봐야지. 아내의 행복한 모습을 늘 보고 싶었던 나는 아내의 계획에 힘을 실어주기로 결심했다. 그런데 결과가...



너무 성급했던 걸까. 아이를 잃고 나자 아내는 자신이 세운 견고한 성을 스스로 무너뜨렸다며 자책했다. 조그만 계획에도 스트레스를 받아하던 아내인데 인생의 전부를 건 계획이 무너졌으니, 오죽하랴 싶었다. 그리고 지금까지 아내는 상처를 껴안고만 있다. 겉모습만 보고 나아졌다고 생각한 내 판단이 틀렸음을 이제야 알았다. 사실 나 또한 아내를 깨진 유리처럼 대했을 뿐, 상처를 낫게 도와준 적은 딱히 없었다. 몸에 있는 상처는 연고를 바르고, 반창고를 붙이면 어느샌가 낫는데. 마음의 상처는 그 모습이 안 보이니 상처를 낫게 할 방법도, 나았는지도 쉽게 알 수가 없다. 그저 기다리는 수밖에.

출근을 하고 나서도 여전히 아내의 생각이 계속 난다. 그리고 조금은 암담했다. 어떻게 하면 아내가 다시 웃을 수 있을까? 뾰족한 해결책이 없이 계속 생각만 빙글빙글 돌았다. 결국 나는 메신저로 친하다고 자부하는 (아내 말로는 오피스 부부라고 부르는) 회사 동료를 불러냈다. 커피를 살 테니 이야기나 나누자며. 이 친구는 나와 나이는 같은데 세 살짜리 쌍둥이 딸들을 키우고 있다. 아이가 태어난 후 늘 입버릇처럼 '잠이 부족하다', '체력이 달린다'라고 말하지만, 이놈의 사진첩엔 딸 사진이 그득이다. 이 자식, 말과 행동이 다른데 좀 부럽다.



이런 놈을 붙잡고 임신이니 출산이니 이야기를 하자니 조금 쑥스럽다. 회사 바로 앞에 있어서 사람들이 주로 애용하는 카페보다는 조금 멀어서 회사 사람들이 잘 안 가는 카페가 나을 것 같았다. 다행히 그 카페는 커피 맛이 좋다. 그곳에 가자고 하니 동료는 조금 의아해했지만 그러자고 했고.... 그 대신 평소에는 안 시키는 비싼 음료를 시켰다. 어쩌겠어, 내가 불렀고 내가 이곳에 오자 했으니. 그 값이라고 생각하지 뭐.



"야, 너 무슨 일 있냐? 눈이 충혈되어 있구먼. 또 무리해서 산책했냐?"


아니야. 그냥 잠을 좀 못 자서 그래. 야, 물어볼게 하나 있는데...


"말해- 달달한 신혼을 즐기는 이가 육아의 쓴맛을 누리고 있는 자에게 무슨 궁금한 게 있냐?"


참 내, 거창하기 그지없네. 암튼, 너네는 임신을 어떻게 준비했는지 궁금해서 그른다.


"임신? 아아... 우리도 좀 준비하긴 했었지. 근데 준비할 땐 안돼서 그냥 포기하다가 갑자기 생겼어. 게다가 신기하게 쌍둥이여서 아내가 첨엔 엄청 울었다. 하휴... 그거 달래느라 얼마나 힘들었는지. 왜, 아이 계획 있어?"


아니 뭐... 아내가 가지자고 하는데... 잘 안 되는 거 같아서 스트레스만 받길래 다들 어쩌나 싶어서 물어본 거지. 난 정말 모르겠다. 임신이 뭐, 유니콘이야, 유니콘. 나만 빼고 결혼한 사람들은 다 임신 잘만 되고 아이 잘 키우는 거 같은데 어째서 우리만 안되는지 몰라?


"그래서 이렇게 인적 뜸한 곳까지 나를 불러내셨다? 하이고. 이선호... 아직 멀었네, 멀었어. 그냥, 몸 관리 계속 잘하시고요. 그냥 마음 편히 가지고 있으면 아이는 생겨. 하늘이 점지해 주시는 거라 하잖냐. 조건 되고 마음만 먹으면 다 돼."


아니, 이제 아이 있다고 너무 성의 없이 대답하는 거 아니냐, 너. 나는 조금 심각하다고.


"야, 임신도 임신이지만 육아가 더 힘들어. 나 봐봐. 이렇게 다크서클이 얼굴을 다 덮겠어. 아내가 더 고생이지만 나도 만만치 않아. 쌍둥이니까 2배가 아니라 4배로 더 힘들다니까? 임신의 임자도 모르는 놈이... 야, 나 전화 온다. 아이... 부장 새끼 또 부르네, 야, 간다- 괜히 먼 데까지 와서 뛰어가야 되네. 어휴."


허.



그렇게 마음먹은 대로 되면 내가 이렇게 고민하지 않지요, 이 사람아. 붙잡고 물어보고 싶은 게 한가득인데, 너무 후닥닥 달려 나가 버려서 더 물어보지도 못했네. 뭐야. 뭐. 특별한 말도 안하고 비싼 음료만 쏙 먹고 사라진 이 나쁜 놈아. 나중에 나도 너 벗겨먹을 거다. 씁쓸한 마음에 있던 커피를 쭉 들이켜고 사무실로 향했다.



어쩌면 우리가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결혼해서 행복해지려면 아이가 꼭 필요한 건 아닐 거 같은데. 행복한 결혼 생활을 하다 보면 아이가 생길 수도 있는 거고. 우리가 아이를 잃었다고 해서 다시 아이를 못 갖게 되는 건 아니니까. 의사도 곧 아이를 가질 수 있다고 했으니 너무 걱정할 필요가 없는 거 같은데... 결국 마음의 문제인 건가. 마음을 편하게 가지는 게 중요한데, 아내의 마음을 어떻게 풀 수 있을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결국 퇴근 시간이 되었다. 무거운 발걸음을 이끌고 집에 들어섰더니... 아내가....



다시 사람이 되어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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