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에세이] 나는 왜 사는가

by 필이

산책길에 질문을 던진다.

나에게!


한 걸음

나는 왜 사는가.


오래 전,
그 오래가 얼마나 오래인지는 모를
오래 전,

누군가
왜 사느냐고 물으면
이렇게 답한다.

"태어났으니 사는 것이지요."
"죽지 못하니 살지요."

태어났으니 살아야 한다.
죽지 못하니 산다.

모두
'어쩔 수 없다'는
단서가 붙는다.

죽는 것또한
신의 섭리 안에서
움직이는 것임을 깨닫는다.

이후는 죽지를 않는다.

그러니 선택지는 하나다!
사는 것이다.

엄마의 죽음을 본다.

죽음을 갈망했건만,
죽음은 나를 거부하더니
엄마를 데리고 간다.

죽음이 온다.
이젠 온다.
내게 와서 웃는다.

같이 가겠느냐고!
손을 내민다.

잡는다.

아니,
잡으려는 순간,
누군가가 나를 부른다.

"엄마!"

내 아이다.
내 아이가 나를 부른다.

"엄마!"

내 아이에게 나는 엄마다.
내 아이에게 나도 엄마다.

아이의 손을 잡는다.
아이를 안는다.

아이의 냄새가 나를 살린다.
아이의 체온이 나를 살린다.

하루가 감사함을 깨닫는다.

내 아이와 함께 할 수 있는
오늘이

내 아이와 함께 할 수 있는
지금 이 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 깨닫는다.

죽음이 언제라도 올 수 있음을 안다.

그 언제가 오늘이 되더라도
그 언제가 지금이 되더라도

후회하지 않도록!
잘 살았다.
재미있게 살았다.

웃을 수 있도록
삶을 산다.

여행처럼
소풍처럼
그렇게 살기로 선택한다.

나는 산다.
살기로 선택한다.

소중한 내 아이가 있는 이 땅에
필이로 살아 숨쉬는 이곳에

나는 산다.
살기로 선택한다.

살기 위해 산다.
살아가기 위해 산다.

그렇게 살기로 선택한다.

오늘이 마지막인 것처럼!

결국
왜 사는가에 대한 답은 덧없음이다.
답을 한다는 것 자체가 의미없음이다.

이젠 안다.
하루하루가 얼마나 소중한지를

살아있음으로 산다.
살아숨쉼으로 살아간다.

나로
필이로
살아가는 걸 선택한다.

왜?
살아있으니깐!

얼마가 될지 모르지만
언젠가는 결국 죽을테니깐.

어차피 죽을 인생
뭐하러 죽으려고 용을 쓰는가.

즐겁게 살면 되는 것을.
얼마나 산다고.
얼마나 살아간다고.

주어진 오늘에 감사하며
오늘을 살 뿐이다.

죽음은 찾지 않아도
올 것이니

죽음이 올 때까지
행복하게 살자!
그래 그러자!


오필리아처럼

필이

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