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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트와일라잇 Oct 27. 2022

잣밤과 참새들

딸의 어록을 남기다.

아파트 빌라 입구에는 아름드리  자란 구실잣밤나무가 있다. 제철을 맞은 요즘,  나무 아래 떨어져 있던 잣밤들을 주워가는 재미가 쏠쏠했다.

 평소에도 밥을 너무 적게 먹어서 ‘아기 새’라고 불리는 둘째가 그 잣밤을 먹는 주인공이다.

하루는 산책을 하고 돌아오는 길, 잣밤을 주워볼까 하고 나무 아래로 향하는데 참새들이 신나서 잣밤을 먹고 있다.  여러 마리의 참새들이 바닥에서 신나게 잣밤을 까먹다가 인기척을 느끼자 푸더덕 날아간다. 차마 참새들의 식사를 방해할 수 없어서 맨손으로 돌아온다.

“오늘 산책길에 보니, 참새들이 잣밤을 맛나게 먹고 있었어. 우리 참새들의 식사를 너무 많이 빼앗아 먹는 건 아닐까?”

조심스레 건넨 나의 한마디에 천연덕스럽게 답하는 아이.


“내가 아기새인데, 나도 잣밤 먹어도 되지.”


귀여운 녀석이라 여기며 웃어넘기려는 찰나,


“아빠는 잣밤 안 먹나? 아빠도 참새잖아. 무슨 일 있으면 ‘쯧쯧’ 거리는 아빠 새.”


차마 말로는 표현 못하는 우리 남편이 우리들의 한심한 행태를 볼 때면 ‘쯧쯧’하고 혀 차는 소리를 내며 장난을 치곤 한다. 그 모습을 정확히 기억하고 아빠도 새라고 말하는 아이.

아, 이래서 늘 말조심이다.


“아빠는 고기 좋아하는 아빠 새야, 걱정 마.”


이렇게 대화를 마친 우리 둘이었지만, 정작 저녁 산책을 하고 돌아오는 길에 참새들이 잣밤 먹는 모습을 본  둘째는 마음이 묘하다.


“ 엄마, 아기 참새들이 짹짹거리면서 ‘먹지 마세요.’라고 하는 거 같아.”



 팔은 안으로 굽는 건가? 참새들의 맛난 식사를 지켜보던 아기 새는 오늘의 잣밤을 포기하고 참새를 사랑스러운 눈으로 바라본다.



 잣밤을 줍는 손녀가 생기면, 우리 딸이 자기를 닮은 천연덕스럽고 귀여운 아이를 낳으면 들려줄 귀여운 이야기 하나가 또 이렇게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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