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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트와일라잇 Aug 14. 2023

어린 왕자를 이해하다

방학을 보내는 그녀들과 나의 복닥임의 시간.


엄마와 아이들이 방학을 맞이하는 일은 여러 가지 즐거움과 어려움이 혼재해 있네요.


시간적인 여유가 생겨서 충분히 휴식을 할 수 있다는 점, 평소라면 생각도 못할 느긋한 아침의 시작, 등하교 시간에서 자유로운 점이 아이들에게는 큰 기쁨인 듯합니다.


또, 가족적인 시선에서 보면 함께 여행을 떠나거나 평소에 하지 못하는 것들을 할 수 있다는 점이 매력이지요. 함께 낯선 곳을 경험하며 대화하고 그동안 못 나눴던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은 참 소박하지만 행복합니다. 또, 우리 가족끼리 공유하는 추억을 이야기하는 시간은 얼마나 달콤한지요. 여행하며 먹었던 맛있는 음식과 멋진 장소는 두고두고 반짝이는 눈망울로 가족들 사이에서 오래도록 회자되곤 하지요.


반면, 늘 같은 장소와 시간을 산다는 것은 어려움을 가져오기도 합니다.


아이들의 삼시 세끼를 챙기느라 숨 쉴 틈도 없을 만큼 바쁜 주부들은 돌밥 돌밥 돌밥의 늪에 빠지곤 하죠. 방학이 아닌 시기에는 ‘오늘은 뭘 먹지?’의 고민이 방학에는 두 배가 되는 거니깐요. 아이들의 영양 상태까지 고려하다 보면 정신이 안드로메다에 갈 지경이 되기도 합니다. 식사 후, 그나마 여름은 시원한 물에 손을 담그는 재미에 설거지도 참을만하지만 매 끼니마다 가득 나오는 설거지감들을 보면 한숨이 나오기도 해요. 커가는 아이들처럼 설거지감도 오보록소보록 늘어난 것도 한몫을 합니다.


이뿐만이 아니지요. 같은 공간에 살기에, 서로 맞추기 어려운 체감온도 탓에 에어컨을 틀었다 안 틀었다 하기도 어렵지요. 또, 내가 외출하고 싶은 곳과 시간은 왜 그리 딸들과 맞추기가 어려운 걸까요? 엄마와 딸의 관문뿐인가요? 아빠와 동생, 언니의 관문을 넘기는 너무도 힘듭니다. 저의 경우엔, 달라도 너무도 다른 두 딸의 취향 맞춰주기도 쉽지 않은 일입니다.


이렇게 방학의 나날들을 보내면서 방학 과제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두 딸들의 과제는 가족과 함께 한 권의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는 것인데요.


고심 끝에 큰 아이가 ‘어린 왕자’를 추천합니다.


“엄마랑 아빠랑 다 읽었잖아.”


이미 읽은 자신을 포함해서, 우리 셋은 책을 읽었으니깐 동생만 읽으면 될 거라고 설명하네요.


‘아, 어린 왕자!’


좁은 시공간을 공유하며 부대끼며 살고 있는 요즘의 저는 어린 왕자와 장미의 다툼이 갑자기 와닿습니다. 소행성 B612라는 작은 별에서 서로만을 바라보며 살아가던 어린 왕자와 장미는 싸울 수밖에 없었겠구나…라고 갑자기 이해가 된 거지요. 어쩌면, 어린 왕자의 여행은 당연한 수순이 아니었나 라는 생각도 들면서요.


서로를 사랑하고 귀하게 여긴다고 할지라도, 매 순간 같은 공간과 같은 시간에 있는 것은 서로에게 견디기 힘든 일이었겠구나…라고 말이지요.


그리고 떠나야만 알 수 있던 나와 너. 그리고 우리라는 관계가 있음을 기억합니다. 머나먼 별들과 무수히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나서 비로소 더욱 선명해진 ‘나의 장미’를 향한 어린 왕자의 사랑이 생각납니다.


어쩌면 일 년에 한 번만 만나기에 매년의 만남이 더욱 절절했던 견우와 직녀처럼.


나와 너 사이의 아름다운 거리감과 자신의 공간을 확보하는 것, 그것이 어쩌면 오래도록 서로를 아름답게 바라볼 수 있는 필요조건이 아닐까요?


결국, 사랑하는 그녀들과 나의 사이에 거리감과 조금 빈 공간이 필요하다는 말씀을 이렇게 돌려 말해봅니다.


돌밥, 돌설거지의 나날을 보내는 모든 어른들의 여름을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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