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물은 조경물 장식되고 옥, 은반지, 자수공예품등이 친환경제품 거듭나길
개발도상국의 건축술을 배우고 공예품을 한국에 들여왔으면
건물에는 조경물이 장식되고 옥, 은반지, 자수공예품 나무수저등이 친환경제품으로 거듭나길
16.07.21 23:46l
볼일이 있어 대전경찰청에을 갔다. 들어갈 때는 몰랐는데 나오면서 주위를 둘러보니 스테인리스 공예품이 있었다. 달빛을 추상화해서 만든 작품이었다.
대전 오류동 코스트코 현관문 앞에는 철로 만든 실용작품이 오 가는 사람들의 휴식공간으로 색 자리 잡고 있다. 20여 년이 되어 색깔도 바뀌었다. 파란색에서 빨간색으로 페인트칠이 되어 있지만 사람들은 평상처럼 쉬었다 간다. 윤 모 씨의 작품으로 코스트코의 건물은 조경과 더불어 조경예술 작품이 사람들과 잘 어우러져 있다.
우리나라도 건물을 지으면서 건물만 덩그러니 지어놓을 것이 아니라 건물과 더불어 조경의 가치를 더했으면 한다.
20년 가까이 된 이야기다. 네팔의 바탕이란 지역에 게스트하우스나 모텔을 갔는데 건물만 있는 것이 아니라 게스트 하우스 안에 꽃과 나무들이 있는 정원이 있고 일층에 식당이 있었다.
우리나라 모텔들은 정원이 없이 건물만 있다. 누가 누구를 위한 건물을 짓고 있는 것일까? 한국도 더 늦기 전에 튼튼하면서 백 년 이상을 내다보는 조형물이 들어선 예술작품과 조경이 가미된 건물들이 들어섰으면 한다.
개발도상국에 우리와는 다른 독창적인 건축양식이 있다. 우리나라도 개발도상국에서 그들의 전통건축술도 배우고 우리 것을 전파하는 지역개발 사업이 펼쳐졌으면 한다.
난 아직도 잊지을 못한다. 부탄에서 체리모나스트리라는 사원의 절을 인도학생들이 공부를 위해 방문을 했었다. 한국에 돌아오니 전통한옥 짓기, 통나무집 짓는 것이 유행이었다.
부산에 있는 코모도호텔은 한옥 지붕이 올려져 있는데 호주사람이 설계를 했다고 한다. 우리는 잊어가는 전통건축기술을 외국인들은 연구를 하는 것이다.
나의 이십 대는 무더위와 싸움이었다. 방글라데시의 여름밤은 친구들에게 편지를 쓰고 그 나라 재래시장에서 맘에 드는 천을 사서 전통의상인 살로와르와 가미를 디자인해 보고 가구의 치수를 정하고 모양을 디자인해 목공소에 맡기면 가구가 완성이 된다, 신발도 가죽을 정하고 모양을 그리면 신발이 완성된다.
대학 다닐 때 인조가죽 하이힐을 신으면 2`3개월 만에 신발이 떨어졌다. 어머니가 신발을 맞추라고 했다. 옆집의 아저씨는 외국구두잡지를 보여주며 모양을 선택하라고 했다.
우리 주변에는 공예품 아닌 것이 없다, 우리 생활 속 깊은 곳에 공예품이 자리 잡고 있다. 열대의 달빛아래서 많은 공상과 책을 넘기면서도 나는 수공예품의 매력에 빠졌었다.
발목부상으로 기브스을 하고 다른 한 다리에는 은발찌을 하고 그 나라 수공예품점을 찾던 나는 시간이 날 때마다 공예품 구경을 했다. 옥으로 만든 공예품, 은팔찌, 반지, 허리띠, 바늘과 실로 시골 아낙네들이 만든 자수 이불, 자수 옷, 자그마한 수공예품, 나무수저, 가죽지갑, 열쇠고리등 헤아일 수 없는 공예품들,
이 모든 공예품을 한국으로 양탄자에 실어 날아왔으면 했다. 한국에 돌아오자 가족들은 나보고 오십 년대 여자, 60년대 여자가 돼서 돌아왔다고 했다,
나는 한국에 돌아와 얼굴에 버짐이 생겼다. 화장품을 파는 언니는 쥬리아제품을 머드팩을 추천했다 창문사이로 들어오는 달빛에 내 얼굴이라는 조형물을 바라본다,
나이 40이면 얼굴에 책임져야 한다고 하는데... 스테인리스 공예품을 보며 나 자신을 되돌아보며 차가운 냉수를 찾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