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했던 미얀마 숙소 두 곳의 호스트 분 부고 소식을 차례로 접하며
"마크 아저씨, 오토바이 사고로 돌아가셨대요."
2019년 2월 말, 내가 첫 네팔 여행을 할 당시, 미얀마 여행 카페에 올린 숙소 추천의 글에 달린 댓글 내용이었다. 미얀마 껄로라는 지역에 Thitaw라는 숙소가 참 마음에 들어 여러 번 발걸음을 했고 관련 후기를 남겼었다. 그런데 그곳의 호스트 분이 갑자기 돌아가셨다는 비보를 전해 들은 것이다.
네팔의 수도인 카트만두의 숙소 침대 위에서 편하게 뒹굴뒹굴하던 나는 정신이 멍해졌다. '뭐? 돌아가셨다고? 작년에 갔을 때만 해도 허리가 좀 불편하시다고는 했지만 좋아 보이셨는데⋯. 헛소문은 아닐까? 그래도 그곳을 직접 이용하신 분이 남기신 후기이니 거짓은 아닐 텐데⋯. 도대체 무슨 일이지?'
그래서 놀란 마음을 안정시키며 숙소 측에 메일을 보냈다. Mr. Marc가 돌아가셨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는데 혹시 이것이 사실인지 궁금하다고, 매우 걱정이 된다고 말이다. 그러자 부인분으로부터 답장이 왔다.
Mr. Marc의 죽음은 사실이라고, 2018년 11월에 돌아가셨으며 오토바이 사고가 아닌 자전거를 타던 중 갑작스러운 심정지로 인한 사망이라고 하셨다. 당시 건강하신 상태였고, 7월에 벨기에(Mr. Marc는 벨기에 출신이다.)로 휴가를 가셨을 때도 심장 상태를 체크하셨다고 전하며 말이다. 내가 8월에 방문을 했었으니 불과 3개월 이후에 돌아가신 것이다. 몸이 편찮으셨던 상황도 아니었고, 자전거 사고도 아니고 급작스러운 심정지라니⋯.
죽음은 평소에도 내가 곰곰이 생각하는 주제였다. 그런데 내가 참 아꼈던 숙소의 호스트 분이 그렇게 허망하게 돌아가셨다고 하니 네팔 여행을 하던 초반부터 '죽음'은 여행 중의 중요한 화두가 되었다.
매우 놀랍게도, 그 화두에 대한 나의 시선을 더욱 깊게 하고자 한 신의 뜻이었는지, 나는 Mr. Marc의 사망 소식을 접한 지 약 한 달 반 이후, 습자지 한 장 차이로 죽음을 스치게 되었다.
( 관련 링크: https://brunch.co.kr/@111193/1
-제2의 생을 선물해 준 70일간의 첫 네팔 여행을 마치며- )
네팔에서의 사고 이후, 죽음에 대해 계속 깊게 성찰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저번 주에 미얀마 정보 카페에 윌리스 게스트하우스 사장님의 부고 소식을 알리는 게시물이 실린 것을 보았다. '아니, 윌리 사장님까지? 도대체 무슨 일로? 미얀마에 다시 가면 찾아뵈려고 했는데⋯.' 속으로 생각하면서 글을 클릭했다.
급성 심근경색으로 돌아가셨다는 내용이었다. 이럴 수가! 내가 미얀마에서 좋아하던 숙소의 호스트 분들이 작년과 올해에 이어 모두 돌아가시다니⋯. 그것도 두 분 모두 미처 대비할 새도 없이 순식간에⋯.
보통 한번 머무르고 떠나는 게스트들과 달리, 나는 두 숙소를 여러 해에 걸쳐 자주 찾아갔다. 그랬기에 두 분 모두 나를 굉장히 환대해주셨다. 내가 Thitaw에 두 번째 찾아갔을 때 Mr. Marc는 "It gives us good feeling.(다시 방문해 주는 건 우리를 기쁘게 해 주죠.)"라고 하시며 반갑게 맞이해 주셨고, 다른 게스트분들께도 나를 두고 "She's our best guest.(이 사람은 우리의 최고 게스트예요.)"라고 자랑스럽게 말씀하시기도 했다.
윌리스 게스트하우스의 윌리 사장님 역시 '오래간만에 온 사람에게 주는 선물'이라고 표현하시며 나에게 사려 깊은 배려를 참 많이도 해주셨다. "그렇게 예쁜 옷은 어디서 사는 거야."라고 말씀하시며 사소한 것에도 반응을 잘해주시는 분이기도 하셨다. 첫 방문을 하고 3년 후에 찾아갔을 때도 이전에 있었던 일에 대해 깨알 같은 디테일까지 모조리 기억하시는 그분을 보면서 달라도 매우 다른 분이라는 생각을 했다.
2019년 초에 방문했을 때는 사장님께 감사한 마음을 표현하고 싶어 면세점에서 구입한 제주 초콜릿을 싸들고 새해 복 많이 받으시라는 인사를 건네 드렸다. 그런데 그 인사를 마지막으로, 이제 윌리 사장님께 더 이상은 그러한 메시지를 전해 드릴 수가 없게 되었다.
작년 네팔에 있을 때, Mr. Marc의 부인분께 Mr. Marc는 진실하고도 관대한 호스트였으며 그분 덕에 미얀마 껄로에서 귀중한 추억을 굉장히 많이 쌓을 수 있었다고 답장했다. 그리고 아래와 같이 글을 마무리했다.
My heart goes out to you and all the people who remember him, indeed. May the soul of him live in peace ⋯. With deepest sympathy.
(당신과 Mr. Marc를 기억하는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애도의 뜻을 전합니다. 그의 영혼이 평화롭게 잠들 수 있기를. 깊은 조의를 표하며.)라고 말이다.
그러자 그녀는 Thanks a lot for contacting and sharing your kind view on him. Have a healthy and happy life. (이렇게 연락을 주고, 그에 대한 좋은 의견을 나누어 줘서 고맙습니다. 건강하고 행복한 생을 살기를.)이라고 다시 답을 보내왔다.
건강하고도(healthy) 행복한(happy) 생(life)은 분명 좋은 어감을 지닌 단어인데, 얼마 전 남편의 갑작스러운 죽음을 황망히 맞이해야 했던 부인이 전하는 그 말은 어쩜 그리 슬프게 들리던지⋯.
생(生)은 고(苦)이다. 화장을 할 때 선크림과 메이크업 베이스를 바르는 것이 기본이듯, 생이라는 얼굴 전체에 고통과 아픔이라는 베이스가 처절하게 깔려 있다. 그래서 '왜 나는 이리 힘든 것일까, 왜 별로 행복하지 않을까.' 하는 고민 자체가 별 의미 없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게 지극히 당연한 것이니까. 그럼에도 우리가 일상 안에서 찾기만 하면 널려있는 것이 '소소한 기적'이라고 믿는다.
길을 가다가 유모차에 탄 아기와 우연히 눈이 마주쳤을 때 활짝 웃어주자, 아기가 고개를 다시 빼꼼히 내밀며 미소를 지어주는 순간, 지하철에서 배낭을 메신 할머니께 자리를 양보해 드렸을 때 "색시, 고마워!" 하시곤 앉으시고, 역에서 내리신 뒤에도 길을 가시다가 고개를 뒤돌아 손을 흔들어 주시는 순간과 같은 것 말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0BdfH0CAKK4
네팔 여행 중에 유튜브에서 <Happiness doesn't wait(행복은 기다려주지 않아).>라는 제목을 가진 음악을 만나게 되었다. 음악도 괜찮았지만, 그보다도 가슴을 더욱 울린 것은 음악 영상 아래에 있던 베스트 댓글이었다.
Studying, working, sleeping, eating, did I forget something? Ah, yes! Living. Sometimes we do things in such a mechanical way that we forget the real reason why we're doing them: to live.
(공부, 일, 잠, 식사, 내가 깜빡한 건 없나? 아, 맞다! 사는 것. 이따금 우리는 기계적으로 생활을 하기에 정작 그것들을 하는 진짜 이유를 까먹곤 한다. 그것은 바로 '사는 것'.)
우리는 매일매일 시지프스의 돌을 굴린다. 늘 환희심에 젖은 행복 상태에 이를 수 없다는 것을 알지만, 고통이 베이스인 생이지만, 그럼에도 'healthy and happy life(건강하고 행복한 생)'을 누려보겠다는 희망으로 오늘도 돌을 굴리는 지난한 작업을 계속한다.
숨을 헐떡거린 채로 돌을 굴리며 오늘 하루를 돌이켜본다. 유튜브에서 읽은 베스트 댓글을 기억하며 '오늘 뭐 했지? 공부하고, 일도 하고, 나름대로 알차게 보냈지. 그런데 뭘 까먹었더라? 아, 사는 것을 까먹지는 않았나?' 하고 자문해 본다. 살기 위해 행하는 모든 일들이, 역설적으로 나를 함몰시켜 '사는 것' 자체를 잊게 하진 않았는지⋯.
그래서 주위에 있는 소중한 사람들에게 '있을 때 잘하기' 위하여 한 번이라도 더 안아드리고 마음을 표현하고자 한다. 눈빛을 마주치고 교감하는 시간을 가지는 일을 소홀히 하지 않으려 한다.
행복은 기다려주지 않으므로.
Happiness doesn't wa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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