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를 사랑한 산>. 앨리스 맥레런. 2009
살아가는 동안에 우리는 셀 수도 없이 수많은 인연들과 스쳐 지나간다. 그리고 때때로 우리는 그 인연들 때문에 울기도 하고 웃기도 하며 우리의 삶 속에 가지각색의 모양으로 그들을 각인시킨다.
그렇다고 우리를 찾아오는 모든 인연들이 우리에게 특별한 의미를 지니는 것은 아니다. 어쩌면 그 무수한 인연들 가운에 의미 없이 흘려보내는 것들이 더 많을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우리는 살아가면서 만나게 되는 소중한 인연에는 더욱이 큰 의미를 부여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대다수의 사람들은 어떻게든 그것을 보물단지 다루듯 잘 지켜나가기를 바란다. 그만큼 내게 의미 있는 존재를 만들기란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바위로만 이루어진 황량한 산에 어느 날 작은 새 한 마리가 날아든다. 여태껏 자신의 곁을 지키는 것이라곤 해, 바람, 비, 눈만이 전부였던 바위산에게 어느 날 갑자기 운명처럼 날아든 새는 생전 처음 느껴보는 따스하고 보드라운 깃털을 가진 특별한 존재였다.
외롭기 그지없던 바위산은 새가 자신의 곁을 떠나지 않고 함께 머물러 주기를 바란다. 하지만 이 황량한 바위산에는 먹을 것이나 마실 것이 없어 '조이'라 불리는 이 작은 새가 어떻게든 둥지를 틀고 살아남으려면 이 곳에 오래 머무르기란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러하기에 조이는 바위산에게 작별을 고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위산은 조이에게 저와 잠시라도 더 함께 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정말 행복할 거라고 말한다.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갈길을 찾아 떠나야 하는 조이를 바위산은 그저 바라만 볼뿐, 결코 그의 앞길을 막아서지 않는다. 다만, 자신을 언젠가 꼭 닷디 찾아와 주기만을 바랄 뿐이다.
"네가 날 찾지 않는다면 정말 슬플 거야......"
<새를 사랑한 산> 中
이에 응답이라도 하듯 조이는 매년 봄마다 바위산을 찾아오겠다고 굳은 약속을 한다.
조이는 알고 있었다. 여태껏 살아오는 동안 자신을 특별한 존재로 여겨주고 사랑을 보내준 것은 바위산이 유일했다는 것을.
하지만 난 영원히 살 수 없으니,
내 딸의 이름을 조이라 짓고 너를 찾는 길을 말해 줄 거야.
그리고 내 딸은 또 딸의 이름을 조이라 지을 거야.
조이는 너를 찾는 길을 말해 줄 테고,
이렇게 하면
아무리 많은 세월이 지나도 괜찮을 거야.
너에게 따뜻하게 인사를 건네고,
네 위에서 날고, 널 위해 아름다운 노래를 불러 줄 친구는
영원히 있을 테니까.
<새를 사랑한 산> 中
조이가 한 약속 그대로 조이는, 조이의 딸들은, 해마다 봄이 되면 잊지 않고 바위산을 찾는다. 매년 봄마다 '조이'가 찾아올 때마다 바위산은 매번 자기와 함께 머물러줄 수는 없겠냐고 간청해보지만 '조이'는 그저 바위산을 잠시 위로하기 위해 잠시 머물다 갈 뿐. 바위산을 떠나야만 하는 건 조이에게는 또 다른 '숙명'인 것이었다.
그러게 아흔아홉 해가 흐르고...
더 이상 외로움과 고독의 슬픔을 가눌 수 없던 바위산이 참고 참아왔던 고통의 눈물을 터뜨리게 되고, 그 눈물은 산 허리를 따라 개울을 이루게 된다.
그리고 조이는 그 개울 근처 바위틈에 씨앗 하나를 떨어뜨리게 된다.
봄이 되었습니다.
조이는 씨앗 하나를 물고 다시 찾아옵니다.
그다음 해 봄에도 씨 하나를 물고 옵니다.
조이는 산을 찾을 때마다 눈물 개울 근처에 씨를 떨어뜨립니다.
그리고 산을 위해 아름다운 노래를 불러 줍니다.
하지만 산은 여전히 눈물만 흘립니다.
여러 해가 그렇게 지났습니다.
뿌리를 내린 새로운 식물들이
눈물 개울 근처의 바위를 부드럽게 합니다.
부드러워진 바위는 흙으로 변했고,
아늑한 곳에선 이끼가 자라기 시작합니다.
<새를 사랑한 산> 中
우리의 예상처럼 황량하기 그지없던 바위산에는 어느덧 푸른 생명들이 자라나고 있었고, 그 푸른 생명들을 따라 또 다른 어린 생명들이 바위산에 터전을 이루게 된다. 적막만이 가득했던 바위산에는 생명의 속삭임이 움트기 시작했고, 바위산은 더 이상 예전의 '바위산'이 아니었다.
그리고 얼마의 봄이 더 지났을까.
우리의 또 다른 조이가 어느 날 작은 나뭇가지를 물고 와 바위산에 둥지를 틀게 되면서 이 이야기는 마무리된다.
전체 50여 쪽의 이 짧은 동화는 어떻게 보면 첫 페이지를 여는 그 순간에 이야기의 결말을 어느 정도 유추할 수 있는 구조의 스토리를 지니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이야기가 흡인력 있게 우리를 끌어당기는 까닭은 이 이야기가 선사해주는 순간순간의 감동과 따스함이 자칫 뻔해질 수도 있는 스토리의 전개를 가뿐히 넘어서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영원을 사는 바위산에게 자신의 사랑과 믿음을 증명하기 위해 조이는 바위산과의 약속을 잊지 않고 그에게 자신을 대신할 존재를 끊임없이 선물한다. 이렇게 작지만 굳건한 조이의 믿음은 결국 메말라만 있던 바위산을 온기가 살아 숨 쉬는 생명의 산으로 바꾸는 원동력이 되어준다. 이 두 자연물을 주인공으로 한 이 이야기는 우리들의 삶과 많은 부분 닮아 있다.
살아가면서 우리는 적어도 한 번쯤은 잊지 못할 인연을 만나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인연에 어떠한 의미가 부여되는 순간, 그것은 어떠한 방식으로든 우리의 삶에 영향을 끼치게 된다. 이때, 정말 운이 좋다면 우리는 그 인연으로 인해 우리의 삶이 정말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변화되는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될 수도 있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변화'란 조이가 바위산에게 그랬듯 아주 기적적이면서도 긍정적인 방식의 변화를 말할 것이다.
아... 살아가면서 이런 인연으로부터 이렇듯 무한한 믿음과 헌신, 사랑을 받게 된다며 이보다 더한 축복이 더 있을까. 그렇게만 된다면 우린 정말 이 생을 살아 볼만한 것이라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동화의 제목은 <새를 사랑한 산>이다. 하지만 순서를 바꾸어 <산을 사랑한 새>라고 한다면 어떨까? 새가 보여준 믿음의 행동과 그로 인한 바위산의 기적적 변화를 생각해 본다면 여기에 이견을 제기하는 이는 없을 거라 생각한다.
마지막 책장을 덮는 순간, 우리는 이 책으로부터 이러한 음성을 듣게 될지도 모르겠다.
'외롭고 황량한 당신의 가슴에 찾아올 '조이'와 같은 인연을 기다리나요?'
'혹시 그 '조이'가 지금 당신 곁에 있는 그 누군가는 아닐까요?'
'모르겠다고요? 그럼 다시 한번 눈을 감고 조용히 떠올려 보세요. 당신 곁에 숨어 있는 '조이'가 이미 당신을 조금씩 변화시키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니깐요. 그렇다면 그런 '조이'를 가진 당신은 행복한 사람입니다.'