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버 크루즈도 하고 하모니언도 배우고 마라톤도 뛰고...
방글라데시에 있을 때 여가시간을 생각하면 웃음이 나온다. 처음에는 시간이 너무 많이 남아돈다고 생각을 했다. 그때 당시 한국은 저녁 6~7시까지 근무하던 때다. 방글라데시 사디는 오후 2시 반에 퇴근을 한다. 아사드게이트 원예센터는 오후 5시까지 오피셔는 세 명이 돌아가면서 근무를 했고 가끔씩 굴산원예센터에서 팀장이 왔었다. 휴일은 금요일이었다.
남는 시간을 어떻게 보낼 것인가는 매우 중요했다. 처음에 사디에 있을 때는 산책을 많이 했다. 가지푸르에서는 연수원 옆에 논이 있어서 석양이 질 무렵에 그 논 사이 길로 걷곤 했다. 저녁 무렵에 이슬람 기도시간을 알리는 아잔소리가 연수원이나 논으로 울려 퍼지면 남자들은 하얀 뚜비 모자를 쓰고 모스크나 기도실로 향한다. 내가 사디에 간 때는 가을이라 논벼를 수확하고 그루터기에 논에 남아있던 시기다. 여기저기에서 소들이 어슬렁거리며 논에 떨어진 볍씨를 먹고 있었다.
시간이 많다 보니 현지 시장에서 수틀을 파는 것을 보고 천을 사서 수을 놓는 면실을 사서 수을 놓았다. 여기 시간에 수을 놓고 쿠션을 만들어 사디소장에게 선물을 했다. 그림도안은 내가 가져갔던 바디워시에 나온 꽃모양을 보고 그림을 그리고 그곳에 수을 한 땀 한 땀 바늘로 이어갔다.
아침에도 일어나 산책을 했다. 아침에 서늘한 바람보다는 후덥지근한 바람이 불어도 그때는 마냥 좋았다. 그리고 사디연수원 앞의 양철지붕의 도깐(가게)에서 식빵을 사서 달걀물에 식빵을 적셔 아침을 먹었다.
사디연수원의 기숙사 생활은 고즈넉한 시골의 아침과 같았다. 저녁 무렵이면 사디에서 근무하는 사람들은 배드민턴을 쳤다. 나도 잘 치면 배드민턴을 치겠지만 나는 조용히 응원하면서 구경만 했다.
다카 아사드 게이트 원예센터로 임지를 변경하면서는 처음에는 집 청소을 열심히 했다. 원예센터에서 돌아오자마자 쓸고 닦고을 베란다까지 청소을 했다. 팜게이트에 가서 간단하게 장을 보고 집에서 저녁을 해 먹었다. 라디오 소리인가에서 들은 노랫소리와 하모니언, 또불라라는 방글라데시 전통악기를 보고 하모니언을 배웠다. 현지인들에게 부탁해서 하모니언을 배우기 위해 하모니언을 사고 방글라데시 전통악기인 북과 같은 또 불라도 샀다.
한참 동안을 방글라데시에 같이 파견된 한 단원과 함께 하모니언을 배웠다. 오른손으로는 접었다 폈다 하면서 바람을 넣고 오른손은 건반을 누르면 소리가 나는 앉은뱅이 피아노인 하모니언을 배우며 뱅가리 노래도 배웠다. 그리고 귀국할 때쯤에는 뱅갈리 전통 춤도 배우기 시작을 했었다.
그곳에 갤러리들이 많지가 않다. 다카대학 근처에서 전시회가 열리지만 많은 사람이 찾지는 않는다고 한다. 갤러리는 잘 사는 동네는 굴싼에서 몇 번 가보았다. 사디의 전속 화가가 가면 전시회를 연다고 해서 굴산에 가서 힌두교의 신중에 하나인 코끼리 신 가네쉬 가면을 사기도 했다. 들은 바에 의하면 다카대학의 미술학과는 한국보다는 들어가기가 쉽다고 이야기 들었다. 우리나라도 외국의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로만 유학을 갈 것이 아니라 개발도상국으로도 유학정보가 많았으면 한다.
한국에서와 마찬가지로 다카에서 불란서 문화원, 독일 문화원 등을 둘러보기도 하고 영국문화원에 가서 책을 빌려 읽는 등의 시간을 보냈다.
가끔씩은 한국에서 같이 파견된 단원들과 호텔에서 커피도 마시고 뷔페도 먹고 하면서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나을 종종 일본인으로 오해를 해서 초밥을 먹어먹기도 했다.
어느 날인가 신문을 보다가 리버크루즈를 한다는 홍보의 글을 보고 다른 단원에게 연락해 같이 매그나강의 리버크루즈에 신청을 했다. 방글라데시는 강이 무척 넓다. 강이 아니라 바다와 같다. 여행을 하는 동안 생선 파는 사람도 보고 선상에서 벌어지는 엑따라을 연주하면서 노래를 부르거나 하모니언과 또불라을 연주하는 음악회에도 참석하고 점심도 먹고 강바람도 쐬고 즐거운 한때를 보내기도 했다.
임기 말기에는 더운 열대의 나라에서 마라톤에 도전을 했다. 다들 이 더운데 무슨 마라톤이냐고 했지만 나는 그 마라톤 대회에 나가서 완주를 하고 소다수를 시원하게 마셨다.
그리고 다른 나라 봉사단원들과 친교의 시간도 가졌다. 집에서 간단하게 수육이나 한국음식을 마련하고 방바닥에 빙 둘러앉아서 음식을 먹고 서로를 소개하고 떠들다가 가까이에 있는 소나르간오 커피숍에 가거나 아니면 헤어지거나 하기도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곤도상이 고맙다. 그녀는 주로 일본 협력대 남자단원들을 데리고 내가 사는 집으로 왔다.
나도 곤도상이 사는 탕가일도 가보고 다카에 사는 일본협력대원 집에 초대받아서 가보기도 했다. 일본음악을 이들을 통해서 처음 접했다. 귀국할 무렵에는 후배 단원이 일본협력대 지역개발지역에 임지를 배정받아 그곳을 후배단원과 방문해 성대한 환영식도 받았다. 팀 리더는 우리도 처음에는 너희가 같이 열정적이었고 순수했다며 미소를 지었다.
호텔에서 하는 재즈음악회를 가기도 했다. 한국에서 듣던 재즈 음악은 어둡고 허스키 소리의 가수가 노래를 했는데 방글라데시에 내방한 영국재즈가들이 연주하는 재즈는 밝고 환해서 무척 놀랬었다.
요새는 라디오에서 한 밤중에 재즈곡을 듣기도 하면서 방들라데시의 먼 추억한 페이 지을 넘기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